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빼기'사회]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의 한계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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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순 센터 정책연구위원




촛불시민의 염원을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핵심 경제 정책이 바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었다.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파에서 언급된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론의 변형된 형태라 할 수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의 주장을 투박하게 요약한다면, 임금이 상승하면 소비(내수)가 증가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기업의 투자 확대와 궁극적으로 고용 확대로 연결되는 선순환으로 귀결하여 경제가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의 지원·후견 하에 수출 대자본의 성장과 낙수효과를 통한 경제 성장의 잔영이 아직도 남아 있는 한국 경제의 현 상황에 비하면 진일보한 경제 정책의 방향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임금을 단지 ‘비용’으로만 바라보는 어안魚眼처럼 왜곡된 경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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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2017년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밝힌 5대 국정목표 중 하나인 ‘더불어 잘 사는 경제’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더불어 잘 사는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하위 전략으로는 ①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 ②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 ③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④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 ⑤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 등 5가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맨 첫머리에 언급된 전략인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국정 과제로 일자리 창출과 확충, 일자리 지원 및 일자리 안전망 강화 등을 제시하였다. 일자리위원회 설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등을 통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성·연령별 일자리 지원 강화와 일자리 안전망 강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산업혁신 등이 그것이다. 일자리 정책을 매개로 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목표를 구현하는 핵심 정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설립된 일자리위원회에서의 논의 내용 또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1) 명시적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자리 로드맵 10대 중점과제를 제시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질 개선, 그리고 임금 격차 해소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을 언급하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과 질 개선을 통해 취업자의 전반적인 소득 증대를 이루어내겠다는 목표 또한 명확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노동 정책의 주요 내용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지지支持하고 높일 수 있는 직·간접적인 정책 제시 없이 일자리 정책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의아하다. 물론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일자리 정책, 특히 정규직 중심의 양질의 일자리 확대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노동 사회에서 비정규 노동 문제 심화는 노동시장 내 임금 양극화로 귀결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일자리 정책 자체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공공부문을 통한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 나아가 정규직 전환이야 사용자로서 정부가 응당 해야 할 의무이다. 취업·고용에 한시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자리 지원 강화가 과연 효과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청년층의 3D 업무 기피라는 진부한 레퍼토리를 넘어서 고용 지원 정책의 주 타깃이라 할 수 있는 중소사업체의 경영 불안정성은 위 정책의 효과성을 제한하고 있다. 청년·여성·신중년 등 고용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일자리 지원은 이전부터 행해 왔던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의 확대된 버전이라는 기우가 앞선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정규직 전환 또한 과거 정부보다 진전된 의지와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공공부문 내 조직별·부문별·업무별로 파편화되어 대증對症요법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간접고용의 직접고용·정규직 전환은 ‘상시업무의 직접고용’이라는 대원칙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을 뿐이다. 신산업·혁신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규제 혁신’으로 포장된 규제 완화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정책이 원래의 목적의식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뿐이다. 


원-하청 격차 해소 등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 올리려는 정책이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지금까지 확실히 드러난 임금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1/4에 육박하는 23.7퍼센트에 이르는 상황 속에서2)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하한을 끌어 올리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전체 임노동자의 임금 몫을 증대시킴으로써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기대했던 효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전제가 하나 있는 바, 바로 임금·소득 양극화 해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임금 5분위 배율은 2006년 5.75에서 2017년에는 6.41로 조금 낮아졌지만 2015년에는 6.63까지 악화되었다.3) 바닥을 끌어 올리는 임금 정책 효과 속에서도 임금·소득 양극화가 심화된다면 전체 임노동자의 집합적 소비에 기반한 선순환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이 거시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연대임금 정책에 기반, 전체 스웨덴 노동자 계급의 집합적 소비가 투자와 성장, 고용 확대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임금 정책 이외에도 다른 여타의 정책들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대-중소기업간 격차 완화, 보편적 사회복지 확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처럼 병행되어야 할 정책임에도 결여된 정책 분야가 바로 노사 관계 정책이다. 전체 임노동자 계급의 임금 몫 확대가 소비(내수) 증가와 기업의 투자 확대, 고용 확대로 자동적으로 귀결하지는 않는다. 무역의존도 100퍼센트에 육박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환율·금리·물가 등 대내외 거시경제 변수에 대한 집합적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핵심은 노동조합이다. 한국에서 자본의 이해는 국가의 경제 정책을 통해 충분히 반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노동조합은 조직률 10퍼센트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할 뿐만 아니라 파편화·개별화되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 조직화를 제고할 수 있는 노사 관계 정책이 필요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인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가 노동 3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그리고 연대임금 정책의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임단협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노조를, 노사 관계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중소기업간 격차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노조 없이 그 과실이 자동적으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임금 몫 확대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보편적 복지 확대에 따른 부담의 주요 주체 또한 임노동자라는 점에서 전체 노동자의 집합적 동의 없이는 첫발을 떼는 것조차도 버겁다. 일자리 정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10퍼센트 조직률에 불과한 한국 노사 관계 현실에서 ‘혁신형 인적자원 개발’, ‘비정규직 남용 방지 및 차별 없는 일터 조성’, ‘근로여건 개선’4) 은 불가능하다. 글로벌화된 소수의 독점 대자본과 이에 수직적으로 종속된 중소자본 입장에서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참여할 유인은 매우 낮으며, 이를 강제해 내고 제도화 할 수 있는 조직은 노동조합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 확대를 통해 ‘가계소득 증대, 소비 증대, 내수 확대 및 견실한 성장으로 이어지는’5)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를 간접 경험한 바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폭발적인 노동조합 확대와 이를 통한 임금 상승, 상대적인 작업장 민주주의 확대, 비록 한계는 있지만 기업복지 확대는 의도치 않게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에 의사疑似 내포적 축적 체제의 효과를 낳았다. ‘수출만이 살 길’인 한국 경제가 1990년대 전반기 기간 동안 마이너스 경상수지 하에서도 가계소득과 소비가 증대되고, 연평균 8퍼센트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확대된 노동조합을 배경으로 노동의 집합적 분배 요구가 관철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의 분배 몫 확대는 비용 부담이라는 통속적인 인식을 넘어서서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것이다. 다만, 이 시기 임금 몫 확대는 조율된(co-ordinated) 분배 요구와 자본-노동 간의 타협에 기반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격차 확대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1990년대 전반기 기간 동안의 경험으로부터 현 정부가 배울 점이 있다면 노동조합 확대와 연대임금 성격의 임단협을 촉진시키는 노사 관계 정책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시작은 노동조합 조직 확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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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2017. 10. 18).

2) OECD(2018), Connecting People with Jobs: Towards Better Social and Employ-ment Security in Korea, (DOI:http://dx.doi.org/10.1787/9789264288256-en). p.37. 

3)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 

4) 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2017. 10. 18).

5) 국정기획자문위원회(2017),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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