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더불어

by 센터 posted Feb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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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태어난 아기들은 자라나 어린이가 되었다가 청소년이 되는 과정 중에 대체로는 ‘학교’라는 곳을 오가며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미성년과 성년의 간극 사이에 집 못지않게 긴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 학교가 있고, 그 학교엔 부모와는 또 다른 어른인 교사가 있다. 다양성과 차이라는 말이 어떤 함의를 품고 있는지 그 낱말들 자체를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던 기십 년 전,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이제 와 헤아려보면 그 차이와 다양성을 코너로 몰아세우거나 그것에 순위를 매겨 서열화하도록 길들이던 곳이 내 기억의 중심에 똬리 틀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뜻밖에 내가 지닌 불안과 불만을 헤아리고 있는 듯한 존재를 만나기도 했다. 친구와도 부모와도 자매형제와도 나눌 수 없었던 그 시기의 혼란과 외로움을 꼭꼭 숨긴 채 행여나 들킬 세라 들키어 난감해질 세라 낮은 자존감을 어두운 낯빛 속에 꽁꽁 싸매어 품고서 교실 한구석에 앉아 있을 때면 무심한 듯 다정하게 말로나 눈빛으로 네가 지니고 있는 고통과 불안감을 꺼내어보라며 내 속의 그늘을 다독여주던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존재를 말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이었는지 엄마로부터 종종 듣곤 하던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가 때문이었는지 성장기-자존감이 낮았다던 그녀에게도 그러한 선생님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그 여자 선생님은 그때 벌써 쉰 살쯤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그저 평범하기만 하던 자신에게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던 그분의 영향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교사의 꿈을 키우게 된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간혹 저항감이 일어도 드러내는 법 없이 학교 안팎의 질서에 순응하며 지냈다는 그녀가 어릴 적부터 따로 품고 있던 장래희망 같은 건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후에야 아이들을 만나는 이 일이 자신에게 퍽 잘 맞다는 것,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다는 것, 경제적·정신적 독립이 가능한 이 직업이 꽤나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고 자란 경기도 동두천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던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수년간을 거쳐, 현재 근무 중인 전남 순천의 한 중학교로 내려와 만 4년간 ‘사회/역사 선생님’을 해오는 동안 이제는 호호한 할머니가 되었거나 어쩌면 이미 돌아가셨을지도 모르는 그 선생님을 어쩌다 보니 한 번도 찾아뵙지는 못했으나 내내 잊지는 못하고 있다.


헤아려보면 그녀가 10세 무렵이던 30년 전 그때와 지금을, 대학 졸업 후 첫 발령을 받아 교사 생활을 시작하던 14년 전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학교도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어떤 부분에서는 참 변한 게 없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참 큰 변화를 겪기도 한 것 같다. 14년 전보다 더 오래 전인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 뒤 줄 세워 상급학교에 집어넣는 학교의 풍경이라든가, 성교육을 한답시고 1년에 한두 번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한 교실에 모아놓고 관련 동영상을 틀어주는 구태의연함은 여전한 것 같지만 그때는 그래도 우정과 존경이라는 살가운 의미망이 학교 안 곳곳에 제법 묵직하게 드리워진 채 아이들과 아이들을, 아이들과 교사들을, 교사들과 교사들을, 교사들과 학부모들을 이어놓고 있었던 것도 같다. 경쟁과 학교 폭력으로 인해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드물었고, 부모에 의해 대물림된 계층과 계급이 현재만큼 고착화되어 있지도 않았으니 현재의 교육시스템과는 결을 달리하는 맥락에서 지금만큼의 ‘전쟁터’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교사, 요리사, 농부, 작가, 간호사,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인을 꿈꾸던 아이들이 자라 부모가 되어 자신들의 아이를 학교에 보낼 만큼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자녀가 된 아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제 이런 꿈들에 더해 부동산 임대업자와 CEO를 꿈꾼다. 세상질서가 향하는 불공정함과 불공평함의 기울기가 점점 가팔라지고 있으므로 어떻게든 안정과 부, 둘 다를 거머쥐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상위 1퍼센트 안에 드는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건물 임대료를 받아먹으며 편히 살고 싶다던 중학교 1학년, 그 아이를 그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디 그 아이뿐이랴. 현실이 일러주는 대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부조리함에 저항하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만 가는 게 안타깝고, 다양성을 잃어버린 채 친구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한다며 욕하고 싸우고 겉모습 꾸미기에 치중하는 그 ‘따라쟁이들’이 안쓰럽다. 너희들 앞에는 긴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다양한 인생을 꿈꿔도 된다고 왜 이 사회, 부모, 학교, 미디어는 얘기해주지 않는지···. 건강한 물과 상쾌한 공기가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놀이와 낭만’이 희박해지는 이 시대 아이들이 무기력과 폭력과 경쟁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고민하고 소통하며 위계적이지도 억압적이지도 않은 교육 환경을 일궈가려는 취지에 공감해 전교조에 가입한 그녀가 ‘다른’ 학교를 꿈꾸었던 것은. 학교 폭력과 관련한 사건·사고에 주도적으로 개입해나가야 하는 학생부 담당 교사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여’교사라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자꾸 물어대던 남자 교감에게 여러 번에 걸쳐 에둘러 항의하던 기억이라든가 “여자 선생님이므로 아이들 지도가 안 된다”, “아이들은 남자 선생님이 다잡아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던 때의 씁쓸함을 곱씹지 않아도 되는 교육현장을 일궈 가리라 다짐했던 것은 말이다.


하지만 반년을 내리 쉬어야 할 정도로 몸이 아파 휴직하는 동안 뜻이 맞는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행복한 학교를 새롭게 일구어 보리라던 오래된 꿈은 어느덧 접게 되었다. 내 몸, 내 주변부터 챙기는 일이 우선적으로 다가오면서 타인을 의식하는 ‘좋은사람병’에서 벗어난 것 같기도 하다. ‘좋은 학교’에 대한 꿈, 교사로서의 투철한 사명감 따위를 얼마간 내려놓게 되면서 그 일을 꼭 새로운 학교를 세우는 것으로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대신 그러한 꿈꾸기로부터 한발 물러나서 공립형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호흡해보고 싶다는 것으로 바람을 바꾸었다. 물론 쉬이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공교육 시스템과 학교를 비롯한 사회 안팎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갖가지 통념과 편견과 고정관념을 어떻게 깨나갈 것인가는 대안학교로 가게 되더라도 여전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거센 풍파 위의 작은 쪽배 같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고, 이 속에서 상담과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은 나날이 늘어 가는 중이다. 아이들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올해 봄 학기부터 대학원에서 상담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라는 그녀는 제도로서의 교육과 사랑으로서의 교육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지병이 되어버린 허리 병을 안고서 오늘도 학교로 향한다. “한 교실 안에 인생이 막, 서른 개씩 마흔 개씩 뭉쳐져 있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얘기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여전히 순수하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안 그런 아이들보다 더 많답니다!” 그 예쁜 아이들이 제 길을 한번 찾아보겠다고 누가 뭐래도 꿋꿋이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그 길에 뚜벅뚜벅 그녀가 동행하는 중이다. 대체로의 교육 현실을 비롯한 사회의 마디마디는 변함없이 그늘져 있지만 저 발걸음들로 인해 새로운 계절은 도착하고 꽃들은 피어나고 현재는 확장되어갈 것이다. 그녀의 관심과 격려를 발판 삼아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아이들, 저마다의 우주로 팽창해갈 지금의 이 아이들은 어떤 미래를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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