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센터 posted Mar 07,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이기범 쉼표하나 3기 회원



가자. 앞으로 한계가 지어진 곳은 없다. 여기서 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없다. 매일매일 암시하며 일을 하지만 넉넉함은 오지 않고 쪼들린다. 앞으로 갔다고 오늘 하루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지만 저녁 정산을 해 보면 뒤로 두 칸을 간 것이다. 계속해 빠져드는 수렁과 같이 더 잡아당기고 움켜쥘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내가 정말 과한 욕심을 가진 것도 아닌데. 악순환이 반복된다. (2017. 10. 13. 재민의 일기장 중에서) 


빵집 주인은 성실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빵을 맛있게 먹는 것만 보아도 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재민아 우리 빵 참 좋아 보이지. 사람들을 저렇게 행복하게 만드니. 예 맞아요. 저기 저분은 우유와 함께 크림빵을 맛있게 드시고 계시네요. 빵들을 챙겨서 노인정에 가져가렴. 재민은 아버지 뜻에 따라 빈 상자에 빵들을 가득 채웠다. 크림빵, 팥빵, 곰보빵 등 남은 빵들을 상자에 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단 것을 좋아했다. 밤이 더 길어지는 날이면 새벽에 배고프기 마련이다. 그때 부엌에서 무엇을 찾아 먹기가 어렵지. 아버지는 가을에 어르신들을 더 챙겨야 한다고 했다. 팔리지 않는 빵이 누군가의 건강을, 허기를 채워준다는 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니. 재민아 그렇지 않니. 재민은 빵을 들고 갔다. 받는 노인들은 매번 고맙다고 했지만 반복되다보니 좀 더 맛있는 빵을 기대했다. 남은 빵이 아니라 팔린 빵들을 원하는 것 같았다.


크림빵을 좋아하는 재민이는 빵집을 이어 받았다. 아버지의 나눔을 실천하고 싶었지만 고민이 생겼다. 하나는 재료의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기회의 확장이었고, 나머지는 생존 문제였다. 방부제를 넣을까 말까하는 문제는 중요했다. 빵이 긴 시간 상하지 않게 하려면 밀가루에 방부제를 조금 넣어주면 됐다. 의학 리포트에서 방부제가 건강과 방부제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반죽이 상하지 않아 원재료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그만큼 빵 가격을 책정하는 데 용이했다. 영업시간도 고민이었다. 저녁 늦게 빵집을 찾았다 허탕치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뒤늦게 아이 생일을 기억해내고 빵을 사러왔다가 문이 잠긴 매장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워하겠는가. 영업시간을 현재 오후 7시에서 오후 10시까지로 두 시간 늘렸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아르바이트 학생을 채용할지 고민했다. 


이익을 창출하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고 더 맛있는 빵을 싼 가격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할 때 먹을 수 있게 된다. 마음 한복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빵을 쉽게, 아니 공짜로 먹으면 좋은 것일까? 경로당의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빵을 드시기보다는 손자와 손녀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까? 재민은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집 빵’에게는 나쁜 효과가 온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공짜 빵에 길들여져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빵을 더 좋아할 것이고, ‘우리 집 빵’을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 매일 빵셔틀이 이뤄지니 굳이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는다. 물론 잠재적 고객이 늘어날 수 있지만 언제 그것이 확장될지 모른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주변에 햄버거 가게가 생기고 대형 슈퍼에서 대공장에서 만든 음식들을 사람들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을까?’ 재민은 고민에 빠졌다. 빵집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경로당에 줄까? 아니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직접 빵집을 방문하게 하고 가격을 할인해 드릴까? 1년에 한 번 정도만 빵을 기부하는 행사를 할까? 막상 뽑아놓은 아르바이트 학생은 내년에는 조금이라도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연말에 보너스라도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빵 값을 올릴 순 없었다. 더 열심히 판매하고 일해서 이후 노인정에서 빵 잔치를 하는 정도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재민은 올해는 어떻게 견뎌보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선 잠을 자야 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