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심사평] 수기는 감동과 위로다

by 센터 posted Dec 26,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김하경  소설가



6.심사평.jpg

2018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 시상식에서 심사평을 하고 있는 안미선 심사위원 


‘비정규 노동 수기’란 과연 뭘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일반적 수기’와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점이야 많겠지만 그 중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글의 주체, 소재와 주제입니다. ‘일반적 수기’는 누구나 다 쓸 수 있지만 ‘비정규 노동 수기’는 비정규직 노동자만이 쓸 수 있다는 점, ‘일반적 수기’가 내 삶과 내 생각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데 비해, ‘비정규 노동 수기’는 비정규 노동 현실만을 소재와 주요 테마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비정규 노동 수기’는 ‘일반적 수기’에 비해 다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로운 글쓰기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나를 포함한 내 주변, 나아가 사회 전체를 두루두루 살피면서 할 말 못할 말 가리다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너무 눈치를 많이 보면 다른 글과 비슷비슷한 천편일률적이며 그렇고 그런 식상한 글이 될 수 있고, 부당한 현실에 맞서 분노를 표출하다보면 목소리가 커지고 거칠어지기 쉽지요. 그런가하면 너무 진지하면 딱딱해져서 재미도 흥미도 없어집니다. 우선, 이렇게 까다롭고 골치 아픈 글쓰기에 도전한 응모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으로 묶인 비정규직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입니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숱한 패배에  맞서 싸우고 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응모작은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더 속 깊고 더 풍성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와 반대로 해가 갈수록 축소되고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응모작 모두 마치 예심을 통과한 작품처럼 수준 있고 안정적이란 점입니다. 그래서 아직 낙담하기엔 이르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만.  


올해 대상은 학교 급식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수기입니다. 또한 네 편의  우수상은 방과후강사, 퀵 서비스 노동자, 인터넷 설치기사, 가정관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수기입니다.  


심사의 배경에 대해서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비정규 노동의 개성 및 정체성이 생생하고 구체적입니다.    

비정규직은 천차만별이어서 직종마다 노동 현실과 조건이 다르며, 같은 직종이라도 각각의 개인이 처한 현실과 조건 또한 다릅니다. 이러한 직종 간, 개인 간의 차이가 바로 내 수기의 개성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때, 내 수기의 개성  및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보다 내가 종사하는 직종의 노동 현실과 노동 조건, 나 개인이 처한 현실과 조건을 눈에 보이듯, 귀에 들리듯, 온몸으로 체감하듯,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른 비정규직, 다른 인물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통해 개성 및 정체성을 확 보하는 것이지요.  


둘째, 주제를 관통하는 일화들이 가슴을 울립니다.   

이번 수상작들에는 공통적으로 일화가 등장합니다. 그 일화를 따라가다 보면 왠지 가슴이 울립니다. 다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그 일화에 대한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있습니다. 일화는 흥미를 유발하고 다음 이야기에 궁금증을 갖고 계속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일화는 단지 일화로 그치지 않고 전체를 관통하고 전체를 드러내는 핵심 키워드가 됩니다. 말하자면 일화를 따라 가다 보면 가랑비에 속옷 젖듯 독자의 가슴에 주제가 전달되는 것이지요. 머리에 지식을 주입하듯 장황하게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화를 통해 가슴을 울리는 것이지요. 수기를 쓰기 전, 글감들 중에서 주제에 딱 맞는 일화를 찾아 미리 준비해두었다면, 이미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셋째, 주인공의 변화와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 현실의 변화가 감동과 위로를 선사합니다.  

글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글속에서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하지만  오늘의 강물이 어제의 강물이 아니듯,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며,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릅니다. 똑같은 강물, 똑같은 나는 하나도 없습니다. 순간순간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 이것이 시간의 마술이지요.  


그런 점에서 수기 역시 시간이 빚어내는 마술임이 분명합니다. 주인공들은 처음에 ‘나’라는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갈수록 ‘나’는 혼자가 아닌 조직 혹은 단체 속의 개인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처음엔 답답하고 억울해도 참지만 점차 부당한 현실에 맞서면서 노동조합을 알게 되고, 여럿이 함께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동에 나서게 되지요. 그러면서 ‘나’라는 개인은 새로운 갈등과 대립, 좌절과 희망을 맛보며 폭풍 성장하게 됩니다.  


이렇듯 주인공이 부정적 인물에서 긍정적 인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점차 변화 개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감동과 위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 수기의 참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진규 님과 진채린 님의 두 작품은 문장력도 탄탄하고, 논리 정연한 전개와 확고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수상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내년에도 응모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혹한 속에서 투쟁하고 있을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바랍니다. 하루빨리 벅찬 감격 속에서 투쟁이 뜻대로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