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와 청년, 노동이 만날 때

by 센터 posted Dec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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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결 센터 자원활동가



시흥.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시화공단 곳곳에 숨겨진 꿈을 찾으러 찾아오는 도시이자,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보내던 청년들은 또다른 꿈을 찾으러 다른 도시로 흘러 들어가는, 어쩌면 역설적인 구조를 가진 도시이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올 직장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피하고픈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지역사회에 터전을 잡을 수 있게 될 날들을 꿈꾸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어린 나날들의 터전으로 삼던 이들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가까운 곳으로 떠나가기만을 고대하곤 한다.  


필자가 20여 년간 터전을 잡고 살아왔던 시흥의 이미지는,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서울로 향하기 위한 발판’으로 그려져 왔다. 더 넓은 세상을 위해 지금은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겨졌던 우리 동네는,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애정 없이 거쳐가는 지역으로 인식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주변 청년들은 일할 때도 서울, 놀 때도 서울, 쉴 때도 서울에서 보내겠다는 생각들에 빠져 있었고, 매일 밤 서울에서 시흥으로 향하는 광역버스의 긴 줄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회의 사진.png

청년정책협의체 노동인권분과 회의


‘청년의 자치, 자립, 자생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시정의 파트너, 청년정책협의체’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접한, ‘청년정책협의체’란 이름을 달고 있던 포스터는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이름이었다. 시흥에서 생활하는 이들 중 스스로를 ‘시흥 청년’이라 정체화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며, 설사 있다 하더라도 ‘정책’을 ‘협의’하고자 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우리 도시에 애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굳이 ‘시정의 파트너’가 되면서 머리 아파하는 이들은 얼마 없을 것이라 쉽사리 예상되었다. 그러나 우리 지역사회, 그리고 청년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이 잘못되었기를 바라며, 어느새 지원서를 쓰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흥시청년정책협의체(이하 협의체)는 시흥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이 모여 청년정책 거버넌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정의 파트너’이자, 지역사회 청년들을 이어주는 커뮤니티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이다. 협의체는 크게 네 개 분과로 나뉘어 활동하며, 각 분과별 핵심 어젠다를 바탕으로 청년의 입장에서 의제를 발굴하고 직접 실행하며, 이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와 청년의 동반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청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회활동, 정치활동 등의 참여를 확대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사회참여분과, 청년들이 지역 기반으로 생활문화를 만들어나가는데 목표를 두는 교육문화분과, 청년의 사회권적 기본권 확대 및 보장을 목표로 하는 주거복지분과와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 창출, 노동 환경 개선을 통한 자립기반 형성을 목표로 하는 노동인권분과로 이뤄진 협의체에서, 모든 위원은 각자 한 개의 분과에 소속되어 1년여간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필자는 노동인권분과에 소속되어 지난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흥’이라는 지역사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주제이든 시화공단의 존재를 쉽게 지나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공단은 이미 우리 지역사회 이곳저곳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노동인권분과에 소속된 위원들은 ‘청년’으로서 일하면서 느낀, 그리고 곁에서 관찰하며 느낀 바를 이야기해 보기로 하였다. 

“요새 거기서 누가 일하나요?” 

“청년들은 사실 거기서 일 안 하려고 해요. 일은 힘들지, 월급은 적지, 그렇다고 보람이 있나.” 

물론 익히 들어보기는 했지만 대학생이란 안락한 신분에 있던 필자에게는 당장 와 닿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이야기였고, 더 나아가 본인 스스로가 겪었던 진솔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렇다면 청년이 일하고 싶지 않은 기업들에 미래가 있을까? 시흥이 가졌던 역설적인 도시 구조는 이 부분에서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진정으로 취업하고 싶고, 일하고 싶은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어쩌면 그런 기업들은 시화공단이 아닌 어디를 가더라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우리의 지향점이 없다면 공단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울분을 토하는 것에서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청년이 일하고 싶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하나둘씩 각자가 꿈꾸는 일자리, 일하면서 바라게 되었던 일자리의 모습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크게 네 가지 기준을 설정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근로기준법과 함께,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쉴 수 있는 노동환경, ‘꼰대’스럽지 않고 청년을 같은 노동자로서 존중하는 조직문화, 그리고 청년들이 일하면서 미래를 꿈꾸는 자아실현의 측면에서 청년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일자리는 진정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고, 일하고 싶은 기업’과 가까운 기업일 것이라 판단하였다. 이와 더불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시흥에 사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기업 일자리라면 시흥 청년들이 더욱 애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동인권분과에 소속된 우리는 네 개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채워나갈 지표들을 직접 만들어보려 한다. 우선 이를 위해 일반 시민과 청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짜 원하는 일자리, 그리고 그 일자리에서 바라는 바는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동안 시도되어왔던 ‘청년친화기업’ 관련 선행 사업을 검토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 있다. 


보통 ‘청년’이라는 단어와 ‘노동’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취급 받는 경우가 많다. 청년 자신도 스스로를 노동자로 규정하는 대신 다른 무언가로 호명되길 원하며, 공단의 수많은 기업체들 역시 청년이 유입되지 않는 현실에 불평하고, 공단으로 유입된 청년들에 대해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길 원할 뿐 청년들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청년이 유입되지 않는 기업, 그리고 그런 기업들에 거부감을 느끼며 떠나는 청년들이 반복되는 한 지역사회로서의 ‘시흥’을 상상하는 것은 사치일 것이다. 희미한 소속감을 가지던 우리 동네에서 ‘협의체’라는 실험을 진행하며, ‘노동’이란 머리 아픈 이슈에 쉽게 다가가지 않았던 청년들이 공단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존중받는 노동자로서의 청년을 기다리는 일자리, ‘내가 머무는 곳’에서 ‘꿈을 찾는 곳’으로 향하는 지역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청년 노동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청년들이 하나가 될 때, ‘오래된 미래’에 한걸음 다가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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