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빼기'사회] 사회적 대화가 나아가야 할 길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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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의 사회적 대화기구가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개편되었다. 2018년 4월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노와 사가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보다 중심적인 역할을 하되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으로 참여주체를 확대하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마련되었다. 또한 의제별, 산업별 및 지역별 대화 체계도 강화하기로 하였다. 본 위원회는 아직 구성 전이지만 현재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연구회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비록 2018년 8월, 사회안전망개선위가 실업부조의 조기 시행 등과 관련된 첫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아직까지 평가할 수 있는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지는 못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활동이 지체된 것은 이번 정부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조건 자체가 사회적 대화에 유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구조적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리더십을 사회적 파트너가 발휘할 수 있는가가 이번 사회적 대화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주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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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시작과 의미’ 국회 토론회(@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회적 대화와 같은 제도 이식은 사회적 파트너 간 최소한도의 공유된 가치와 규칙에 대한 순응이라는 기반 없이, 단지 규칙이나 절차와 같은 공식적 특징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회적 대화는 해당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차원에서, 또 여러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 다양한 기능을 포괄한다. 즉,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엄청나게 어려운 합의만이 사회적 대화가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파트너가 가진 정보와 지식을 통해 이미 선택된 정책의 분배적 함의에 대한 경고 및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고, 정책 집행을 방해하는 이해 충돌이나 차이를 사전에 해소하여 빠른 정책 집행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전 사회적 차원에서 노사정 파트너십의 가장 큰 의의는 노와 사 모두 개별적인 이익 추구에 근거한 각자의 전략 내용을 보다 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부분적인 타협과 양보,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당장은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노동 전체의 연대감을 제고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노동 운동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으며, 또한 사측 역시 현재의 손실이 궁극적으로는 더 숙련도 높은 노동의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접근을 통해 구조적으로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보다 성공적인 사회적 대화의 성과를 담보할 수 있을까? 필자는 중위 수준 조합주의(meso-level corporatism)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대화를 가능케 하는 규범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공적인 경험의 축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정책은 일터의 균열을 통해 노동의 이해를 파편화시켰다. 따라서 전 국가적 차원에서 노와 사가 합의할 수 있는 의제와 어젠다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또 그에 대한 전면적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대신, 산업이나 업종으로 이해의 폭을 줄여나가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적 파트너십에 기반한 주요 산업 및 노동 정책의 형성과 조정, 집행, 그리고 일자리 창출이 좀 더 용이해질 수 있다. 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전국 단위를 포기하고 시와 도, 혹은 그 이하의 행정 단위까지 내려가게 되면 해당 지역의 공공부문부터 시급한 문제를 노사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에 지방정부가 보다 깊숙이 조정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오랜 사회적 합의의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에서도 최근 사회적 대화는 지방정부 단위에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국가 단위의 사회적 파트너가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특히 노동조합의 리더십은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화에 노동 운동이 참여할 필요가 없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를 들어, 노동 운동이 너무 강해서 이미 교섭을 통해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사회적 파트너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 운동은 사회적 대화를 무시할 만큼 충분히 강한가? 노동조합이 독점적 지위를 가진 대규모 기업에서만 조직되어 있는 만큼 기업 차원에서의 교섭력은 결코 약하다고 할 수 없겠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역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보수언론과 사측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 담론은 이제 그것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노동 운동이 기존에 조직되지 못한 여성, 청년, 비제조업 노동자를 조직하는데 큰 장애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적 노동 운동이 추구하는 목적과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영향력 확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침은 물론이다. 약한 노조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조직적 지위와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위에서 언급한 중위 수준의 조합주의를 강화할 수 있도록 산별 교섭, 혹은 다사용자 교섭 구조를 확립하는 일이다.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 확립할 수 있도록 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노동 3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하는 작업도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논의할 수 있다. 또한 우수한 노동 및 환경 기준을 가진 중소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기금을 마련하는 작업도 고려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한 기금을 통해 발전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조직 노동자의 은퇴 이후의 생활자금 확보가 가능해질 뿐 아니라, 단순한 부와 소득의 재분배를 넘어 경제의 기본적인 운영 방식에 있어서 민주적 통제의 원칙을 도입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사회적 대화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사회적 대화에서 정부는 다른 선진국가보다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노사 양측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그간 한국 사회에 쌓인 모든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풀 수는 없다. 사회적 대화에 그간 대표되지 못한 소수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틀을 짜야겠지만, 노동 운동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작업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노사가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문제는 합의되지 못한 채로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적어도 노사가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증진키시고,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타협과 양보를 통해 해결해나갈 수 있는 협의의 문화를 착근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면, 사회 협약의 타결 못지않은 성공을 이룬 것이라 관대히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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