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윤주형 열사를 기억하는 방식

by 센터 posted Mar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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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르포 작가, 센터 기획편집위원



첫마디를 떼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어요. 안부를 전해야 할지, 사과를 해야 할지. 어쩌면 이 편지는 당신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멈춰버린 당신의 페이스 북 계정 속 글들을 읽으면서 느낀 대개의 감정은 슬픔이었습니다. 당신에 대해 ‘기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지지 못한 나로서는 글 속에서 그저 당시의 당신을 짐작할 뿐이죠. ‘창문을 열면 버스정류장이 있고 콩밭이 보이고 콩밭과 의류수거함 사이에는 2, 3차 하청 물류업체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하늘이 보이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지는’ 방에서, ‘차가운 겨울밤 길어지는 손톱과 발톱을 바라보던’ 당신의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니 나는 짐작도 하지 못하겠어요. 당신을, 당신의 슬픔을요.  

당신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산산이 흩어진 복잡한 퍼즐을 앞에 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었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좋을지,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물음을 전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당신이 잊어달라는 당부를 했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다짐에 다름없지 않느냐는 물음을 동지들에게 건넨 적이 있는데, 여전히 많은 동지들의 이야기는 오롯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만을 바라는 것들이에요.


유서.jpg 

윤주형 열사가 남긴 유서


공장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당신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요.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힘을 내보자고 이야기할 참이었어요. 하지만 공장 안은 여전히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공장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전히 당신에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농성장에서 건네준 이불을 받으면서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차마 전하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하고, 당신의 영정사진을 찍은 휴대폰의 메인보드가 날아간 것을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더라고요. 그곳에는 당신에게 건네주지 못한 말들과 미처 전해주지 못한 김치가 남아있었어요. 공장은 당신과 함께하지 못했던 과거에, 봄을 애타게 기다리던 1월에서 그만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았어요.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로 가자’라는 가사 때문에 선택한 브로콜리너마저의 〈유자차〉라는 노래는 다짐이 되지 못했죠. 나는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2013년은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한 해였어요. 멀미가 날 정도로 아찔하게 거대한 공장 안에 차려진 박정식 열사의 작은 분향소를 기억해요. 추모제가 시작되자 썰물처럼 공장을 빠져나가던 사람들의 행렬과 그들을 뒤로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기억해요. 그 자리에서 한 동지는 한진중공업의 최강서 열사와 이운남 열사, 아산공장 박정식 열사의 이름과 당신의 이름을 나란히 읊었어요. 그날 뜨거운 바닥의 열기를 느끼면서 나는 오래 울었어요. 아주 오래요. 나는, 살아남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신이 죽음을 선택하기 며칠 전 함께 술을 마셨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신에게 중국 요리를 얻어먹었다는 이야기, 막걸리를 얻어먹었다는 이야기, 언제나 웃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당신의 절망을 잘 몰랐다는 자책도 더불어. 아마 이런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내내 하고 또 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기억이란, 잊을 수가 없는 것, 왜곡되거나 휘발되어 흩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생전에 지향했던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는 방법이에요. 


기아차 화성공장에는 11년째 복직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해고자가 있어요. 당신과 함께 복직투쟁을 했던 이동우 동지예요. 나는 그 동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위로를 해야 할지, 함께하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지. 당신이라면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요.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의 절망을 잘 모르고 살아가요. 영원히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열사회 활동을 하며 배운 것은 함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하나였어요.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당신의 죽음을 영영 과거에 묶어두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이에요. 

“봄이 올까?”

“오겠지.”

당신이 떠나기 전날 쓴 글이에요. 기억나세요? 당신은 그날까지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멈추지 않았어요. 나는 그 동지들 곁에서 그 낙관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작은 것이라도 하려고 해요. 이 편지는 결국 남겨진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 되었네요. 그래서 당신에 대한 당부보다는 나와 우리의 다짐으로 편지를 끝맺으려고 해요. 당신이 기다리던 봄에 가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봄을 기다리던 그 마음은 잊지 않을게요. 봄에 대한 당신의 낙관을 꼭 기억할게요. 그리고 당신의 희망과 함께하고자 했던 백주대낮의 용기들과 해방의 꿈을 기억할게요. 그렇게 당신을 기억할게요. 


“낮아지고 깊어질 일이다. 패배 속 스스로에게 모질게 매질을 하는 뜻은 위정자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겸양이 아닌 부족함을 환하게 드러내고 꼼꼼히 때를 벗겨내라는 것이겠지. 해방의 꿈을 향해 희망의 대지를 단단히 다지라는 뜻이겠지. 백주대낮의 그 용기들과 어깨 곁고 힘차게 서라는 뜻이겠지.”

-2012년 9월 16일 윤주형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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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형(1977~2013) 열사는 2007년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현장 활동을 했다.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철폐 투쟁 등을 하다 2013년 해고를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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