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윤아! 우리들의 영원한 죽비가 되어다오1)

by 센터 posted Nov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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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센터 상임활동가



그리운 상윤아!

못난 형이 널 잊을까봐 띄우는 편지를 받아다오.

네가 하늘나라로 올라간 지 벌써 14년이 흘렀구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몽롱해진다. 현장으로 복귀해 답십리 사무실에 유배당한 채 노닥거리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보내던 2004년 세밑이었지. 난데없는 날벼락으로 날아든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서 처음엔 당체 믿기지가 않았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오히려 전화위복이라며 더 너끈히 역경을 헤쳐 나올 단 한 놈이 있다면 바로 너였잖아. 끈질기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깔깔대며 좋아할 녀석이 먼저 세상을 버리다니 처참하고 아득했다. 맑고 아름답게, 치열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한없이 낮추되 호방한 풍모로 동네 마실 가듯 갈지자 걸음으로 소풍처럼 세상을 살아온 네가 이렇게, , 이렇게 가다니. 이제 네 이름자 앞에 두고 무슨 운동을 얘기한단 말이냐. 동지들끼리 무슨 농담을 지껄일 수 있단 말이냐. 그땐 그랬다.


세월은 무심하여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촛불항쟁을 지나 또 이렇게 다시 오늘이 왔구나. 그때의 통절했던 기억도 벌써 희미해져가고, 너나 종태2) 이름 떠올리면 금방 차올랐던 눈물과 상처도 많이 잊혀졌구나. 인간은 참 이기적인 동물이잖아. 그래도 한때는 네가 떠난 그 자리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그냥 세상이고 노동 운동이고 등지고 다 싫어졌는데···. 한별이와 제수 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속절없이 무너졌는데···. 무엇보다 그 힘겨웠던 시간 아무 힘이 되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밉기만 했는데···. 세상에 온 순서로나 낙천적인 성격으로나 네 놈보단 내가 저승길도 먼저 앞장서가야 도리 아니었더냐. 그런데 벌써 난 너를 잊고 이럴 때에야 널 떠올리다니. 지난 세월 동안 내가 타락했구나. 내 속울음 잦아드는 속도만큼 빠르게 네 앞에서 나는 변절했구나. 미안하다, 상윤아. 정말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불쑥 에이, XX!” 형이고 나발이고 육두문자 입에 달고 튀어나올 것 같은 상윤아!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너는 사진으로는, 정물로는 어울리지 않는 놈이잖아. 너야말로 동물이잖아. 움직이고 욕하고 지껄이고 투쟁하고 팔딱거리고 들쑤시고 오만 표정과 손짓 발짓으로 동지, 친구, 정보과 형사, 술집 사장님, 길 가는 행인까지 붙들고 우당탕탕 얘기해야 직성이 풀리는 진정한 동물이 네 놈 아니었더냐. 사심 없이 그저 사람이 좋아 운동을 행복으로 여긴 네가 아니었더냐. 민주노총에서 제일 오지랖이 넓은 놈. 사람 만나면 생년월일 생시까지 따져 위아래 위계를 정하는 놈.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끝까지 함께 책임져야 당연한 놈. 용역깡패 앞에서 손가락을 갈고리로 만들어 두 눈을 찌르겠다고 장난 아니게 위협하던 놈. 그래도 술이라면 헤헤거리며 사족을 못 쓰던 놈. 우리 거나하게 취해서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던 게 몇 번이었더냐. 그날 그때 그 공기가 맛보고 싶구나.


박상윤.jpg

마석모란공원 박상윤 열사 묘소


가장 사람 내음 풍기던 활동가로 살았던 상윤아!

기억나니? 2000년 이랜드그룹 본사였던 신촌 사옥 앞마당 감나무 아래 우리 머리 맞대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놓고 고심했던 때가 떠오르니? 네가 민주노조라면 응당 받아들여야 한다고 세게 밀어붙였잖아. 우린 멋모르고 옳으니까 받아들였을 뿐인데 265일 장기파업으로 이어졌지. 네 놈 말을 들으면 장기투쟁으로 가는 구나 농 삼아 투덜대기도 했지. 몸 고생이야 막심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마음으로 싸웠던 그때가 제일 노동 운동다웠어. 투쟁 전술을 얘기할 때 너는 참 진지했고 꼭 책임을 함께 졌쟎아. 그 모습이 참 믿음직했다. 방송사 비정규투쟁에서도 그랬고, 한통계약직 투쟁에서도 그랬고, 학습지 투쟁에서도 그랬고, 상용직 투쟁에서도 그랬고, 서울일반노조 투쟁에서도 그랬고, 덤프연대 투쟁에서도 그랬지. 비정규직이 뭔지도 잘 몰랐던 그때, 이미 너는 그 투쟁 현장에서 늘 뒹굴었어

그뿐이었던가. 너는 투사였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조직가였다. 밤을 낮 삼아 조직화 사업이라면 사활을 걸었다. 평소에 그렇게 활달하던 네가 조직화 사업에 실패했을 때 얼마나 엄하고 매서워지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너는 투쟁전술을 지도하고 조직화 사업을 성과 있게 끝맺을 줄 아는 배포와 실력을 겸비한 드문 활동가였어. 노동 운동의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위기를 말하는 오늘, 네가 참 많이 보고 싶다.


상윤아! 끝내는 동지로 불러야 할 상윤아

오늘 이 땅 노동 운동의 현실이 지랄 같구나. 이젠 위기라고 얘기하는 게 식상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인 게 분명한데 우린 무력하구나. 평가와 진단은 난무하는데 대안이 뾰족하지 않구나. 이제 입을 닫고 정신을 맑게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귀를 한층 열고 현장의 아우성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 노동자들과 진창에서 뒹굴며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네 방식대로. 네 정신대로.


맑고 아름다운 운동을 꿈꿨던 상윤아!

마지막 고독한 시간에 떠올린 건 무엇이었더냐. 삶이었더냐. 죽음이었더냐. 너를 사지로 몰아간 건 정권과 자본뿐이었더냐. 아니다. 우리도 끝내 공범이다. 맑고 아름다운 운동의 희망에 먹물을 튀긴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간만에 오늘 다시 속죄하며 네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박상윤 동지여! 그대의 맑은 정신으로 죽비가 되어 우리 등을 후려쳐다오. 그대의 아름다운 열정으로 죽비가 되어 우리 두 어깨를 두들겨다오. 현장에서 진정으로 맑고 아름다운 노동 운동의 초심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다오. 진창에서 연꽃이 피어오르듯 새로운 노동 운동의 새싹이 돋아날 수 있도록 해다오. 그대처럼 우리도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해 다오


그 무엇보다 자식이자 남편이자 아빠였던 박상윤 동지여!

너를 먼저 떠나보낸 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에 그저 미안하고 송구할 뿐 무슨 말을 보탤 수 있겠니. 너만의 호탕한 웃음처럼, 맑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던 너의 정신과 사상이 민들레 꽃씨처럼 만천하에 흩날리는 날 가족들의 입가에도 웃음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너의 분신이 되어 그 정신을 이어나갈 우리가 있고 너를 오롯이 가슴에 담은 가족이 있기에 너는 오늘 시퍼렇게 살아 있다. 너와 우리 모두가 꿈꿨던 그날이 올 때까지 너의 이름으로 쉼 없는 전진을 약속하며 다시 뜨거운 동지애를 담아 너를 기억한다. 아프지만 한마음으로 떠올린다

사랑한다! 박상윤 동지여! 노동해방 그날까지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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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박상윤 열사는 19876월항쟁 관련 시위로 구속되고, 1992년 한국빠이롯트만년필에 입사해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노동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의 현장에는 그이가 있었다. 쉼 없는 활동으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운동에 헌신하다 20041230일 운명했다.


1) 박상윤 동지 5주기(2009)에 쓴 추도사를 약간 수정한 내용임.

2) 단식 후유증 끝에 발병한 위암으로 운명한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정종태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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