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런 벌을 받고 있는가?

by 센터 posted Apr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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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 대학 비정규직 교수




한국은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가 관찰되는 국가이다. 2016년 기준, 한국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임금 격차는 36.7퍼센트 수준이다. 한국 남성 중위소득이 월 300만 원일 때, 한국 여성 중위소득은 남성의 60퍼센트 수준인 월 179만 원이라고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심하다. 2017년 기준,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9퍼센트 수준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성별에 따른 양극화, 고용 형태에 따른 양극화라고 부르고 있다. 성별 임금 격차와 고용 형태별 임금 격차가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추세를 나타낸다고 볼 때, 특정 직종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극화도 이런 양극화가 없다.”라는 말이 나올 곳이 있다. 그 곳은 바로, 대학이다.   


대학의 양극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 임금의 대략 70퍼센트 수준을 받는다는 통계는 대학이라는 일터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대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가르치는 일’을 하는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의 양극화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비정규직 교수 임금은 그야말로 매우 평등한 임금 체계이다. 비정규직 교수 임금은 비정규직 교수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군 가산점도 없고, 호봉제도 없다. 성별에 따른 차별도 없고, 근속기간에 따른 차별도 없다. 비정규직 교수 임금은 이 사람이 몇 시간을 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박사학위 유무, 박사 취득 후 강의 경력 등에 따라 약간 차등을 두기도 하지만, 이 차등은 시급 3,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be정규직.jpg


위의 표는 내가 출강했던 A대학의 ‘시간강사 처우 규정’ 중 일부이다. 박사학위 취득 여부 및 경력에 따라 약간 시급 차이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비정규직 교수들은 시간당 평균 5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시급이 5만 원이라니! 최저시급 1만 원 운동은 아직 그 목표를 달성하지도 못했는데! 라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시급 5만 원을 받고 하루에 8시간 주 40시간 일하는 걸 기준으로 해보면 1주에 200만 원, 4주면 800만 원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대학 비정규직 교수에게 적용되는 시급은 오로지 강의하는 시간에만 해당한다.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강의 자료를 만들고, 중간·기말고사 채점을 하고 학생들의 보고서를 읽고, 평가를 하고, 면담하는 이런 시간 모두는 비정규직 교수의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강의 시간! 비정규직 교수는 1학기 15주 기간 동안 3시간으로 구성된 강의를 평균 한두 개 담당한다. 비정규직 교수가 한 과목 강의를 하면 그의 한 달(4주) 수입은 평균적으로 50,000원×3시간×4주=600,000원이다. 두 과목을 맡으면 120만 원이다. 연봉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1년에 2학기를 계산해보면 50,000원×3시간×30주=4,500,000원이다. 즉, 한 학기에 한 과목씩 두 학기를 강의하면 450만 원이 연봉이고, 한 학기에 두 과목씩 두 학기를 강의하면 900만 원이 연봉이다. 보통 비정규직 교수는 규정상 한 학기에 9학점 이상 강의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최대 9학점을 강의하더라도 1,350만 원이 최대 연봉이다.   


대학 강의의 정당한 임금은 얼마일까? 비정규직 교수들이 받는 임금과 정규직 교수들이 받는 임금은 얼마 정도의 차이가 나고, 이 차이는 정당한 것일까? 흔히 정규직 교수는 강의 이외에도, 학생 지도 및 교내 행정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단순히 강의만 하는 시간강사보다 임금이 높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시간당 강의료가 비정규직 교수와 정규직 교수가 같다고 가정하고, 강의 이외 업무로 인해 정규직 교수가 받는 임금을 계산해보자. 정규직 교수가 한 학기에 담당해야 하는 의무강의시수는 9학점이다. 대개 세 과목을 맡게 되고, 한 학기당 강의 주는 15주이다. A대학의 시간강사료 지급 규정에서, 정규직 교수를 박사학위 취득 후 6년 이상 교육 경력이 있고, 연구 실적이 뛰어난 ‘특A급’으로 가정하고 계산해보자. 특A급 기준 56,000원×9시간×15주=7,560,000원이다. 즉, 1학기 9학점 강의에 대한 임금이 756만 원이므로 1년 치 강의에 대한 임금은 1,512만 원이다. 어떤가? 9학점 강의 기준, 비정규직 교수의 1,350만 원, 정규직 교수의 1,512만 원. 이 차이는 박사학위 취득 이후 경력과 뛰어난 연구 실적에 따른 합리적인 차이라고 느껴지는가?


그럼 정규직 교수들이 실제로 받는 연봉은 얼마일까? 대학에서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A대학의 경우, 2017년 기준 정규직인 ‘조교수’의 평균 연봉은 5,900만 원, 비정규직인 ‘시간강사’의 평균 연봉은 690만 원이다. 조교수 한 명이 1년에 18학점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강의에 대한 수당을 1,512만 원으로 계산했을 때, 강의에 대한 수당을 제외하고 받는 연봉은 4,388만 원이다. 강의에 대한 시급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강의 이외 업무로 받는 수당이 조교수가 4,388만 원이고, 부교수 및 정교수로 올라갈수록 강의 이외 업무로 받는 수당이 훨씬 더 커진다. 


강의료에 대한 기준이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 사이에 다른 것인가? 아니면, 정규직 교수들이 수행해야 하는 강의 이외 업무들의 노동 가치가 4,388만 원이나 된다는 것인가?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에 대한 강의료 기준이 같다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진행되어야 할 교육 업무에 대한 노동의 가치는 1,512만 원에 불과하고, 교육 이외 업무에 대한 노동의 가치가 4,388만 원이나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대학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그냥 기업이란 소리인가?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 사이에서 강의료 기준이 차이 난다면, 정규직 교수 강의는 비정규직 교수 강의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수준 높다는 것인가? 그래서 비정규직 교수는 싼 값으로 강의를 해야 하고, 정규직 교수는 비싼 값에 강의를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비정규직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등록금을 할인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대기업 정규직 되는 것이 어렵듯이, 대학의 정규직 교수가 되는 것도 역시 매우 어려운 일임을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크나큰 격차는 경쟁에서 이긴 자의 부와 명예, 경쟁에서 ‘아직’ 이기지 못했거나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의 빈곤과 모욕을 보여주고 있다. A대학 기준으로 정규직 교수 중 가장 낮은 직급인 조교수의 평균 연봉 5,900만 원, 비정규직 교수인 시간강사의 평균 연봉 690만 원.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이렇게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이렇게나 큰 격차를 문제시하는 사람들도 별로 보지 못했다.     


이것은 “경쟁 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벌을 받는 것”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경쟁이 당연시된 사회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 것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정규직 교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억울하면 더 열심히 하지 그랬어?” 또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정규직이 되면 되잖아.”라고들 말한다. 


이렇게 나처럼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강의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긴 자는 상을 받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자는 벌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과연 좋은 세상일까?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상을 달라고는 못해도, 그래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왜 이런 벌을 견디고 있는가? 내 꿈을 저당 잡혔기 때문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경쟁이 일상화된 무자비한 사회와 대학에서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비정규직 교수들한테 강의를 듣는 우리의 대학생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 여기가 대학大學인가, 소학小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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