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다

by 센터 posted Feb 26,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강경희 학생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앞으로 뭐 할 거냐.”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것은 있느냐, 옆집 누구는 이번에 어디 취직했더라, 아빠 친구 아들은 무슨 시험 준비한다더라 등. 몇 가지 정해진 레퍼토리 안에서 돌고 도는 질문 앞에서는 덮어놓고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라는 지상 최대의 난제 앞에서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봅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내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어떤 회사에 이력서를 낼지 다들 열심히 찾아볼 겁니다. 평균 월급(또는 연봉)이 얼마인지는 핵심 정보에 포함될 테고, 직업의 평판과 직업군의 사회적 지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입사 경쟁률, 사내 분위기, 복리후생, 승진 가능성, 회사까지의 통근 거리 등 많은 요소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평생직장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능하다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다니고 싶은/다닐 수 있는 곳에 취직하길 원하니까요.


다소 불완전하고 어쩌면 제한된 보기 안에서 선택하는 비자발적인 결정이겠지만 연봉과 복지제도, 회사의 평판, 조직 분위기 등 개인의 선호와 사회적 기준에 비춰 나름대로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이력서를 낼 회사를 결정하고 입사 시험과 면접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우리가 눈여겨보는 선택의 기준에 ‘안전’은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안전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인가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안전 따위는 그리 중요치 않다고 간단히 넘겨버려서일까요?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기 때문입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원청 소속이든, 자회사 또는 하청업체 소속 파견 노동자든, 특수고용노동자든, 내가 어떤 고용 지위에 있든, 그 위치와 상관없이 그 일터는 안전해야 합니다.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목숨을 내걸고 일해야 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고, 매일같이 하는 일을 제대로 된 안전장비 하나 없는 채로 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가고 싶은 일자리를 그려볼 때, 그 일터가 안전할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게도 모든 일터는 안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청년도 입사지원서를 내며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진보나 개혁이라 이름 붙이기도 낯부끄러운, 단지 상식의 선에 놓여있는 지루하고 원론적인 규범입니다. 인간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입니다. 공공기관이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 채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공급원으로 기능해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추모제.jpg

2019년 1월 27일, 광화문에서 진행된 고 김용균 6차 범국민추모제


1994. 12. 6 경상북도 구미시 출생

2018. 9. 17 한국발전기술 입사,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트랜스퍼타워(TT04C TT05A) 배치


짧디짧은 고 김용균 씨의 약력을 마주하고 한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두 줄 사이에 놓인 노력과 땀, 눈물과 희망, 보람, 기쁨의 순간들도 함께 읽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더라면, 기계를 멈출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그 두 줄 아래 써내려갈 수 있었을 기쁨, 눈물, 노력, 땀, 웃음의 기록들. 어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빛’ 같았던 아들의 꽃다운 삶을,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표로 둔 원·하청업체가, 20여 년에 걸쳐 발전소 외주화를 추진하며 위험의 외주화 역시 가속화한 정부가, 효율 앞에 생명을 저버린 부정의한 사회가 앗아갔습니다.


1년에도 수천 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 하나 없이, 자신이 맡은 업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죽어나갑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와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 군, 현장실습이라는 명목 하에 관리자도 없는 공장에서 근무하다 사고를 당한 고 이민호 군, 태안화력발전소의 고 김용균 씨. 반도체용 물질을 개발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 SDI 황모 선임연구원 등 수많은 노동자가, 청년이, 제 삶을 가꾸어가던 바로 그 자리에서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내가 김용균이다”라는 외침은 비정규직에게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맡겨도, 비용을 아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현실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자기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고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기초적인 요구조차 정치적 의도가 담긴 행위로 매도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촉구하는 기사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노조 세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내가 김용균이다’ 운동 역시 노조가 그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벌인 것일 뿐”이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낱낱이 들춰낼 필요도 없지만, 그 사람도 나와 같이 살과 영혼을 가졌던 사람임을 생각할 때, 그의 이야기를 내 삶 안으로 들여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이 이 세계에 숨을 쉬고 살아가던 평범함 청년이었음을 떠올리는 데서 공감과 연대가 시작됩니다. 스러져간 이들의 이름들을 애써 떠올리기 전에 이미,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음식을 배달하고 택배를 배송하는 노동자들, 학습지 교사와 대학 등 교육·연구기관의 계약직 노동자들, 봉제 공장의 비정규직 디자이너와 재단사, 수속·보안·경비 등 공항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의 업무를 맡는 비정규 노동자들까지. 내 곁이, 그리고 곧 내가 서게 될 자리가 비정규 노동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멀지 않은 날에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일상이 다른 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며, 나의 노동 역시 누군가의 일상을 이루는 힘이 됨을 알고 있습니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는 한 인터뷰에서 청년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노동자가 되어 달라. 특히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1)


부당함에의 저항과 정당한 권리에의 요구를 가능케 하는 것은 타인을 위한 선의가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용기입니다. 청년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개인의 잔혹사를 동원할 때에만 높아지는 공감과 연대를 넘어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떠받치는 힘임을, 우리 모두의 삶을 지탱하는 노동자임을 기억할 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

1)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 “비정규직 위해 계속 싸울 것” 〈연합뉴스〉, 2019. 02. 08.

https://news.v.daum.net/v/20190208162321348?f=m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