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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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내가 지니고 태어난 성염색체가 XX임을 인지한 후 수십 년 동안 참 다양한 XY의 성추행/폭력을 맞닥뜨리며 살아왔다. 그들은 골목이나 거리에서, 혼잡한 버스와 지하철에서, 학교나 병원 등지에서 더듬고 만지고 건드리고 쓰다듬었다. 말과 시선으로 희롱하고 때론 처음 보는 나를 향해 욕설을 내뱉고는 내빼곤 했다. 그들 중엔 소년이나 청년도 있었고 아저씨나 할아버지도 있었고 학교 선생이나 의사도 있었다. 10대 때는 이런 일방적인 추행과 희롱을 비롯한 갖가지 폭력 앞에서 자주 얼어붙곤 했다. ‘당했다’는 느낌이 주는 불쾌감과 분노가 뒤이어 일었으나 때로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교묘한 그들의 언동이 대체로는 이미 몸을 훑고 지나간 후였다. 20대 무렵부터는 그때그때 의사를 드러내고 어떻게든 맞서려 했다. 이러는 거 당신이 잘못하는 것이다, 내 몸은 내 것이지 네 것이 아니다, 미친 ×··· 피할 수 있는 상황이면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과 함께 소리를 지르거나 돌을 던지거나 욕을 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에너지를 애써 끌어올려야 하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거나 그럴 만한 이가 없었으므로 큰 용기를 내야만 하는 힘든 ‘싸움’이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나마 그렇게라도 대응하지 못한 날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날은 돌아와 아팠다. 몇 날 며칠을 앓았다. 화를 넘어선 우울감과 자책감이 밀려오고는 했다. 자책감이라니,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싶다가도 어느 틈에 남성의 것에 다름 아닌 세상의 시선과 감성이 내 무의식에도 저 깊숙이 똬리 틀고 있음을 감지하고는 몸서리치곤 했다. 나만이 아니었다. 세대와 지역과 인종과 계층에 상관없이 세계 곳곳, 뭇 여성의 오래된 현재가 이러했다. 도대체 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남성은 겪지 않는 종류의 고통을 경우에 따라서는 태어나서부터 거의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하나 싶었다, 심지어 잘못도 없는 자신을 책망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성 착취가 공공연한 일상인 이 사회의 구조와 문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잘못된 상황이나 문제 원인을 여성 자신의 탓으로 돌리도록 꾸준히 ‘가르쳐’ 왔다. 꾸짖고 다스려왔다. 너는 왜 그 시간에 그런 차림/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냐며 원인을 제공한 네 잘못이니 너 하나 입 닫고 있으면 시끄러울 일이 없다며 재갈을 물려왔다. 이성 간에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자책감에 시달리는 고통까지 떠안게 되는 이들은 대부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다. 성폭력을 당한 적지 않은 여성들이 오래오래 문제의 원인을 곱씹으며 자신을 탓한다. ‘여자는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라며 여성들을 도마에 올리는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성장하며 살아온 여성들이 자연스레 자책을 내면화해온 까닭이 클 것이다. 가부장제, 성폭력, 성 착취, 성 역할 강요, 성별 분업과 위계, 이성애 규범을 토대로 한 이른바 정상성/정상가족주의··· 이 모든 성에 기반한 편견과 억압과 왜곡이 부정의와 젠더 불평등을 낳아 세상의 절반 이상인 여성/소수자들의 세상을 이처럼 ‘지뢰밭’으로 만들어왔다.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2차 가해가, 뼛속 깊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구조와 감성이 이들에게 두려움과 자책감을 심어온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떤 식으로든 내 몸에 닿았던 남성들의 그 손은 어떻든 나보다 ‘힘센’ 손들이었다. 그들 자신과 비교해 물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약자인 나를 지배/제압하고 싶다거나 그럴 수 있다거나 그래도 된다는 의식 또는 무의식이 그렇게 발현된 것이었다고 본다. 여전히 많은 여성이 내가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훨씬 더 심각한 종류의 갖가지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제어되지 않거나 스스로 굳이 제어할 필요를 못 느끼는 여성들을 향한 뿌리 깊은 지배욕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남성들의 세상에서 말이다. 


최근 몇 달째 계층과 분야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발화 중인 여성들의 ‘미투’와 관련해 성을 매개로 한 착취와 억압의 문제를 젠더 문제로 볼 수 없다거나, 음모론 운운하며 자신들의 이해 범주에 가두어 미투 운동의 정동성에 ‘물 타기’하는 식으로 여성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덮으려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아득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래서다. 수십 년간 직접 겪기도 하면서 숱한 성폭력 사건들을 지켜봐 온 바에 따르면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것은 부당한 성별 권력에 의한 명백한 젠더 폭력과 젠더 불평등으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다. 사회·문화·정치적으로 부조리하게 구성되어 온 성별 권력으로 인한 성폭력 문제를 젠더 이슈를 매개로 하지 않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한 쪽 성이 다른 한 쪽 성을 상대로 집요하고 폭넓은 폭력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음모론이라니, 젠더 감수성은 저만치로 밀어둔 ‘빤하고’ 고르지 못한 시각으로 끊임없이 정치를 논하는 남성들의 놀랍도록 헐거운 상상력은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허문다. 


미투 운동은 지긋지긋한 성차별 역사를 추동하는 데 앞장서 온 성 착취의 고리를 그만 끊고 젠더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여성들의 뜨거운 외침에 다름 아니다. 음모론 같은 핵심을 비껴난 언어의 감옥에 미투 운동을 가두려는 이들에게 제발 좀 알고 들으라는, 자꾸 들어서 제대로 좀 들여다보라는 자책의 족쇄를 벗어던진 여성들의 ‘충고’이기도 하다. 가해한 저들이 각성을 못한다면 드러내놓고 반복해서 알리고 죄를 물어야 한다. 성인지 수준이 바닥이고, 희롱과 추행과 폭력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이들이 거리낌 없이 곳곳을 활보하는 사회에 이제 그만 안녕을 고해야 한다. 2018년 봄, 우리는 미투 운동과, 미투 운동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는 지지와 연대의 움직임을 통해 소수자/약자의 정치학이 가닿아야 할 지점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지향하는 가치를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역동과 마주하고 있다. 병든 뼈와 살과 피와 근육으로 인해 삐걱거려온 우리 사회가 여성들의 용기 있는 말과 행동에 힘입어 쇄신되어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갈 길이 멀다. 성숙한 사회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더 많은 여성들이 말해야 하고, 그 목소리를 계속해서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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