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건강 위협받는 이주 노동자들

by 센터 posted Dec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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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수 센터 정책연구위원



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이기도 한데, 많은 일본 여행객들이 ‘가성비’ 좋은 일본 편의점 도시락에 감탄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도시락 문화에 익숙해서 어딜 가더라도 점심시간 즈음에 도시락 가게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값싸고 맛있는 도시락은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  


도시락 제조는 이른 새벽부터 아침시간에 걸쳐 출하되어야 하기 때문에, 심야노동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도시락 제조는 내국인 인력 수급이 쉽지 않고 야간근무수당 등 비용도 들기 때문에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일본의 이주 노동자들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산업부문은 제조업인데, 이 가운데에서도 금속제조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인력이  집중된 분야가 바로 식품제조업이다. 일본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도시락을  비롯한 다종다양한 즉석식품들은 바로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일본 편의점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만든 도시락을 유학생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점원에게 구매하여 먹고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은 2017년 10월 기준으로 약 128만 명에 이른다. 일본 내 전체 외국인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2008년 이주 노동자 규모가 약 49만 명이었음을 고려하면 10년 사이 두  배나 증가한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특별영주권자, 미등록체류자 등이 빠져 있어 실제 이주 노동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이주 노동자는 제도상 기능실습생과 일반 외국인 노동자로 구분된다. 먼저 일반 외국인 노동자는 기능실습생 이외의 이주 노동자를 말하는데, 전문기술 분야 노동자, 영주권 등의 체류 자격에 기반을 둔 노동자, 유학생 등이 자격 외 활동으로서 일하는 경우 등을 포함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문기술 분야 종사자 약 24만 명, 영주권자 등 신분기반체류자 약 46만 명, 특정활동(EPA에 의한 간호 사 등 보건의료 부문 이주 노동자 포함) 종사자 약 3만 명, 자격 외 활동(유학 생 아르바이트) 종사자 약 30만 명, 기능실습생 약 26만 명이다. 이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기능실습생의 출신 국가를 살펴보면 2016년 기준으로 베트남 38.6퍼센트, 중국 35.4퍼센트, 필리핀 9.9퍼센트, 인도네시아 8.2퍼센트, 태국 3.2퍼센트, 기타 4.7퍼센트이며, 기능실습생이 가장 많이 취업하는 산업은 제조업과 건설업이다. 최근 수년 간 베트남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산업 부문 가운데에서도 전통적인 금속제조업과 건설업 외에 식품제조업, 서비스업 등에 취업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일본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가운데 눈여겨볼 부분으로 우선 장시간 노동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서비스업 부문에서는 다수의 이주 노동자들이 주 1일 휴무에 12시간 내외 일하며 휴식시간에는 전단지 배포 등 가외적인 업무를 하는 불법적인 관행이 만연해 있다. 사무 직종의 경우에는 무역업 등의 분야에서 언어 능력을 활용하는 일이 많은데, 외국과의 시차로 인해 빈번한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으로의 이동 시간을 노동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어 장시간 노동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른 새벽에 나가 서너 시간을 차로 이동하여 현장에 도착하는 일이 빈번한데도 작업일지에는 8시간만 일한 것으로 기록하는 일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 노동자 및 현장관리자로부터의 괴롭힘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서투른 언어 사용을 두고 놀리거나 특정 국적이나 민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괴롭히는 일을 겪고서 스스로 일을 그만두는 사례도 있다. 일본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업무를 주로 맡아서 하다 보니 다치거나 병이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다수의 사용자들이 산재보험 처리를 회피하거나 민간보험으로 처리하려 하며, 심지어는 해고해버리거나 일을 그만두도록 종용하는 일도 있다. 


기능실습생은 일반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 장시간노동, 괴롭힘, 산재은폐 등을 더욱 빈번히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기능실습생은 인력 수급 구조 상 입국 시 상당한 채무를 짊어지게 되며, 뿐만 아니라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능실습생은 특정 기업에의 취업을 전제로 비자를 받아 입국하게 되며, 해당 기업이 어떤 이유로 폐업하게 되면 바로 귀국해야 한다. 반대로 해당 기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더라도 기능실습생은 일을 그만둘 자유가 없다. 일본에서 기능실습생에게 해고란 강제귀국을 의미한다. 한국에서처럼 불법체류 혹은 ‘미등록’ 신분으로 일자리를 찾거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에서 이주 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년 수천 명의 기능실습생들이 ‘실종’ 처리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어 지난 2017년에는 한 해 동안의 실종자가 약 7천 명에 이르기도 하였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저임금, 잔업수당 없는 장시간노동, 허름한 숙소에 지내면서 고액의 주거비용 지불 등 부당한 대우를 그저 감내해야 하는 현실에도 불만을 표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에 기능실습생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본국에서 일본어 및 일본에서의 생활에 관한 연수를 받고 오는데, 기숙학원에서 6~10개월간 이루어지는 연수를 받아야만 기능실습생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약 1천만 원에 이르는 연수비용을 빚을 내어 충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일부 악질적인 일본 취업 소개업자들의 행태로 더 큰 빚을 짊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이주 노동자들 역시 이처럼 취약한 신분적 지위에 놓여 있는데, 이로 인해 무엇보다 안전과 건강을 위협받는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5년간 일본의 이주 노동자 사망원인별 통계를 살펴보면 전체 사망자 425명 가운데 업무 중 사고로 인한 사망이 77명으로  18퍼센트, 뇌심혈관질환이 117명으로 27퍼센트, 자살이 41명으로 10퍼센트에 이른다. 이는 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청장년층이며 근속년수도 평균적으로 3년 내외임을 고려할 때, 장시간노동에 따른 과로와 괴롭힘으로 인한 과로 사 및 과로자살이 적지 않음과 더불어, 이들이 주로 안전보건 대책이 부실한 중소영세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기능실습생 가운데 300인 이상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3.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반면,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50.4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자전거 사고 등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역시 72명으로 1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교통요금이 비싼 일본에서 출퇴근 및 일상생활을 위해 자전거를 이용하다 사고를 겪는 일이 많다. 그밖에도 이주 노동자들은 의료비를 아끼기 위해 본국에 의약품을 보내달라고 하여 이용하기도 하고, 통신비를 아끼기 위해 스마트 폰이 아닌 구형 휴대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상과 질병으로 도중에 귀국하는 이주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2016년 5월 국회 질의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도중 귀국한 이주 노동자는 13,479명인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자진 귀국하거나 고용주로부터 귀국할 것을 종용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십수 년 전부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물론  한국에 중국동포들이 있다면 일본에는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있다. 다만 중국 동포들의 경우 도시 저임금 부문의 노동시장에 분포되어 있는 반면, 일본계 브라질 노동자들은 자동차 제조업 등 대규모 공장 인근 교외에 ‘일본 속의 브라질’을 만들어 살고 있어 도시에서는 거의 눈에 띠지 않는다. 일본계 브라질 노동자들이 일본 사회에 좀처럼 통합되지 못하고, 그들의 마을이 슬럼화되고 있는 현실을 차치하더라도, 일본 정부에게 더 큰 문제는 그마저도 더 이상 유입될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계속되는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일본 정부는 이주 노동자 유입을 대폭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를 개정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권은 물론 기본적인 인권마저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제도상의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이주 노동자 유입 규모만 확대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노동계 및 시민사회 반발이 거세다.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50만 명의 이주 노동자를 추가로 받아들일 예정으로 농업, 건설업, 숙박업, 사회서비스, 조선업 등 분야에서 일본어 시험과 기능 시험을 거쳐 최장 5년까지 체류 가능 한 재류자격을 신설하고, 기능실습생 수료자의 경우 시험을 면제하여 최장 10년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체류기간을 대폭 늘리고 체류자격을 다소 완화한 것인데, 새로운 제도 역시 표면적인 도입 취지는 기능실습생과 동일하다. 물론 실질적인 제도의 기능도 동일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기능실습생제도란 “일본이 선진국으로서 역할을 다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와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기술, 기능 및 지식을 개발도상국 등에 이전하여 이들 국가의 발전을 위한 인재육성에 협력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애초에 단기간 체류를 전제로 입국한 노동자들에게 숙련도 있는 업무를 맡기기보다는 단순노동에 종사하도록 하는 시스템일 뿐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이주 노동자들을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중소영세기업 부문의 노동력 수급 조정수단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다. 기능실습생들에게는 무엇보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 신분적 종속 상태에 놓이게 되고, 이로 인해  초과착취에 취약하게 되어 있다. 이주 노동자도 노동법을 적용받지만, 노동법은 사후적 보호체계 성격을 지니고 있어 위반이 발생해도 단속이나 처벌이 어렵다. 기능실습생 제도상으로는 사용자의 불법행위가 밝혀져도 1~5년 사이의 기능실습생 수용 정지 처분 수준의 제재에 머무른다. 


일본 정부의 새로운 제도 도입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이상과 같은 기능실습생 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농업, 건설업 등 계절성을 띠는 일부 분야에서는 직접고용 원칙을 깨고 파견회사를 통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밖에도 5년, 나아가 최장 10년의 체류가 가능해짐에도 극소수의 전문기술직을 제외하면 가족 동반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 노동계 및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사업장 이동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 착목하여 한국의 고용허가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한데,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과 노동계가 산업연수생제도 시기부터 줄기차게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비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이주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이다. 형식상으로는 제한적으로나마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으나, 고용허가제 자체가 사용자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이주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옮길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기본적인 시민권이 제약을 받고 노동력으로서만 취급받는 한,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는 향상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우회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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