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와 민주노동운동의 과제

by 센터 posted Dec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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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센터 대표



노동자들은 묻고 있다. “촛불정부인가, 이명박근혜 3기인가?” 문재인정부가 답하지 않는 가운데, 급기야 “더불어한국당이 적폐다”라는 발언까지 나왔다(한겨레  2018. 12. 12). 적폐 청산을 주창하던 문재인정부가 적폐 청산 대상으로 추락했다는 의심까지 받게 되었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촛불세력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불정부 촛불대통령과 이명박근혜 관료의 동거 


문재인정부는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대선 공약과 함께 출범했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적 원칙들로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2012년 총선·대선 과정에서도 공약한 바 있다. 관건은 실천 의지였는데, 우리가 문재인정부 출범에 크게 기대했던 것은 실천 의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는 촛불정부를 자임했고, 대통령은 취임 즉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과연  촛불항쟁에 동참했던 정치세력다운 행보였고, 국민들과의 약속 이행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과 헌신도가 가장 높은 인사가 바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기대와 함께 우려도 갖게 했다. 관료들의 “민중은 개돼지”라는 시각은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 시대부터 내려온, 아직껏 청산되지 않은 적폐로서 불과 몇 년 전 이명박근혜정부 시기에도 노동기본권 유린으로 드러난 바 있다. 촛불정부 촛불 대통령과 이명박근혜정부 관료의 동거는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자회사 방식 바이러스와  노동정책의 유턴 


문재인정부는 공공부문부터 상시·지속적 업무와 생명·안전 관련 업무를 대상으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실시하여 모범사용자 역할을 보여줌으로써 민간부문에도 확산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정부는 정규직 전환 대상 고용형태에 기간제뿐만 아니라 파견·용역의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포함하는 한편 전환 대상자 선별 기준에서도 상시·지속적 업무 판단 기준을 완화하고 생명·안전 관련 업무를 포괄하도록 했다. 과연 문재인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이명박근혜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촛불정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문재인정부의 촛불정부 초발심初發心은 거기까지였다. 관계 부처 합동 명의로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 7. 20)은 상시·지속적 업무임에도 기간제 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 등을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고,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파견·용역 비정규직의 자회사 상용직화를 정규직 전환 방식의 한 유형으로 설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모두 상시·지속적 업무를 담당하고 시민의 생명·안전과 무관한 업무를 찾기 어렵지만 30퍼센트만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70퍼센트는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와 생명·안전 관련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원칙이 붕괴되자 자회사 방식 바이러스는 급격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결국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파견·용역의 정규직 전환 결정 인원 가운데 자회사 방식 비율은 2018년 9월 말 현재 55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공부문은 모범사용자인가, 자회사 킬링필드인가? 


사용업체가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제3자가 고용한 노동자를 사용하는 고용형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그런 점에서 공공부문 자회사 상용직 방식 민간 제조업의 사내하청과 다르지 않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주가 바뀌더라도 고용주와 사용자가 일치하지 않으면 여전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이거늘 가이드라인은 정규직으로 규정한 것이다. 10년 이상 극심한 노사 분규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KTX 여승무원 투쟁 사례에 보듯이 자회사 방식은 노사 갈등을 피할 수 없다. 


현재 노사 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자회사 설립을 강행하고 있거나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공공기관들은 발전 5사, 한국잡월드, 한국가스공사, 한국마사회, 한국도로공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울산항만공사,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보라매병원, 강원랜드, aT농수산식품유통 공사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남부발전, 남동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동서발전 등 발전 5사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7,800여 명 가운데 1,400여 명만 정규직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자회사 전환 방식을 밀어붙이면서 노사갈등을 겪어 왔다. 지난 12월 11일 서부발전의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의 24세 김용균 씨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컨베이어벨트의 낙탄 처리 업무는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의 성격상 생명·안전 업무가 분명하고 발전소가 가동되는 한 지속되어야 하는 상시·지속적 업무임에도 자회사 방식을 포함한 전환 대상에서 조차 제외되었다. 김 씨가 전환 대상에 포함되어 자회사 상용직이 되었더라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 


자회사를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공공부문 자회사 천국 코레일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2월 8일 강릉발 서울행 KTX 806호 열차가 198명의 승객을 태운 채 탈선 사고를 냈다. 선로에는 아직 전기가 흐르고 있었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승객들은 열차를 탈출해 선로를 밟으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무원의 안내 방송은 없었다. KTX 승무원은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이었기 때문에 불법파견 시비를 피하기 위해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이 같은 열차에 탑승한 승무원에게 업무 지시를 할 수 없었다. 한편,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승무원은 안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눈앞에서 위험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승무원도 사고 원인이나 대처 방안에 대해 전혀 전달 받지 못했기에 승객들에게 사죄의 말씀밖에 드릴 수 없었다. 자칫 대형사고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가져올 뻔했던 아찔한 순간들이 반복되고 있다. 시민들의 생명을 뒷전에 두고 자회사를 남발하는 인간 백정 행태는 이명박근혜정부를 거쳐 문재인정부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겁박하는 정부여당 


문재인정부는 노동정책에 있어 촛불정부의 공약을 이행하는 듯하면서도 유턴을 일삼고 있다. 최저임금은 두 해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을 기록하며 대선 공약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듯했으나 곧바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노동계는 반발했고 민주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철수하며 노정관계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한편, 실노동시간 단축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문재인정부는 주당 노동시간 상한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2018년 7월 1일 부로 시행토록 했다. 주당 52시간 상한제 시행 직전인 6월 19일 경총은 고용노동부에 근로시간 시행계도기간 연장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했다. 다음날인  6월 20일엔 고위당정청회의에서 6개월 계도기간과 처벌유예를 결정했고, 6월 26일은 경제부총리가, 6월 27~28일엔 민주당 원내대표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 연장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마침내 11월 16일에는 총리까지 나서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를 연말까지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시도를 강력하게 규탄했고, 민주노총은  2018년 11월 21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반대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총파업 투쟁을 단행했다. 민주노총 총파업 다음날인 11월 22일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출범하는 날이었기에 예의 고위당정청 인사들은 경사노위에 불참하고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는 민주노총을 성토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교조와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이제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하는 힘 있는 조직”(2018. 11. 6)이라 했고,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노총 이런 데는 지금 대화를 해서 뭐가 되는 데가 아니다. 자기들 생각을 100퍼센트 강요하려고 한다.”(2018. 11. 12)고 했다.  


노사정위 경험으로 노동계에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문재인정부가 생산적인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친노동정책으로 노동계의 신뢰를 쌓는 노력을 경주하는 실천이 우선되어야 했다. 일방적으로 탄력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를 추진하면서 민주노총 때리기에 진력하는 것은 사회적 대화를 겁박하는 방식으로써 사회적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이유 있는 ‘더불어한국당 적폐론’ 


문재인정부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노동정책에서 대선공약 실천을 추진하다가 유턴했듯이 경제개혁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유명무실화되었고, 재벌체제 개혁과 공정경제질서 회복은 지지부진하여 중소영세기업에 공정이윤율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사회경제개혁 의지만 후퇴한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야당시절 주창해왔고 대선 공약으로도 천명했지만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현재처럼 자당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는 상황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고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당은 지지율이 낮을 때는 권력 분점과 상생을 주창하지만 지지율이 상승하면 권력 분점과 상생을 거부하고 권력 독점과 일방적 지배를 추구한다. 이명박근혜정권의 수구세력을 빼닮았다. 


그런 까닭에 “더불어한국당이 적폐다”라는 비판은 선거제도 개혁 요구를 묵살한 채 예산안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행태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인 공존과 상생을 부정하는 자들의 야합을 지목한 것이다. 정치권력을 독점한 세력이 시장권력을 독점한 세력과 지배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촛불항쟁의 열기 속에서 한때 적폐세력으로 낙인 찍혀 곤혹을 치르던 경총이 어느덧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 노동정책의 결재권자가 되었다. 어쩌면 촛불항쟁의 열기로 잠시 수순이 지체되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주노동운동은 촛불과 함께해야 한다 


민주노동운동이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면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 받았던 ‘욱일대수장’을 가슴에 품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유구한 역사에도 청산당하지 않은 적폐세력과 그들의 카르텔을 상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민주노동운동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란 각축의 장이며, 그곳에서 적폐세력과 그들의 카르텔에 당당히 맞서 촛불정신을 지켜내야 할 임무가 민주노동운동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운동은 앞장서 촛불을 지피고, 촛불을 밝히고, 촛불을 지켜냄으로써 촛불 민중과 함께 박근혜정권 퇴진과 촛불정부 탄생을 이루어냈다. 촛불항쟁의 성과로 진행된 대선 과정은 그 자체가 축제였으며, 그 과정에 제출된 촛불세력의 대선공약들은 촛불민중의 염원을 담아낸 것들이다. 따라서 촛불민심을 끌어안고자 했다면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선언했건 파격적 대선공약들의 저작권은 촛불민중에게 있다.  


민주노동운동은 촛불민심을 반영한 변혁적 대선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그 과정을 감독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민주노동운동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건, 자리를 박차고 나오건, 촛불민중과 함께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이익집단들의 이권이나 챙기는 민원창구가 아니다. 민주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자들은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 관계와 염원을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촛불의 명령이다. 


민주노동운동이 사회적 대화에 임할 때는 촛불민심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촛불민중을 위해 작은 성과조차 쟁취할 수 없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된다. 그때는 조용히 뒷문으로 나오지 말고 사회적 대화에 불을 지르고, 촛불을 들어야 한다. 다시 촛불민중과 함께 반도의 모든 광장들을 천만 촛불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래야 촛불민중의 분노와 염원을 담아, 마침내 거친 함성소리와 함께 촛불민중의 권력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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