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 디지털 시대 새로운 비정형 노동

by 센터 posted Apr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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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혁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장 



플랫폼의 유래와 변천


플랫폼이란 기차를 타고내리는 승강장에서 유래되어, ‘다수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물리적 기반’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것이 제조업 시대에는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표준 공정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반이자 도구’라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자동차 생산에서 현대 소나타와 기아 K3가 플랫폼을 공유한다고 할 때의 의미로, 플랫폼이 공유되면 표준규격이 정해져 개발 비용이 낮아지고 품질 수준도 높일 수 있다. 컴퓨터가 개발된 이후에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중요해졌다. 여기서의 플랫폼은 컴퓨터 운영 체제인 윈도우, 브라우저 등 ‘특정 분야에서 공통의 실행 환경’이라는 의미로 발전하였다. 인터넷이 등장한 후에는 ‘서비스 플랫폼’이 대세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와 특정 앱을 통해서 연결되고 콘텐츠를 사고파는 앱스토어, 구글플레이 등 온라인 장터가 개설되었다. 여기서의 플랫폼은 ‘연결과 중개가 이루어지는 디지털 생태계’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연결에 기반한 디지털 플랫폼은 20억 명의 가입자를 가진 페이스북처럼, 거대한 설비 투자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사업이 가능하며 ‘네트워크 효과’, ‘쌍방향 의사소통’, ‘소비자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이미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에어비엔비, 알리바바 등 플랫폼 기업들이 전통산업을 추월하여 시가총액 글로벌 10위권에서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물리적 세계의 상품과 서비스는, 사용하면 소멸되거나 가치가 저하되므로, 한정된 자원을 누가 먼저 소유하는가가 핵심이다. 그러나 정보로 이루어진 가상세계에서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는 한계비용제로 법칙이 적용된다. ‘한글 소프트웨어’와 ‘엑셀 소프트웨어’, ‘영화와 음악 파일’은, 클릭 한 번으로 수억 명이 무료로 복제할 수 있다. ‘오피스 365’, ‘클라우드 웹서비스’, ‘인터넷 강의’ 등은 ID 접속만으로 무한대로 이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디지털 가상세계에서는 소유보다 이용권이 중요하며 아무리 이용해도 소멸되지 않으므로 이론적으로 공유와 협력이 가능하다. 물론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거대 기업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과도한 지적 재산권과 독과점 시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디지털 경제의 공유와 협력은 제한되어 있다. 


플랫폼 노동의 출현


디지털 플랫폼(사이버세계)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여 모든 상품을 거래하는데, 이제는 인간 노동을 거래하기 시작하였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플랫폼 노동이 판매자들에게 시장 진입 비용을 낮춰 스타트업들이 기존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하고, 원할 때에만 노동을 공급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해 전일제 노동이 어려운 이들의 노동 참여유인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 전문가들은 플랫폼 노동이 노동을 파편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은 노동을 업무 단위로 잘게 쪼개고 플랫폼을 통해 거래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30분짜리 노동’, ‘건 당 수수료를 받는 노동’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이에 종사하는 작업자들은 개인 사업자가 되어 사회보험과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의 노동법은 1953년 제조업 시대 공장노동에 기반을 두어 수립된 것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권리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본질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비정형 노동이다. ILO는 비정형 고용을 ‘임시고용’, ‘단시간 노동’, ‘파견 노동과 다자 계약’, ‘위장된 고용관계 및 종속 자영업’ 등과 같이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플랫폼 노동은 이러한 특징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고용 관계를 기반으로 근로기준법, 노동3권을 보장하여 노사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산업 민주주의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은 ‘상시 고용’, ‘사업장으로 출퇴근’, ‘8시간 정규 노동’을 중심으로 한 표준적 고용 관계를 위협하고 노동법과 사회복지에 적용되기 어려운 비정형 노동을 확대시키고 있다. 


플랫폼 노동의 유형과 실태


플랫폼 노동의 유형은 크게 ‘주문형 앱 노동’과 ‘군중형 노동(크라우드 워크)’으로 나눌 수 있다. 주문형 앱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중개되지만, 오프라인에서 대면 접촉이 이루어지는 물질적 서비스로 대리운전, 배달서비스 등이 있다. 군중형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온라인 가상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들이 참여해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금융의 크라우드 소싱과 유사하다. 주로 컴퓨터 작업으로 가능하며 오프라인에서 대면 접촉은 없다. 번역, SNS에서 댓글달기, 디자인, 시나리오 작가 등 허드렛일에서 전문적인 분야까지 다양하다. 


1.플랫폼노동구조.jpg


플랫폼 노동의 규모는 현재의 통계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데, 유럽 권에서의 연구는 플랫폼 노동을 수행했다는 비중이 생산가능인구의 10퍼센트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은 배달서비스, 대리운전, 가사서비스, 퀵서비스, 간병 및 호스피스, 통·번역, 청소용역, 경비용역, IT 관련 업무 주문(홈페이지 제작, 어플리케이션 개발, 웹 개발), 전문 업무 의뢰(디자인, 작가, 회계, 이사, 펫, 인테리어 주문, 미용서비스, 과외), 택배(쿠팡 플렉스), 관광버스, 일회성 아르바이트(알바몬, 알바천국 등) 등이 있는데 그 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 실태는 거의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데 노조가 있거나 기존 전통산업이었던 이동 노동 부분에서 일부 실태조사가 진행되었다. 배달 서비스를 보면, 배달대행업체들이 배달 기사들과 근로 계약이 아닌 위탁 계약을 맺는다. 기존 음식점에 직접 고용된 철가방 배달원은 업주의 지시를 받았지만, 배달대행업체 기사들은 개인사업자로 취급된다. 임금 대신 건당 수수료를 받는 것이 근본적인 차이이다. 음식점이 대행업체에 배달을 맡기면, 대행업체는 배달 기사들에게 콜을 띄우고 이를 받아 기사들이 업무를 개시한다. 자영업자로 취급되지만 업무 시간과 장소, 업무 내용을 자유롭게 선택하기는 어렵고 주문이 많은 금토일 근무와 야간노동은 필수이다. 배달대행업체들은 ‘입사 전 교육’, ‘로고 복장 착용’, ‘근태 관리’, ‘시작과 마침 시간 관리’, ‘앱 사용 중단과 퇴출’ 등으로 기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이 플랫폼 노동자는 플랫폼 기업의 실질적인 지배·종속 하에 있다. 늘 호출을 대기하며 플랫폼이 주는 일감을 받는다. 플랫폼이 정한 규칙을 따르고, 플랫폼의 사후 평가에 의해 보상을 차등 받는다.


소득 수준을 보면, 15만 명이 넘는 대리기사들은 중개료 20퍼센트, 앱 프로그램 사용료, 보험료, 통신료 등으로 매출의 35~40퍼센트가 공제된다. 긴 대기 시간과 심야 노동을 하지만 제반 비용을 제하면 순수입은 200만 원이 안 된다. 17만 명에 이르는 퀵서비스 기사들도 중개료, 오토바이 유지비(유류비, 수리비), 프로그램 사용료, 보험료, 통신료 등 제반 비용을 제하면, 순수입은 200만 원 수준이다. 배민라이더스 등 규모가 크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다. 지입 라이더의 월 총소득이 250~500만 원인데, 여기서 오토바이 리스비 25만 원과 유류비, 사업소득 3.3퍼센트, 특수고용 산재보험료 종사자 부담분 등을 공제한다.


플랫폼 노동의 전망


플랫폼은 복잡한 중간거래를 생략하고 인터넷을 통하므로 ‘접근성’, ‘편리성’, ‘저렴한 가격’,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에서 장점이 있고, 참가자가 많을수록 네트워크 효과로 생태계가 구축되고 다양한 다른 사업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 경제는 많은 경우 플랫폼 노동을 동반한다. 따라서 플랫폼 경제가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되고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인간의 노동은 효율성으로만 접근할 수 없으며 ‘기본적인 소득 보장’, ‘적절한 노동시간’, ‘안전과 건강’ 등이 주어져야 한다.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은 사회복지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의, 노동 기본권 부여, 사회안전망 마련 등이 절실하다. 


비정규직이 만연한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매우 우려스럽다.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업의 관심이 플랫폼 노동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도급, 파견, 호출노동, 계약직, 일용직 등의 업무는 대부분 플랫폼 노동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인력 파견업체가 온라인 연결로 작업하면 플랫폼 노동이 될 수 있다. 전통적인 노동이 플랫폼 노동으로 전환되면 기존에 했던 것과 똑같이 배달하고 운전하고 집을 청소하지만, 대기시간은 업무시간이 아니며 초장시간 노동 및 심야 노동에도 초과 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퇴직금과 사회보험은 물론 생리휴가, 주휴·월차수당까지 사라진다. 새벽 배송, 주말 근무, 심야 운송 등은 앞으로 플랫폼 노동으로 전환될 우려가 크다.


플랫폼 경제가 새로운 기술 개발과 사업 모델 혁신 등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고용을 창출한다면 환영하겠지만, 기존 사업과 내용적 차이 없이 앱을 깔고 인터넷으로 노동을 매개하는 형식만 바꾸어 중간착취와 불안정 노동을 불러오는 것이라면, 이는 지양되어야 한다. 플랫폼 노동이 새로운 중간착취 형식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통제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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