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70주년, 무엇을 선언할 것인가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70년이 됐다.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국제연합(UN) 가입국들이 참여하여 인권에 관한 기본적인 가치와 지향을 선언한 것이 세계인권선언이다. 선언을 만드는 과정은 전쟁과 나치의 학살 경험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기도 했다. 


거리행진.jpg

2017년 12월, 세계인권선언일맞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대회를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들.(@참여연대)


선언의 문구 하나도 인권에 영향을 미친 가치와 운동이기에 논쟁할 수밖에 없었다. 1947년 1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2년 동안 유엔 가입국은 선언을 완성하기 위해 1,400번의 투표를 했을 정도로 치열했다.(48개국 찬성)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첨예한 이념적 대립이 있던 시기라 선언에 담길 내용은 진영 간 논쟁도 있었으나 한쪽 진영의 논리만이 채택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인권의 보편성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는 언제나 인권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그러하기에 남성이 보편인권의 담지자로 표상되는 현실과 서구 종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상황에서 종교와 성차별을 넘어서 보편성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는 논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의 영어권 표현으로 ‘all man’을 쓰는 것이 남성형이라 차별이라며 ‘all human beings’로 바꾸었다. 이러한 입장을 제시한 사람은 당시 강대국도 아니고 서양국가도 아닌 인도의 한사 메타 대표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교적이고 남성 중심적 표현(형제애 등)은 남아있다. 또한 근대 초기인 프랑스 대혁명기 선언문의 바탕인 천부인권(인권은 신이 인간에게 준 권리)이나 자연권(인권은 자연에 부여된 권리로 선험적이고 초월적임) 사상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의 한계와 구조


1948년 당시까지의 인권에 대한 각국 기초위원들의 사회적 철학적 고민을 세계인권선언에 담은 것이기에 시대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인권선언에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권리가 명시돼있다. ‘무엇을 기본적 권리로 볼 것인가, 무엇이 선언의 내용에 들어갈 것인가’는 인권 상황이나 정치적 환경이 다른 각 나라에 영향을 미치기에 선언의 내용구성은 주요 쟁점이었다. 첨예하게 대립한 쟁점 중 하나는 사회적 권리(노동에 대한 권리, 사회보장·식량·주거·교육·문화 등에 대한 권리)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넣을 것이냐였다. 사회적 권리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권리로서 국가의 정책과 예산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교육과 주거, 식량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었으므로 사회적 권리가 들어가는 데에 부담이 없었던 반면,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권리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인한 국가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반대하였다. 결국 몇 번의 투표를 거쳐 결정된 선언은 자유권(투표권 등 시민권을 포함한 권리) 목록이 많다. 그 외에도 선언으로 할 것이냐, 법적 구속력이 있는 규약(법) 형태로 할 것이냐는 논쟁이 있었는데 결국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의 형태로 선포되었다. 그래서 이후 선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국제인권규약이 만들어졌다.


이렇듯 세계인권선언은 유엔가입국들 간의 합의(타협) 결과이기에 부족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인권선언을 만들게 된 배경인 식민지 확장 전쟁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세계대전의 목표이자 결과였던 식민지를 어떻게 독립시킬 것인가에 대한 입장 없이 그저 ‘자치권 인정’으로만 있다. 또한 이성에 대한 믿음이 강력한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구절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에서는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시각에서 조항을 따져보면 한계는 더 많이 보인다. 


세계인권선언은 1개의 전문과 총 30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유, 평등, 우애(연대)의 지향이 담겨 있다. 1조와 2조에 세계인권선언의 가장 핵심 가치인 인간존엄성과 평등(비차별)이 선언됐다. 3조부터 21조까지는 자유권, 22조부터 27조까지는 사회권으로, 자유권 중심의 선언이다. 28조부터 30조까지는 선언의 목표와 공동체의 의무, 선언의 해석 원칙을 담고 있다. 즉 인권선언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9조는 인권을 실현할 사회적 질서에 대한 의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실현하려면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체제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필요하며 그러한 체제는 연대와 저항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2008년 인권운동진영과 시민들의 참여로 만든 ‘2008촛불인권선언’에도 28조에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서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하게 실현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연대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구절로 구체화했다.  



세계인권선언

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통치지역, 비자치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29조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만 자신의 인격이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당연히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과 민주사회의 도덕, 공공질서 및 일반적 복리에 대한 정당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만 법에 따라 정하여진 제한을 받는다. 이러한 권리와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위배되어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 


30조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  




2018년 인권선언에 담겨야 할 시대적 가치


세계인권선언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후 유엔과 많은 국제인권기구들이 의결, 공포한 각종 인권규범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여러 민중들이 싸울 때 세계인권선언을 근거로 내세우는 등 세계적 규범력을 갖는 지구적 기준이 되었다. 


전 세계 민중들의 투쟁으로 새로운 인권 목록이 나오고 실현할 인권의 내용도 구체화됐다. 예를 들어 물에 대한 권리라는 일반논평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위원회(약칭 사회권위원회)가 발표하면서 물에 대한 권리가 구체적으로 선포됐다. 물 민영화에 맞선 민중들의 싸움 덕이다. 이렇게 인권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투쟁을 통해 새로운 인권의 내용과 목록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박근혜 정권이 물러갔으나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여전히 비정규직들의 노동에 대한 권리와 존중은 보이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고통 받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표방되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서도 정부는 강정해군기지 반대 주민들이 반대하는 관함식을 무리하게 강행했다. 군사기지와 평화가 양립할 수 없으나 군축은 북한에게만 요구되고 있으며 정부는 군사기지화에 반대하는 강정 주민들을 탄압했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문화와 제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맨 난민에 대한 혐오를 시작으로 난민 혐오가 판을 치고 있다. 일부 극우세력들이 성폭력에 대한 불안과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부착시켜 난민 혐오를 키우고 있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성장한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은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하고 각종 인권 관련 법 제정을 막고 있다. 반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혐오 방지를 위한 관련법도 극우 기독교 성소수자 혐오세력에 의해 좌초됐다. 


올해 초 터져 나온 미투운동의 열기로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듯 보이나 여전히 판결은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는 편이며 여성에 대한 혐오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성평등한 시대에 대한 욕구는 높아졌지만 아직 법과 제도, 관행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2018년 한국에서 담아야할, 선언해야 할 인권의 가치는 ‘평화와 노동권, 성평등, 혐오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선언문을 다시 쓴다면 2018년 한국 사회를 흔든 성평등 운동의 열기를 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사회가 준비하는 ‘페미니즘으로 쓰는 인권선언’에 대한 기대가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제정 과정도 치열한 논쟁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졌던 것처럼, 현 시대의 페미니즘은 인권선언의 보편성을 해체하고 구체화하는 논쟁을 거칠 것이다. 무엇보다 선언에 우리의 성평등에 대한 실천과 고민을 담아냄으로써 우리의 운동을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