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사람들

by 센터 posted Mar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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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인 수습 공인노무사



신림동에 대하여


신림동은 한이 많은 동네다. 입학 성적이 가장 높은 서울대학교가 위치하고 있고 고시원이 밀집되어 고위직과 전문직이 많이 배출되는 동네지만, 반대로 고시를 준비하는 수많은 수험생의 패배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신림동에 갈 때마다 묵직한 분위기에 짓눌렸고 다시 신림동을 오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주말만 신림동에 머무는 ‘통학 수험생’이었다. 집이 신림동 근처에 있더라도 현장에 떠도는 정보를 빠르게 접하거나 신림동 특유의 분위기에 노출됨으로써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가진 사람들은 기꺼이 신림동에 터전을 잡기도 했다. 나는 그 정도로 단단한 사람은 못됐다. 단지 신림동에 가는 주말마다 가방 두개 가득 책을 챙겼고 발걸음이 가방보다 무거워질 때면 이번 한번만 하고 그만두자는 마음이 발걸음을 챙겼다. 


신림동에는 발명품이 많다. 수년간 고시를 준비하던 수험생이 고시촌에서 어느 강사의 강의가 좋은지, 고시식당 메뉴가 무엇인지, 중고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지와 같이 수험생 친화적인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고시촌커뮤니티 어플리케이션이 대표적이다. 나도 그 어플리케이션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신림동 맛집을 섭렵하면서 매번 맛있는 밥을 챙겨 먹었고, 이게 신림동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발명품은 또 있다. 엔젤그립이라는 건데, 수험생활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될 거다. 논술형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손이 기억하고 손이 먼저 반응하도록 손으로 공부를 한다. 때문에 펜을 지지하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에 기형이 오는 것은 예사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다. 이런 손의 부담을 덜기 위해 두툼하고 폭신한 고무 소재로 펜을 감싸는 보조 용품이 바로 엔젤그립이다. 엔젤그립도 고시공부를 오래 한 어떤 수험생이 발명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엔젤그립이라는 천사 같은 제품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나는 손가락 변형과 습진이 생겼고 젓가락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어 수험 기간 내내 포크와 집게로 반찬을 집어 먹었다. 


고시촌.jpg

신림동 고시촌 거리 


신림동 공기


내가 어릴 적 어떤 국회의원은 한 과목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내가 고등학생일 때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입시제도가 시작되면서 내신과 수능, 논술에서 골고루 좋은 점수를 받아야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20대 개새끼론’이 빈곤한 청년을 가해자로 몰아세웠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의 자기개발서가 베스트셀러로 서점에 깔렸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내가, 그리고 신림동 고시촌의 청년들이 어떻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나는 질문에 질문을 거듭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괜찮은 노동단체에 상근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볼 만한 능력도 없었다. 노동단체 일은 매번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지만 승부욕이 있었던 내게 꽤나 도전적인 일이었다. 실수를 거듭하며 하나하나 배워가고 성취하는 게 재미있었고 내가 똑똑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우쭐해질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직장갑질이나 블랙기업 따위로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직장인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지만 노동단체에는 적어도 그런 나쁜 사람은 없었다. 안타깝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자발적으로 고용불안을 느꼈다. 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훗날 내가 출산이나 육아를 위해 활동을 잠시 멈추게 되었을 때 나는 돌아올 곳 없는 ‘경단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단체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감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오래오래 활동하기 위해 잠시 활동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면서 괜한 사람들을 원망했다. 


무기력증


나는 그렇게 신림동 통학생으로 지냈고, 시험이 끝나는 날 더 이상 신림동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그리고 심한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 없어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남발했다. ‘자소설’이라고 할 만한 자기소개서를 썼고 그저 그런 면접을 봤다. 3개월짜리 계약직을 뽑는 자리에 ‘풀정장’을 빼입고 온 경쟁자가 우스웠지만 반사적으로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면접 한 번 볼 때마다 수명이 하루씩 단축되는 것 같은 피로감을 느꼈다. 진심이 아닌 말로 나를 표현하며 어디라도 소속돼 불안감을 덜고 싶었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질문을 받았고 무의미한 취업 준비를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바삐 움직이면서도 불안했지만 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수험 기간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았지만 대부분 기억나지 않았다. 단 하나, 나는 원 없이 잠을 자고 싶었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알람을 모두 해제했다. 시험공부를 하며 생겼던 알레르기는 여전히 며칠 주기로 올라왔고 악몽을 꿨다. 공부에 열중하느라 잊고 지냈던 활동에 대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청년수당을 신청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탈락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에 내가 너무 초라했지만 무슨 위로라도 받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했던 짧은 활동 경력은 일종의 체험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노동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쉬운 대안을 제시하는 관찰 활동가. 막막한 미래 앞에 내 삶이 놓이고 나니 내가 자주 쓰던 ‘절실함’이라는 단어가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평범하게 공부만 할 것을 강요받던 청소년이 스무 살이 되자 대학생으로서의 톡톡 튀는 매력을 요구 받았다. 취업의 문턱에서는 남들은 생각하지 못할 색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고, 취업에 골인하면 튀지 말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다양한 것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닌데, 때가 되면 그런 것들을 갖춰야 한다며 청년을 닦달했다. 꿈이 없는 청년의 종착지가 9급 공무원 시험이라며 ‘공시생’을 비웃다가도 공무원이 제일이라는 어른들 말을 들으니 쓴웃음이 날 뿐이다. 


마지막 강의


신림동에서의 마지막 강의에서 나는 묘한 해방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해방감과 과연 정말 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몇 년간 고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사람은 행정법 강사가 되어 내 앞에, 그리고 수백 명의 수험생 앞에 서 있었다. 마지막 강의에서 그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수험생들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1년, 2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쏟아 부었던 노력이 모두 없는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몇 년간 고시에 도전했고 결국 불합격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공부했던 그 시간이 저에게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 합격하지 않더라도 시험을 준비할 때의 노력처럼 어떤 일이든지 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고시에서 낙방한 제 친구는 마음을 추스르자마자 고시 공부하듯이 토익을 공부했고, 곧 대기업에 입사해 지금은 잘나가는 직장인이 되어 있으니까요. 시험공부를 할 때의 치열함이라면 여러분은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신림동.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꿈인 청년들이 밀집한 동네. 감히 신림동에서 불합격도 성공이라는 위로를 건네는 강사의 마지막 말에 몇 초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잠깐 정지한 세상에서 금세 깨어나 분주하게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섰다. 그 이후로 며칠 동안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그 강사가 어떤 말을 했는지 되새기는 글이 오르내렸다. 


신림동의 가르침


아직도 신림동에는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해 감정을 없애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다. 감정이라는 건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쓸모없는 잡생각일 뿐이다. 감정 없이 보낸 시간 동안 혼자 밥을 먹는 게 창피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강사를 붙잡고 질문하는 게 미안하지 않았고, 독서실에서 아주 작은 소음도 용납하지 못하며 포스트잇으로 조용히 할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림동은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감정이 가득 찬 곳이기도 하다. 불합격해 자살하고 싶다는 이에게 산책하자며 손을 내밀고, 아침 수업을 빠지고 싶다는 이에게 진심어린 쓴소리를 하며, 쉬는 시간에 쪽잠을 자는 이를 위해 수업 자료를 넉넉히 챙겨 오기도 한다. 신림동 사람들은 서로의 경쟁자이자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동지이자 서로의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목격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자신의 합격을 자랑하지도 않고 타인의 불합격을 안주 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선함만으로 희망은 증명되지 않는다. 청년이 자립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보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아질수록 감정을 죽여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불안정한 시작을 하느니 신림동 고시촌에서 수년 동안 자기만의 무기를 만드는 편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합격자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것도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기꺼이 대학생의 낭만을 포기하는 고육지책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대부분 고통스럽다. 고통은 희망을 담보할 수 없다.

활동을 하고 싶어 활동을 그만뒀고, 활동을 그만두자 비로소 청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모순의 모순을 거듭하며 아프게 배운 것은 상투적일 수 없는 절실함이었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신림동 기억이지만 신림동의 가르침을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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