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배재형 열사를 기억하며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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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 금속노조 경기지부 하이디스 지회장



2015년 5월 11일, 그날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015년 새해가 밝자마자 시작된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유난히 춥게 느껴졌던 겨울을 보냈습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 산과 들에 꽃이 피어나고 푸르게 짙어갈 무렵 삶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난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형!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안부를 물어야 할지? 천상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3년의 투쟁 과정에서 홀로 외로워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리더로서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들로 여러 날을 홀로 싸우며 지낸 날들입니다.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리더들이 갖는 고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5년 5월, 형이 모든 걸 홀로 감당하며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내려놓지도 못했던 그 마음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형이 결단의 순간 남긴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그 말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재형.jpg

배재형 열사 민주노동자장 


우리 조합원들은 지난 3년간 대만 원정투쟁을 비롯해 동화면세점, 정부청사, 국회, 청와대에서 전국 투쟁사업장 동지들과 함께하며 투쟁했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공장을 지켜내지 못한 한계를 인정하고 법원의 강제조정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투쟁은 여기까지라고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승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손가락질도 한다고 합니다. 모두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일 수 없기에 다 이해하려고 합니다. 제 휴대폰 문자로 여러 동지들이 보내주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외투자본에 맞서 멋지게 싸웠다.”

“훌륭하게 잘 싸웠다.”“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동지들의 아픔을 제가 제대로 알 수나 있을까요? 청와대 앞 농성장을 지날 때마다 마음으로 힘내시라고 응원하고 응원했습니다.

”“그간 정말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동지들 건강 상하신 것 찬찬히 치유하고 회복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다른 투쟁에 나서시는 동지들, 응원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를 격려하고 고생했다는 말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투쟁을 마무리한 지금도 뭔가 빠뜨리고 길을 나선 것처럼 허전합니다. 그간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하는 형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고,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해결과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께 우리가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앞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투쟁을 마치고 전국 투쟁사업장 동지들을 찾아가 “우리 투쟁은 끝났지만, 동지들 투쟁은 꼭 승리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아직도 단식을 하고, 고공에 오르고, 아스팔트 바닥에 절을 하고, 노숙을 하면서 간절함을 호소하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노동자들의 투쟁은 왜 이 모양입니까? 그럼에도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방관하고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도 정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냥 바라만 보는 허수아비를 자청하는 것 같습니다. 


보수정권이 자본과 손잡고 자행한 폭주를 2016년 연말에 노동자, 민중들이 정권을 심판하겠다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적폐 청산 열망과 함께 최고 권력인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렸습니다. 그 결과로 적폐 청산을 외치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취임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달라진 게 무엇이며 적폐 청산은 어찌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외환위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본가들의 노동 착취, 노동 3권을 가로 막는 노조 파괴 등에 아직도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좋아질 것이라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저는 기다린다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년을 치열하게 싸운 우리 조합원들이 그들이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투쟁을 마무리한 지금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감사의 인사도 아직 다 못 드렸습니다. 4월 말에 총회를 열어 하이디스지회를 해산할 예정입니다. 해산과 함께 열사추모회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이후에 가능하다면 열사정신계승사업도 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못다 한 투쟁, 그리고 투쟁하는 동지들의 곁을 지켜주는 일은 열사추모회에서 이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형은 하늘에서 우리 조합원들의 곁을 항상 지켜주실 거라 믿습니다. 

따뜻한 날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봄비가 내리고 나서는 쌀쌀해졌습니다. 천상에서의 나날들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5월 11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따뜻한 햇살과 함께 하이디스지회 전사들과 함께 만납시다.


하이디스지회장 이상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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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배재형 열사는 하이디스의 희망퇴직 회유와 거액 손해배상 압력으로 괴로워하다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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