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 청년, 아름다운 이름 뒤의 그림자

by 센터 posted Aug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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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정 안양군포의왕비정규직센터 사무국장


멋진 전문직의 현실

어느 날, 사무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두 청년이 들어왔다. 염색한 머리, 찢어진 청바지, 귀걸이를 한 모습에 상담을 온 사람이란 생각을 처음에는 하지 못했다. 청년들은 머뭇거리다가 “노동상담을 하러 왔는데요”라고 입을 떼었다. 그들은 수원 모 헤어숍의 헤어디자이너였다. 꽤 큰 헤어숍에 있다가 현 직장의 원장 권유로 이직하여 일한 지 일 년이 좀 넘었다. 

어느 날 원장은 헤어디자이너들을 모아놓고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그 계약서는 헤어디자이너들이 ‘갑’이었고 원장이 ‘을’로 되어 있었고, 헤어디자이너들이 시설 사용을 하는 대가로 이익의 70퍼센트를 원장에게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업계의 관행이라 해도 좀 부당하다는 생각에 헤어디자이너들은 계약서를 쓰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원장은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일을 하지 말라고 했고, 미리 예약한 손님들이 선불로 낸 금액 전액을 위약금으로 내라고 했다. 퇴직금은커녕 수백만 원의 돈을 원장에게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낯선 ‘노동 상담’을 검색하고 우리 사무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원장에게 내야 할지도 모르는 몇 백의 돈 때문에 찾아온 그들이지만 그동안 일해 온 상황을 듣는 동안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루 종일 머리를 하고 번 돈의 거의 80퍼센트를 원장에게 바치고 스태프들 용돈도 챙겨 주고, 물품도 스스로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통장에 찍힌 월 3, 4백의 월급이 그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 결국 그 헤어숍의 스태프 10여 명, 헤어디자이너 5명이 집단대응을 하기로 했다. 그들의 노동 조건을 하나하나 인터뷰하면서 무엇이 부당한 상황이었는지 알려 주기도 했다. 어느 날 같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한 헤어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일을 겪고 무엇이 부당한지 알게 되니 앞으로 일하는 것이 더 두려워요, 안 그런 곳이 거의 없는데….”
카톡.jpg

배달은 차별 받는다

군포에 있는 모 피자집에서 배달 일을 하는 청년이 전화를 했다. 그곳은 대행업체를 쓰지 않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직접 배달 노동자를 채용했다. 배달 노동자만 약 10여 명 된다는 그곳은 배달 노동자들에게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배달 오더를 줬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온갖 구박을 했다. 어쩌다 배달이 없어 짬이 생기면 업주는 배달 노동자에게 청소를 시키고 박스 접는 일을 시켰다. 청년은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서빙 하는 애들은 놀고 있는데 하루 종일 배달하고 고생한 우리만 시켜요. 우리가 노는 꼴을 못 봐요. 서빙 하는 애들과 차별을 받고 있어요.”
그러나 그는 상담만 받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린 것이 돈만 밝히고

우리 단체 회원의 딸이 타코야키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끔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면 “제가 일하는 곳에 오세요. 제가 맛있게 구워드릴게요”라며 자신이 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연장수당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안 그는 사장에게 연장수당을 달라고 연락했다. 그랬더니 카톡으로 온 문자는 협박이었다.
“어린 것이 돈만 밝히고 벌써부터 그러면 너 사회생활 못한다. 그리고 CCTV로 봤는데 너 빵 훔쳐 먹었더라. 고용노동부 찾아가든 말든 맘대로 해. 나도 널 절도로 고소할 테니.”
좀 배짱이 두둑했던 그는 기죽지 않고 선배의 도움을 받아 임금 체불 진정을 내고 대응을 하여 결국 연장수당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한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노동 운동했던 아빠보다 알바 경험이 많은 선배가 도움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 여기 알았으니 친구들 돈 못 받으면 연락드릴게요.”
그 후 한동안 그의 학교 친구들 상담전화가 쇄도했다.

위 세 사례는 나름 전문직으로 선망의 대상인 전문직 청년, 배달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청년(알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례다.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이 시대 청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흔히 청년은 ‘희망’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람을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켜버린 시대에 그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노동을 하든, 그들에게는 희망보다 현재에 대한 분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젊음을 착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풍토에서 흔히 젊은 청년들이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뒷말을 한다. 그러나 요즘 괜찮은 일자리라는 것이 사실상 거의 없다. 심지어 그럼에도 열심히 일해 보려고 일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어린 나이에 돈 밝히는 **없는 **”란 욕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한 답변을 듣게 된다. 기계처럼 가족도, 삶의 즐거움도 포기하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인간으로서 자존감도 버리고 권리 따위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그 시대 노동의 상으로 지금 청년들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청년들의 상담을 받을 때마다 드라마의 몇 장면이 떠오른다. 〈미생〉의 장그래가 부단한 노력에도 결국은 정규직 채용이 되지 않았을 때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슬퍼했다. 그러나 현실의 장그래에게는 “너와 정규직의 노력은 달라. 차이를 인정해”라고 말한다. 〈쌈, 마이웨이〉에서 최애라가 아나운서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이력서를 채워왔어야지”하며 무시하자 그이는   “그 시간에 저는 돈을 벌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나와 울면서 “이력서가 나의 삶을 무시하는 것 같아 슬프다”며 흐느낄 때 같이 마음 아파했지만 현실의 최애라에게 “그러길래 좀 더 노력했어야지”라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식과 능력을 가진 세대, 그러나 가장 좌절하는 세대라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어쭙잖은 충고가 아닌, 사람답게 살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는 노동의 혁신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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