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비정규직] 정부 기준 손바닥 위에서

by 센터 posted Jul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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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만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센터장



지난 20년간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남용 실태는 악취 나는 시궁창이었다. 사용자들의 인식이 그러했고,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가 그랬다. 전북교육청, 전주시청, 전주시설관리공단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그곳은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촛불이 만들어낸 차별 철폐, 정의로움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열린 공간에서 노동 존중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 그곳은 분명 기회였다.


전북교육청 첫 회의, 전환 대상자인데도 평가에서 단지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전환 제외자로 분류된 자료를 보고 분노했다.


전북교육청 첫 회의. 총 10명의 전환심의위원 중 내부위원 5명 외부위원 5명, 그 중 노동 쪽이라고 할 만한 위원은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게다가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위원이 혼자라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첫 회의부터 거의 모든 부분에서 교육청의 전환 심의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노동 상담을 많이 해봐서 웬만한 교육청 간부보다 학교비정규직 상황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전환 대상자 중 일부는 이미 교육청 내부 평가가 진행되었고 평가 결과가 심의위원에게 전달됐다. 그런데 어이없는 평가 결과를 확인했다. 전환 대상이지만 평가 점수가 낮아서 불합격된 내용을 확인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평가 내용은 이렇다. ‘소극적임. 평소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큰소리로 이야기함.’ 평가 점수는 57점으로 합격 점수인 60점보다 3점 낮은 점수였다. 교육청 관계자에게 질문했다.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전환 제외자로 분류한다면 도대체 비정규직 고용안정이라는 이번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죠? 어디 조그만 업체에서도 사장이 소극적이라고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누가 이렇게 평가서를 올렸죠?” 

교육청 담당자는 ○○지원청장이 평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 ○○지원청장을 데려오라”고 하니 주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전북교육청 역사에서 외부위원이 도교육감 다음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교육지원청장을 데려오라고 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회의를 주재하는 부교육감이 당황하고 실무자들이 어찌 할 줄 몰라 했지만 나는 계속 다그쳤다. 평가자를 데려와서 소극적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물론 다른 위원들이 전원 반대하고, 교육청 실무자들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지원청장을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전환심의위원회를 마무리할 때까지 교육청 고위 공무원들의 무지한 노동 인권에 대한 인식과 황망한 차별 의식을 지적하며 4시간에서 6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계속했다. 나는 척추를 다쳐 전치 4주가 나와 입원을 했고, 외출을 불허하는 의사를 간신히 설득해 깁스를 한 상태였다. 게다가 올해 초 유행했던 독감에 걸려서 마스크를 쓰고 열이 나는 몸이었지만 노동자를 대표할만한 위원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의실 입구에 앉아 오랜 시간의 회의를 맘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갈 때 내 얼굴만을 쳐다볼 그분들의 눈빛에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야 했고, 또 내가 아니면 아무도 그분들을 대변해 주질 않으니 무어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회의 이후 전환이 된 분들과 그렇지 못한 분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나는 웃지도 그렇다고 슬퍼 할 수도 없었다. 


4.학비.jpg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2017년 10월, 제대로 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공부문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난민 노동자도 있다. 


전주시전환심의위원회 위원은 노동조합 2명, 전문가 4명으로 외부위원을 구성하고 내부위원은 4명으로 구성됐다. 외부위원 전문가 4명 중 3명은 친 노동 쪽으로 분류할 수 있으니 전주시전환심의위원회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은 거창하데 끝이 미약하더라! 그렇게 거창하게 꾸려진 전환심의위원회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물론 전주시에서 나름 파격적인 심의기준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정부안은 연중 9개월 이상 업무가 지속되는 경우 그 업무에서 일하고 있는 대상자를 전환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인데 전주시는 업무가 8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해당 대상자를 전환 대상에 포함했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정부에서 전환 대상 기준으로 삼은 기준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연중 9개월이 지속되는 업무, 두 번째는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이다. 그런데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인지 아닌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판단의 핵심 주체는 결국 전주시다. 여기에 인건비를 포함한 사업비가 국비, 도비, 시비 모두 합쳐지면 더욱 복잡하다. 사업예산을 여러 기관이 공동 부담할 경우 정부, 도청, 시청이 함께 지속 가능 여부를 파악해야 되는데 이중 한 곳이라도 거부하면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수 있다. 이 경우 심의위원들이 독자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매우 어렵게 된다.


전주시에는 6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고, 이중 상당수의 인건비가 전주시 예산이 아닌 도청과 중앙정부 관계부처 예산을 활용해 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600명 중 400명 이상이 8개월 미만 단기 일자리로 심의 대상자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이것은 사업이 갖는 특성 -예를 들어 계절적인 일자리로 인한 단기 일자리인 경우-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예산을 중앙부처나 도청에서 가져다 쓰면서 사업 건별로 예산을 가져오니 단기적인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첫 번째는 국세가 높고 지방세가 낮아 -현재 8:2 비율이다- 지방정부 예산이 없기 때문에 사업비를 중앙정부에 의존해서 운영한다. 이런 구조에서 중앙정부에서 내려오는 사업비를 확보해 지방정부가 일부를 보태 사업을 하다 보니 단기 사업이 많고 단기, 초단기 비정규직 숫자가 많은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 인권 무개념 (일부)공무원 때문이다. 고용된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해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마음껏 데려다 쓰면서 이것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전주시 비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한 전환 심의 과정에서 이의제기 신청이 있었다. 사연은 대충 이렇다. 

“지난 10년간 전주시청에서 일했습니다. 전주시청은 1년간 일하면 연속해서 그 자리에서 일할 수 없기 때문에 1년하고 나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습니다. 어느 해는 9개월도 하고, 어느 해는 6개월도 했습니다. 전화가 오고 그때 집에 있으면 나가는 거죠, 어느 과에서 전화가 와서 일하다가 그쪽 일이 끝났는데 전주시청 다른 과에서 또 일하자고 전화가 오면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물론 3개월짜리 일이 끝났는데 다른 부서에서 연락이 없으면 전주시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알아봐야죠. 안 되면 실업자이고요. 그렇게 10년을 일했습니다. 저는 작년에 8개월, 9개월 일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10년간 꾸준히 전주시청에서 일해 왔습니다. 그렇게 일해 왔는데 제가 전환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주시 관계자들과 한참을 실랑이했다. 

“이렇게 사람을 쓰고 미안함은 없었나요? 이분의 일회용 같은 지난 인생에 대해 당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채용하실 건가요? 이분은 비정규직일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난민 노동자인 거잖아요!” 


회의 때마다 한두 시간은 이런 식의 채용 방식과 운영에 관해 때론 격론이 벌이지고, 때론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논쟁 끝에 나온 결론은 전환에서 제외된 노동자, 그리고 전환 심의에 올라오지 못한 노동자의 업무 내용을 검토해서 고용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몇 개 기관의 전환심의위원회를 하면서 밀려오는 것은 자괴감이었다. 


정부가 정해놓은 틀에서 대상자를 선별하다 보니 이것은 흡사 전환 가능자를 찾아낸다기보다는 전환 대상이 어려운 사람을 선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전환 기준인 연중 9개월 이상 지속된 업무, 2년 이상 지속될 업무라는 것은 정부의 편의적인 잣대일 뿐이다. 작년에 6개월 근무했다고 해도 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4, 5년을 추적해 보면 공공부문의 여러 일자리를 떠도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걸 다 합치면 6개월이 아니라 10개월, 11개월 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앞으로 2년 이상이라는 기준도 그렇다. 현장의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몇 년째 일해 왔는데 정부의 전환 방침 이후 갑자기 해당 과에서 내년부터는 업무가 사라진다고 통보해 2년 지속성이 없다며 전환 대상자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연들을 이의제기 문서로 확인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와 면담으로 확인하고 전환심의위원회에서 따져도 이길 수가 없다. 왜냐면 이 업무는 내년에 사라진다고 해당 과에서 결론을 내렸는데 심의위원들이 이 부서에 업무를 다시 만들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환심의위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손바닥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전환 기준이라는 손바닥 안에서, 해당 기관의 부서에서 내놓은 기준이라는 손바닥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울하고 서글픈 자괴감은 뒤로 하고 정리를 해본다. 우선 한계가 많은 정책이지만, 20년 동안 처음 있는 비정규직 고용안정 정책이다.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결국 전환된 비정규직이 있고, 그분들을 시작으로 노동조합을 새롭게 만들고 힘을 모아 다른 비정규직 동료의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전환심의위원회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2단계 3단계 비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는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가로막는 ‘정부 기준이라는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 노동진영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쌓여진 힘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자신들의 고용안정과 처우를 개선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세상을 바꾸는 반격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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