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끝까지 간 길

by 센터 posted Dec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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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희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지부장



위원장님, 정종태 위원장님.  


여러 차례 눈이 내렸고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있어요. 여전히 이맘때면 불쑥불쑥 울컥거림이 찾아오고, 한쪽으로 밀어두었던 이름들이 떠오르네요. 박상윤, 이지현, 정종태. 마음이 이렇게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 가 봐요. 


며칠 전 조합원 교육을 하면서 학습지노조 17년 역사 속 위원장님 모습을 보았어요. 즐겨 입던 청바지에 노동조합 조끼, 그리고 붉은 머리띠를 하고, 열중쉬어 자세에 한 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항상 선봉에서  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쉬지 않고 끝까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좀 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잖아요. 노동조합의 간부이기 때문에 힘든 것은 당연히 참아야 하고, 배고플 수밖에 없고 어떤 힘든 상황도 견뎌야 하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동자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투쟁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정작 우리의, 동지의 고통은 들여다볼 여유가 없이 살았어요. 그 시절 우리는 왜 그렇게 엄혹했을까요?


정종태.jpg

정종태 위원장


위원장님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위원장님은 늘 외로웠을 거라고 해요. 노조 위원장이 노동조합은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비정규직 투쟁에만 온 힘을 쏟고 있다고 간부들은 늘 쓴소리를 했죠. 현장으로 복귀했을 때, 차비가 없어서 몇 시간을 걸어서 사무실에 왔다고 했을 때도 그것을 무능하다고만 생각했어요. 차비가 없었으니 당연히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그때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가압류라는 회사의 공격이 마음의 따뜻함마저 앗아버린 시절이었어요. 배고픔과 외로움에 몸이 감당하지 못하고 암 덩어리가 자라는 것도 알 수 없을 만큼 엄혹했던 시절이었어요. 


“건강이 나아지면 소박하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싶다." 

늘 활동에 대한 계획을 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위원장 님 덕분에 우리도 열심히 뛸 수 있었어요. 위원장님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았어요. 각 집회나 모임에서 치료비를 모금하고 후원주점을 열고, 어느 곳에서든 정종태 위원장의 안부를 묻고 함께 염려하고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힘들고 외로웠을 위원장님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따뜻한 마음을 채워 드리고 싶어 했죠. 위원장님도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다는 걸 알고 계셨겠죠? 


위원장님이 그렇게 외쳤던 비정규직이 철폐된 세상은 여전히 오지 않네요. 예전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 받고 고통 받고 있어요. 더 많은 형태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생겨났고, 여전히 노동조합할 권리는 투쟁으로 쟁취해야만 해요. 촛불의 민심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하청 노동자, 이주 노동자,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어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지만 지난 6월 15일 대법원에서 ‘학습지교사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자가 맞다’라는 판결이 있었어요. 학습지교사의 노동조합 활동은 정당하다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지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현장의 관심도 높아졌어요. 위원장님이 계셨으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을 그 모습이 그려지네요.   


한번도 투쟁이 멈춰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끝이 없는 이 치열한 투쟁 속에서 그래도 사람이 남아야 한다는 것,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 위원장님을 보내고 지현 언니를 보내고 더욱 간절해졌어요. 늦었지만 더 늦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했던 마음조차, 그 마음 다하지 못한 것 같아 12년이 지난 지금도 늘 미안함과 아쉬움 뿐이네요. 미안합니다. 


다시 위원장님을 추억하는 겨울, “7지부장아, 여민아!” 하는 걸걸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맴돌아요. 위원장님의 마지막 나이보다 이제 제 나이가 더 많아졌어요. 나중에 만나더라도 제가 위원장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니 먼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땐 두 손 꼭 잡고 꼭 안아드릴게요. 많이 고생하셨고 훌륭하셨다고 꼭 칭찬해드릴게요. 그때 그렇게 지켜주고 버텨 주셔서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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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정종태 님은 대학 졸업 후 재능교육에 입사해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하며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2003년에는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 초대 의장을 맡아 조직과 투쟁에 헌신했다. 그러다 2004년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2005년 2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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