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봄, 다시 시작하기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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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현 센터 이사,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겨울이 길더니 느닷없이 봄이 왔다. 올해의 봄은 갑자기 찾아와 예년에 남쪽부터 시작되었던 꽃소식을 무시하고 전국이 동시에 벚꽃을 피우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했다. 이상한 봄이 한창인 4월 첫째 주 미세먼지주의보로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된 날에 용인 구성의 골프장에서 우리는 ‘100’이라는 숫자의 초를 켠 케익에 초를 붙였다. 다시 누군가의 제안으로 우리는 다시 ‘0’을 하나 빼고 ‘10’숫자를 만들어 다시 초에 불을 당겼다. 전국여성노조 88cc 경기보조원분회가 8년 만에 ‘100차례’ 교섭하고 나서야 단체 협약 갱신 조인식을 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앞장서서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동료 다섯 명이 ‘10년’ 만에 복직을 합의한 날이었다. 100차의 교섭과 10년의 해고 생활이라는 숫자의 무게만큼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특히 2014년에 1차 복직을 하여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일터 밖에 있는 다섯 명의 해고자 때문에 미안해하면서 한마음으로 복직을 염원하고 힘써온 조합원들의 기쁨이 더했다. 2014년 6년, 투쟁 끝에 대거 복직되었지만 복직을 함께하지 못한 동료들 때문에 마음 무거워했던 복직자들과 현장 조합원들이 이제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도록 전원 복직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사이 해고자 한 명은 정년이 지나 버려 명예복직하게 되었고 네 명이 13일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이들이 대량해고를 당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명박정권 시기로 돌아간다. 88cc는 보훈처에서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당시 알짜 공기업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이명박정권은 높은 가격에 공기업을 팔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바로 88cc였다. 88cc 조합원들은 99년 40세 정년을 실시하려는 사측에 맞서 투쟁하여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정년을 쟁취하고 전국여성노동조합 1호 분회를 결성했다. 1호 분회답게 단결력도 투쟁력도 강한 모범적인 조직이었다. 이렇게 강한 점이 이명박정권에게는 걸림돌로 작용했고 노동조합 활동을 빌미로 65명을 대량해고 하기에 이른다. 

88cc.jpg

사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90퍼센트가 여성인데 자신들의 말로 ‘노가다’라고 하는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고된 직업이면서도 골프장 코스나 골프 치는 방법을 알아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이다. 또한 고객과 대면서비스를 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이면서 늘 성희롱에 노출되어 있다. 가장 많은 보호가 필요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에게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캐디 피(골프에서 경기를 도와준 대가로 캐디에게 주는 돈)를 받는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이들은 몇 년을 일해도 연차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하는 4대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골프공에 맞아 크게 다치는 타구 사고들이 여론을 타서 수년 전부터 산재보험에 임의가입할 수 있게 되었으나 현장에선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아예 입사할 때 산재보험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써야 입사를 시키는 곳도 있고, 회사에 산재를 가입하겠다고 요구해도 모르쇠하는 현실이다. 노동자이지만 출산휴가도 거의 불가능하다. 2015년에 진선미의원실에서 그나마 권리가 보장되었으리라 생각한 공기업이 운영하는 골프장을 전수조사하여 모성보호 관련 내용을 조사하였으나 실제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시행된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이들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고 노동조합법 적용만 받는 반쪽 노동자인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밖에는 없다. 근로기준법은 적용되지 않지만 노동조합법은 적용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교섭하고 단체 협약을 맺어 근로 조건과 고용 안정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88cc 조합원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지키는 일은 바로 근로 조건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현실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은 쉽지 않았고 88cc 경기보조원분회 이후로 많은 경기보조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지만 결국 사측의 탄압 속에서 조직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런 소중한 노동조합의 권리는 10년이 지나 이명박근혜정권을 촛불혁명으로 무너뜨리고서도 1년이 지나서 지켜질 수 있었다. 다른 노동조합에겐 일상인 단체 협약 갱신은 8년 만에 100차례 교섭이 진행되어야 가능했고, 이를 통해 정규직과 동일한 60세 정년이라는 일상의 규칙이 같이 적용될 수 있었고, 노동조합 간부들의 귀환도 가능할 수 있었다. 그것도 65명 해고라는 가혹한 탄압 속에서 노동조합을 지키고 한마음으로 단결했던 88cc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88cc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희망이 있느냐고 물었다. 건강하게 정년까지 이 일을 하는 것, 해고자들이 복직해서 함께 일하는 것, 그리고 ‘특수고용’ 이라는 ‘특수’ 딱지를 떼고 노동자로 대접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평범한 노동자로 살고 싶어 하는 소박하고 상식적인 소원이 거창한 소원이 되고 있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노동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또한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십여 년 동안 멈추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보호 또는 권리 보장방안을 위한 연구와 노력이 다시 가동되어야 된다.

88cc 단체 협약 조인식과 해고자 복직의 기쁨을 잠깐 맛보고 닷새 뒤에 대구에서 비정규직 여성에겐 일상의 미투인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학교에서 비정규직 여성이 직장 내 성폭력을 당했는데도 즉각적인 가해자 분리와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와 같은 당연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지원청 직원들이 2차 가해를 하게 만든 사건이다. 유명인에 의한 성폭력이 이슈가 되지만 일상의 성폭력이 바로 여성들에게 닥치고 있다. 비정규직, 여성, 미성년자 등 성폭력에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관리해야 하는 학교에서 성폭력 대응 매뉴얼도 전담부서도 만들지 않고 나몰라라 하는 대구교육청을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이 봄, 봄은 어차피 또 새로운 시작이다. 유명하지 않은 우리가, 약해보이는 우리가 결국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의 권리 찾기, 이제 시작이다. 봄바람 휘날리며 아름다운 봄을 계속 맞기 위해 함께 합시다. Me Too,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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