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곳에 피어나는 봄꽃_이춘자 열사를 기억하며

by 센터 posted Apr 30,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공군자 서울노동광장 대표



이춘자.jpg


봄꽃과 함께 이 세상에 왔다가, 함박눈과 함께 홀연히 떠났던 언니!

오늘은 고요한 사무실에 앉아 언니를 생각합니다. 


최근 서울노동광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눈으로 바라보는 노동’ 강좌가 끝난 후, 여성회원 4명과 오랜만에 술 한 잔을 기울이면서 언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제가 서울노동광장 대표이던 언니 나이가 되어가니, 문득문득 언니의 삶이 다른 의미로 곱씹어질 때가 많아집니다. 


서울노동광장 회원들은 지금도 언니의 삶을 이야기 합니다. 오랜 시간 싸워왔던 철도 해고자들이 복직되었을 때에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오셨던 철도 노동자 박태만 형님의 퇴직 축하와 회갑잔치 때에도,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서울노동광장 회원들과 모이거나 예전의 노동운동 기억을 떠올리는 자리에서 우리는 늘 자연스럽게 언니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언니가 이곳에 쏟은 열정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정말 언니의 ‘그 시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함께 활동해왔던 활동가로서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으로서, 우리는 모두 언니의 아픈 고민과 힘든 삶을 잘 이해하지 못했음을 이제야 깨닫기도 합니다.  


언니는 정말 상대에게 감정이입을 잘하셨어요. 힘들어하는 회원들과 만나 술 한 잔 기울일 때면 언제나 함께 눈물 흘리며 걱정하고 안타까워 하셨죠. 특히 언니는 기약도 없이 오래 싸우고 있는 회원들을 향해 끊임없이 노동하셨죠. 일부러 안부를 묻고, 만나자며 데이트 신청을 하고, 서울노동광장 사무실로 불러 직접 따뜻한 밥 한 끼를 해주곤 하셨죠. 당신이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아도 싸워야 할 곳에는 서울노동광장 회원들보다 늘 먼저 가서 투쟁하던 언니의 모습, 그리고 시류에 편승하거나 조금 더 편한 길을 택하기보다는 언제나 원칙을 고수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끝까지 논쟁하던 언니의 모습들이 여전히 눈에 선합니다.


언니가 계실 때에도 노동운동의 방향과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때도 이 문제들을 생각하면 항상 어렵고 힘든 마음이었는데, 세월이 흘러도 막막함이 느껴지는 건 여전합니다. 그만큼 노동운동 문제는 섣불리 결정하기도, 쉽게 해결되지도 않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서울노동광장은 언니가 해 오셨던 방식을 떠올리며 고민의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 시절 언니는 언니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서 토론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하셨죠. 이제 우리는 그런 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요. 물론 언니가 고민했던 무수히 많은 것들을 미처 다 알지 못한 채 헤어져야했던 점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운동하는 삶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부분, 지켜내고자 했던 부분, 바꾸고자 했던 부분들을 잘 떠올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도 서울노동광장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실천하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러던 중 언니가 생전에 늘 말씀하셨던 것, 바로 ‘노동자이자 한 명의 경제시민’인 그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게 되었어요. 수차례의 토론과 깊은 고민 끝에 서울노동광장 사무실을 영등포라는 지역에 기반을 둔 카페 공간으로 바꿔보자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죠. 그렇게 서울노동광장 사무실이 카페로 바뀌었답니다. 서울노동광장 회원들이 직접 카페 이름도 지었어요. 언니와 정말 많이 닮은 ‘봄’을 담아, ‘카페 봄봄’으로 말이죠.  


카페 봄봄을 새롭게 열고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올 수 있고, 이 공간을 그들의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애쓴 덕분에 정말 많은 노동자들을 이 공간에서 만나고 있는데요, 지역 노동자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카페 봄봄에 와서 언니의 사진을 보고는 “어떻게 이분 사진이 여기에 있냐.”며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언니가 1980년대 구로지역에서 노동운동할 때 같이 활동했거나 그 이후 1990년 영등포산업선교회를 무대로 우리역사교실을 운영할 때 교육에 함께했던 분들이었어요. 언니가 운동에 쏟았던 삶이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다른 이들의 삶과 교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런 언니의 삶처럼, 우리도 카페봄봄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꾸준히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자들과 함께 지역을 일구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언니, 정말 보고 싶은 언니! 

재작년 촛불항쟁에서 정말 유명했던 ‘그만두유’를 들어보셨나요? 언니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 끼 밥을 나누는 마음’을 이어가고자 그늘진 곳, 외로운 곳, 저항하는 곳을 찾아가 봄꽃의 마음으로 ‘봄꽃밥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만두유’라는 히트상품도 바로 봄꽃밥차에서 탄생하게 되었죠. 우리가 봄꽃밥차를 만들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언니가 늘 안타깝고 분노하며 이야기했던,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산재로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대책을 위해 장기간 삼성공화국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반올림 농성장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농민들의 싸움, 장기투쟁사업장, 철도 파업 현장, 촛불항쟁 등 다양한 곳에서 한 끼의 밥으로, 한 잔의 차로, 연대의 마음을 나눠오고 있습니다.


언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청년 노동운동을 고민하면서 ‘청년노동자학교’를 만들어내셨죠. 저희도 그 고민을 이어받아 청년 노동자들이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고민을 이어나가는 ‘장그래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지금은 청소년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해보기 위해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진행하고, 청소년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소란스레 움직이기보다는 우리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부터 차근차근 해보려고 합니다. 언니도 그곳에서 응원 많이 보내주세요.


카페봄봄의 가장 넓은 공간인 교육실 입구에는 언니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때 희망은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있고요. 오며가며 이 사진과 말을 볼 때마다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버리고 비워가며, 더불어 희망을 일구어가고 있을까? 지금 우리의 노동운동은, 그리고 노동조합은 각자의 집짓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노동의 형태가 다양한 양상으로 생겨나면서 근로기준법 적용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 영역이 늘어나고, 더불어 청년 실업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노동운동은 더 크게, 더 넓게 노동자들을 포괄하면서 우리가 갈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되기도 합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서울노동광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오랜 시간 토론과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우리가 하는 운동의 방향이 잘 보이지 않고, 힘든 상황일 때엔 언니 생각이 더 자주 드네요. 이럴 때 언니라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판단을 했을까요? 언니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만나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노동자의 손으로 이 사회를 경영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언니의 꿈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실력을 키워나가고, 타인과의 격의 없고 폭 넓은 연대가 필요하겠죠. 전국을 누비며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하고 실천했던 생전의 언니가 보기에 지금의 서울노동광장이 아직은 미흡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프랑스 속담을 떠올리며, 우리가 가야할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그 방향으로 움직여보려고 합니다.


언니, 그곳에서는 정말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잘 지내시길 바랄게요. 가끔 답답하고 그리울 때면, 꿈으로라도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힘들지! 그래도 잘 해낼 거라 믿는다.”라고 말씀해 주세요.


언니를 그리워하며 봄날의 어느 날

공군자 드림 


-------------------------------------------------------------------------------------------------

편집자주 : 고 이춘자 열사는 1984년 인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 강철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4년 노동자교육단체 서울노동광장을 설립하고 현장 연대 투쟁 등 한평생 노동해방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진 후 운명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