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줍는 방식으로
모처럼의 연휴가 가고 있다
택배 상자를 차곡차곡 접어 내면서
나보다 더 자주 집에 오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과
감쪽같이 사라지는 상자들의 행방에 놀란다
노후대책을 세우려면 좀 아껴야지 않겠냐는 말을 주고
골목에는 당장 오후대책이
더 급한 이가 있다는 대답을 돌려받는다
아내는 큰그림을 그리는 사람
소파와 리모컨과 홈쇼핑 채널이
오후의 골목에 미치는 영향을 설파하며
끼니도 못 되는 책만 들이는 나를 방으로 돌려보낸다
구천 원을 주고 산 174그램의 시집들이
빈 밥그릇처럼 가지런히 꽂힌 위에 또 엎어져 있는, 책장
먹지도 못하는 걸 자꾸 사온다는 아내의 핀잔을
참 많이도 견뎠구나 위로 하다가
불현듯 오후를 견디고 있을 누군가에 생각이 간다
파지가 키로에 백 원이면 시집 한 권은 17원
삼백 명의 시인이
오후 난민의 밥 한 그릇 해결하기 벅차다는 사실에
시 쓰는 일 참 부질없다 싶어서
내 시집 몇 권을 섞어 삼백 권 쯤 노끈으로 묶는다
시 쓰는 일도 밥이 된다는 듯이
다시 아내가 다시 전화를 건다
질세라, 어느 시인에게는 또 미안한 일이지만
서명된 페이지는 오려서 비닐 파일에 넣고
그 위에 내 책을 또 몇 권 보태보는 오후가 저물어 간다
권상진 시인
2013년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복숭아문학상 대상, 경주문학상 수상.
201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 선정 시집 《눈물 이후》 한국작가회의 회원, 문학동인 Volume 회원
201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 선정 시집 《눈물 이후》 한국작가회의 회원, 문학동인 Volume 회원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9 | 말의 힘 | 센터 | 2020.08.24 | 477 |
38 | 안녕 | 센터 | 2020.06.29 | 625 |
37 | 해고 | 센터 | 2020.04.29 | 721 |
36 | 너무 늦지 않기로 해요 | 센터 | 2020.02.27 | 815 |
35 | 공장 | 센터 | 2020.01.02 | 906 |
34 | 근로하는 엄마 노동하는 삼촌 | 센터 | 2019.10.30 | 830 |
33 | 밥은 | 센터 | 2019.08.29 | 1053 |
» | 오후대책 | 센터 | 2019.06.25 | 1095 |
31 | 빛의 탄생 | 센터 | 2019.04.29 | 1562 |
30 | 제주 예멘 | 센터 | 2019.02.25 | 1520 |
29 | 시작 | 센터 | 2018.12.26 | 1618 |
28 | 적벽에서 | 센터 | 2018.11.01 | 1374 |
27 | 일몰의 기억 | 센터 | 2018.08.28 | 1449 |
26 | 폭설 | 센터 | 2018.07.02 | 1459 |
25 | 굴뚝 | 센터 | 2018.04.26 | 1615 |
24 | 환희 | 센터 | 2018.02.28 | 1373 |
23 | 손님보다 알바생 | 센터 | 2018.01.02 | 1416 |
22 | 당신의 유통기간은 언제까지입니까? | 센터 | 2017.10.30 | 1334 |
21 | 공장 빙하기 | 센터 | 2017.08.28 | 1413 |
20 | 마네킹의 오장육부 | 센터 | 2017.07.03 | 1493 |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