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정규직이 아니라 Be정규직

by 센터 posted Feb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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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 대학 비정규직 교수



나는 비정규직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이면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이다. 내가 강의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지만, 대학의 행정시스템에서는 나를 ‘시간강사’로 부른다. 나는 비정규직 문제를 연구하면서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탐구해왔다. 박사논문을 작성하던 시절, 연구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는 나에게 “당신 같이 많이 배운 사람이 왜 우리같은 비정규직을 쫓아다니나?”라고 물었을 때, 나는 “저도 잠재적 비정규직입니다.”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을 때, 내가 비정규직임을 가장 먼저 실감하게 된 것은 강의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부터였다. 강의계획서에 교수 정보를 입력하는 란에 ‘연구실’과 ‘연락처’를 적어야 했다. 정규직 교수들의 이전학기 강의계획서를 참고해보니, 연락처는 연구실 전화를 의미했다. 나는 연구실이 없으니 연구실 전화도 없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휴대전화번호라도 적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학교 측에 물어보니,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해서 그냥 공란으로 두었다.


캡쳐jpg.jpg

강의계획서


개강 첫날 수업계획서를 함께 보면서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1학년 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교수님, 혹시 면담하고 싶을 때 어디로 찾아가면 되나요? 여기 수업계획서에 연구실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요.” 연구실이 없는 교수라니 학생에게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나보다. 이 질문을 받고 나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면서 대답했다. “저는 비정규직입니다. 그래서 연구실이 없습니다. 면담하고 싶으신 분은 미리 저에게 메일 보내주세요.” 그때 이후 개강 첫날마다 나는 연구실이 없는 비정규직 교수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해 ‘아재 개그’를 해오고 있다. “여러분. 저는 여기 보시는 것처럼 학교에 연구실이 없는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닐 非’ 자를 씁니다. 그러나 저에게 비정규직은 非정규직이 아니라 Be정규직입니다. 여러분 영어 속담 아시죠? ‘Boys be ambitious!’ 이런 것처럼, ‘非정규직 Be정규직!’입니다. 모든 非정규직이 Be정규직 되도록 연구하고 강의하고 함께 고민합시다.”


연구자로서, 선생으로서 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동안 나는 ‘비정규직’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비정규직’으로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것은 꽤 오래되지 않았다. 2018년 6월에 노동자 A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비정규직’으로서의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제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만나러 여기저기 다녔다. 연구 도중 만난 노동자 A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함께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아까 인터뷰할 때 저희들 월급 얼마 받느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월급 얼마 받으세요?” “아··· 저는 보통 한 과목 강의하면 한 달에 60만 원 정도 받아요. 이번 학기에는 3과목 강의해서 대략 180만 원 정도 받고 있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방학 때는요?”라고 A씨가 또 물어보았다. 내가 “방학 때는 따로 계절학기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지요.”라고 대답했을 때 A씨는 나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선생님, 비정규직 노동자 저임금 뭐 이런 거 연구한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 따라다니지 말고···. 내가 보기엔 선생님 같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더 어렵고 열악해 보여요. 본인들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무슨 저임금이니 차별이니 그런 걸 따지고 있어요? 일단 시간강사 문제부터 연구하시고 그 다음에 다른 노동자들 연구하세요.”


A씨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비정규직 문제를 연구하는 내가, 정작 비정규직 당사자인 내가 내 직업에 대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고민들을 몇몇 연구자와 활동가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대학 비정규직 교수의 삶에 대해 글을 연재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알고 있지만 말하기 어려운, 들어봤지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대학 비정규직 교수들의 이야기를 《비정규노동》을 통해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별다른 고민 없이 덜컥 수락하고 나니 두려운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약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고, 현장에서 느꼈지만, 정작 대학 사회의 약자인 비정규직 교수로서 내가 내 목소리를 내려하니 조금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약자들의 목소리가 우리네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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