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노동인권교육] 수상한 청소년 노동 세계

by 센터 posted Feb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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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 노동을 살필 때 기억해야 할 것


“우리는 학습 노동자입니다. 학생이라는 말 대신 학습 노동자라 말하는 것은 우리의   공부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학습 노동자들은 공부를 할 권리가 있듯 쉴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 합니다.하나. 과도한 학습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 〈2013년 5월 1일 노동절, 대구 초등학생들이 만든 선언문〉 중에서


2013년 5월 1일 노동절에 대구 초등학생들이 만든 선언문의 일부다. 학생의 학습 노동자 선언과 쉴 권리 요구는 노동자가 하루 8시간 노동을 선언하며 인간다운 삶을 위한 권리를 요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한 선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학생의 학습 노동자 선언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청소년 노동을 이해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청소년 노동을 살필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 사회 청소년은 사회·경제·정치적 약자이면서 사회적 소수자라는 사실이다. 청소년이 일할 때 더 취약한 위치로 몰리는 이유는 우리나라 노동 현실에 청소년의 이중 삼중의 약자성(나이 어린 학생 노동자, 학교 밖 여성 청소년 노동자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노동과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그들의 노동은 늘 부차적(공부가 먼저인 알바‘생’)이고,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려 사소하다(‘용돈’이나 번다) 말한다. 위험한 노동 현장은 은폐한 채 미숙한(‘부주의’로 다치는) 사람의 잘못으로 몰아간다. 다중의 약자성을 살피지 않고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 전에 왜곡과 편견에 빠지기 쉽다.


청소년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법·제도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당하게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청소년은 단순히 ‘보호’와 ‘수혜’,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을 동등한 자격이 있는 권리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면 청소년에 대한 보호는 쉽게 ‘보호주의’로 흐를 것이다. ‘불쌍하게 일하는 청소년 우리가 도와주자’라는 생각은 그래서 위험하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보호주의적 관점은 아동 노동 ‘착취 금지’에 논의를 집중시키기보다 아동 ‘노동 금지’로 방향을 잡기 쉽다. 노동한 아동의 문제인가? 다른 예로, 청소년을 야간 노동에 고용하는 것을 규제하고 야간 노동의 위험성을 짚어야 할 문제를 ‘야간 노동 19금’으로 만들어 버린다. 주체가 바뀌면 책임도 바뀐다. 진짜 책임자는 빠지고 위험한 노동과 경제적 착취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문제로 남는다. ‘보호받을 만하지 않은’ 청소년(학교 밖, 거리, 중도 입국, 이주, ‘싹수없는’ 청소년 등)은 아예 논의에서 밀어내는 배제와 낙인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한다.


청소년 노동을 살필 때 기억해야 할 것과 청소년 삶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청소년 ‘알바’로 대표되는 노동 현실, 특성화고 현장실습으로 대표되는 공교육 과정의 일 경험 제도와 노동권 문제를 살펴보겠다.


더 빠르게 취약한 곳으로, 밑바닥 노동 실태


최근 10년 사이 일하는 청소년은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전국 단위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 이상 학생 중 대략 4분의 1이 노동 경험이 있으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경우 3분의 1가량이었다. 한국아동청소년 인권실태 연구 Ⅵ(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6)에서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경우 노동 참여 비율이 48.1퍼센트로 두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 학교 급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 밖 청소년(2015년 기준 37만 906명 추정)의 경우 40퍼센트 정도로 파악되며, 집을 나온 청소년의 경우 관련된 공식적인 통계를 찾아보기 어렵다.(황진구·유민상, 2018)


또한, 중학교 때 아르바이트 노동을 시작했다는 비율이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14.9퍼센트, 2학년의 경우 11.2퍼센트, 3학년의 경우 10.4퍼센트로 나타나 학년이 낮을수록 그 비율이 높다.(청소년정책연구원, 2014)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는 나이가 점차 낮아지고 청소년기 일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14) 보고에 따르면,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 참여 경험률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 23.9퍼센트, 한부모 가정일 때 32.1퍼센트, 조손가정 및 기타의 경우 56.2퍼센트로 나타났다. 잘사는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 18.6퍼센트가 노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못사는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 33.9퍼센트가 노동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 노동의 확산과 ‘불안’한 삶이 일상화되면서 가족구성별 거주 형태나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청소년의 노동 참여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청소년 노동 실태와 연관 검색어처럼 등장하는 것은 ‘최저임금 미달 지급’, ‘근로계약서 미교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미실시’ 등이다. 이는 매년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근로감독과 법 위반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 노동관계법의 실효성을 확보하지 않은 결과다. 법에 정한 최저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소년은 더 빠르게 취약한 노동으로 밀려나 ‘밑바닥 노동’을 이루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기획한 ‘십 대 밑바닥 노동-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세계’는 통계로 잡아내기 어려운 노동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특히,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면서 노동 조건이 어떻게 더 후퇴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10여 년 전 청소년 노동자의 대표 얼굴이 주유소, 패스트푸드점이었다면 지금은 웨딩홀, 배달대행업 등이다.


웨딩홀, 뷔페 등에서 일하려면 직업소개소인지 파견업체인지 불분명한 업체에 온라인으로 가입부터 해야 한다. 업체는 사회연결망 서비스로 청소년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지시 사항을 전달한다. 일할 기회를 얻은 청소년은 연회장 병풍 뒤에서 대기하고 바닥에 앉아 밥을 먹으며 입 주변에 경련이 날 정도로 웃는 표정을 유지한 채 하루 10시간 넘게 일한다. 은행 이체 수수료 부담과 서류상 휴게 시간 임금 갈취, 새벽같이 나와 기다리다가도 행사가 취소되면 집에 가야 하는 등 부당한 일투성이지만 다른 일자리가 없다 보니 그냥 참고 버틸 뿐이라고 한다.


위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 음식점 주인, 사무실 사장한테서 욕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먹고살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처음 일할 때는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호 지켜 가며 일했다가 하루 종일 겨우 6천 원 번 날도 있었다. 그 다음 날 진짜 굶었다. -《십 대 밑바닥 노동》 ‘목숨 걸고 달린다’, 72쪽


배달대행업체에서 ‘목숨 걸고 달리는’ 청소년도 늘고 있다. 그 이유는 플랫폼 노동 증가도 있지만 직접고용하는 규모 큰 사업장의 경우 19세 이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30분 배달 노동’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 관심으로 안전한 배달 노동을 위한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8세 미만 노동자는 더 빨리 배달대행업체로 밀려났다. 18세 미만자를 고용할 경우 친권자나 후견인 동의서를 갖춰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과 근로감독이나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사업주들이 기피한 결과다. 청소년이 어떻게 더 취약한 위치로 밀려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2015년 우원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배달대행 등의 일을 하는 15~19세 특수고용직 청소년은 3,75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산재보험에 가입된 경우는 53명에 불과했다.


공교육 과정의 일 경험 제도와 노동권


공교육 과정의 일 경험 제도에도 청소년 노동권 문제가 숨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진로 체험, 봉사활동(시설과 기관의 화장실 청소, 행사 도우미 등무료 노동 ‘강제’)과 자유학기제 진로 체험,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현장실습 제도를 통해서 일 경험이 시작된다.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어정쩡한신분으로 참여하는 일 경험 제도 중 일부는 노동시장의 밑바닥을 ‘깔아 주는’기능을 하고 있다.


특히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은 3학년 2학기에 산업체에 나가 현장실습을 하고,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일학습병행제의 특성화고 단계, 신분은 ‘학습근로자’)에 참여하는 학생의 경우 2학년 1학기부터 산업체에 나가 일하고 있다. 2017년 말 기준 2천여 개 사업장에서 7천여 명의 학생이 도제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현장실습은 해마다 6만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다. 


1.학습시간_경고스티커_아수나로.jpg@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6세부터 일 나가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와는 다른 사회에 나가서, 일 잘 못하면 욕을 먹고, 내가 한 일이 회사에 손해를 끼쳐서 쿠사리를 먹고 하니까… 〈반월시화공단 ‘학습 근로자’ A씨〉


A씨처럼 ‘정신적으로 힘든 일’ 경험이 16세부터 공교육 과정에서 행해진다. 학습과 교육 목적은 사라진 채 영세업체 인력난 해소에 ‘쓰이는’ 기능만 남은 제도가 버젓이 교육의 이름을 달고 있다. 기업의 필요를 중심에 둔 일과 학습 병행.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불완전한 제도에 학생만 희생당하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 과정에서 학생 신분으로 참여하는 일 경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일 경험 제도에서 학습과 노동은 어떻게 구분하고, 구분은 가능한지(교육부는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쓰면 학생이고 근로계약서를 쓰면 노동자로 구분한다!), 일 경험 제도에 참여하는 학생의 노동권 보장 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논의와 책임의 부재 속에 재학 중 현장실습이 비정규직 입직 통로로 굳어 가고, 콜센터 고객센터와 음료 공장 등에서 현장실습 중 희생당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청소년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원칙과 기준 마련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듯 청소년 노동 관련 법·제도 정책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러나 각 법령마다 다른 나이 기준과(근로기준법 18세, 청소년기본법 24세, 미성년자 19세 등) 청소년 보호와 규제의 엇박자 정책(출입은 가능한데 고용은 금지되는 업소의 혼재), 법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부족, 상담과 권리구제 시스템을 갖추기보다 청소년 대상 노동관계법 교육에 집중하는 현실, 그 결과 집단적 대응과 연대의 중요성은 생략한 채 개별적인 대응 일색의 교육 시행 등은 한계가 분명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청소년기 누려야 할 기본권과 노동권의 기준, 이를 확보하기 위한 원칙과 체계의 부재에서도 비롯한다. 동등한 자격을 가진 시민이자 심신의 성장 과정에 있는 청소년기의 특성을 고려해 청소년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기본 원칙과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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