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함께 가는 거죠_박호준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교육연대부장 2

by 센터 posted Mar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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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리 : 이응덕 쉼표하나 2기 회원


너, 두 달 안에 자른다


2011년 흥국생명보험 사장하던 사람이 티브로드 사장으로 왔어요. 그러면서 전국에 있는 기사 모두를 개인 사업자로 돌린 거예요. 우리는 개인 사업 해본 적도 없는데 뭔지도 모르고 회사에서 쓰라는 대로 쓰고 각자 회사 이름도 짓고 그랬어요. 보험회사 사장하던 놈이 와서 우리를 보험설계사처럼 만들어버린 거죠. 그렇게 1년 정도 시행했는데 폐해도 많고 반발도 많았어요. 결국 그 사람은 다음 해에 잘렸고 다른 사장이 왔죠. 이번에는 전국 사업장을기술센터와 영업센터로 나눴어요. 그리고 그전까지는 자회사니까 사장이 안 바뀌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사장이 6개월, 1년에 한 번씩 바뀌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센터장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라 티브로드 원청에서 연차 꽉 찬 사람들, 차장이나 부장들 중에서 회사에 잘 보인 사람들을 센터장으로 꽂아 넣는 거죠. 그러면서 2010년 제 연봉이 3,900만 원 정도였는데 2013년 2,100만 원으로 내려갔어요. 센터장이 세 번 바뀌면서 연봉이 반토막 난 거죠.


그런 중에 씨앤엠(C&M. 현재 딜라이브로 회사명 변경)에 노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비정규직도 노조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리고 그쪽 출범식 때 간 사람들이 우리도 노동조합 만들자 했던 거죠. 그때 제가 팀장이었는데 “팀장들은 노조 안 할 거다.” 하고 거의 연락을 안 해서 저한테는 연락이 늦게 왔어요. 그런데 저는 “그럽시다. 팀장이라고 노조 못할 거 없지.” 했어요. 팀장이 노조 하는 사업장은 조합원이 많아요. 초창기 우리 센터는 총괄팀장 빼고 나머지 99퍼센트가 다 조합원이었어요. 그때 센터장이 저를 자르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본인이 먼저 잘렸죠. 노조가 만들어져서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친 거죠. 만약 노조 없었으면 제가 먼저 잘렸을 거예요. 저는 팀장이었지만 직원들 괴롭히는 거 때문에 센터장하고 맨날 싸웠거든요. 직원들 데리고 나가서 전단지 뿌리는 거 사진 찍어 센터장한테 보내주고는 애들 술 먹여서 집에 보내고. 그런데 그게 탄로 난 거예요. “일하라고 했더니 애들 술이나 퍼 먹이고.” 하면서. “그럼 당신이 전단지 뿌려.” 했어요. 잘릴 각오하고 싸웠지요. 그때 센터장이 “내가 너, 두 달 안에 반드시 자른다.” 해서 “해 봐요. 잘라봐요. 어디 법적으로 해보자고.” 그랬어요. 그 일 후로 센터장이 고분고분해졌는데 알고 보니 뒤로는 자기 명의로 된 재산을 싹 빼돌린 거예요. 한 8억 가까이 되는 돈을 경리 시켜서 빼돌린 거죠. 나중에 소송해서 법원에서는 불법으로 판결 나 우리가 이겼는데도 막상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었어요. 슬픈 사연이죠.


노조 설립, 형들이 하자는데 해야지 


씨앤엠 원청 정규직 노조가 2000년 발족하고 하청업체인 씨앤엠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조도 2003년 2월에 발족했어요. 원청 노조가 하청업체를 조직한 거죠.그리고 다음 달인 3월 24일 티브로드 비정규직노조가 설립되었어요. 그때 안양은 중앙 기술센터와 남부 기술센터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중앙은 제가 속한 곳이고 센터 대부분이 조합원이었어요. 남부 인원은 저희보다 훨씬 많았는데 조합원은 네 명밖에 안 돼요. 거기는 센터장(사장), 팀장, 고참들까지도 노조의 ‘노’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같은 지역이라도 두 센터 분위기가 전혀 달랐어요.

처음 노조 만들 때 안양, 서울, 안산에서 70~80명 정도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두 달 동안 저녁 6시 일 끝나면 다른 지역 센터 다니면서 조직 활동을 했죠. 서울, 인천, 안산, 천안, 수원, 평택, 오산, 화성 등 스무 개 넘는 센터 찾아다니면서 노동조합 설명회 하고 가입서 받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180명까지 조합원을 늘렸어요. 부산, 대구 등은 너무 멀어서 주로 수도권만 했어요. 연락해서 “한번 들어봐라. 노조를 하든 안 하든 일단 얘기나 해보자.” 그랬어요. 그런데 그걸 할 때 강당이나 회의실 빌려서 하는 게 아니라 거의 술집이나 식당에서 만났죠. 저는 그때 노조에서 따로 직책은 없었지만 제 돈 써가면서 열심히 했어요. 

노조 초창기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게 저를 비롯해서 안산 최승근이 팀장이었고 도봉 노원 이영진도 팀장이었고 이시우도팀장이었어요. 앞서 팀장이 노조하는 센터는 조합원이 많다고 했잖아요. 서로 역할 분담해서 엄청 돌아다녔죠. 조합원 늘리려고. 다행인 게 천안 쪽에 예전 안양 안산에서 일하던 동생들이 많이 내려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쪽은 쉽게 조직을 했어요. “형들이 하자는데 해야지.” 하면서가입하더라고요. 지금은 아산센터가 조합원이 제일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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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해고자 복직, 고용 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노숙 단식 농성자 명단을 들고 있는 티브로드 조합원들.(@희망연대노조)


배고파서 못 살겠다, 점심시간 보장하라 


2013년 노조 만들고 첫 구호가 이랬어요. “배고파서 못 살겠다, 점심시간 보장하라.” 저희가 점심시간이 따로 없고 스케줄대로 일을 계속 다녀야 되는데요. 보통 우리가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고객들 관리도 잘하고 점심도 먹어가면서 할 수 있는 게 열두 개 정도에요. 그런데 하루에 스무 개씩 할당되니 그걸 다 처리하려면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요. 김밥 사서 차에서 먹든지 아니면 편의점에서 라면 먹든지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어요. 그래서 노조 만들고 회사에 “우리는 12시까지 일하고 점심시간 1시간 보장받아야 되겠다. 이 시간에는 터치하지 마라.” 했어요. 직원들끼리는 당연히 공감하는 바였고 일반 시민들도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배고파서 못 살겠다, 점심시간 보장해라 하냐.” 하는 반응이었어요. “진짜에요?” 하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그런 사례들과 사진을 가지고 피켓 홍보전도 하고 그랬어요.


그 다음에 투쟁한 게 퇴근시간이에요. 규정이야 9시 출근, 6시 퇴근이었지만 실제로는 퇴근시간이 따로 없었죠. 노동조합 생기기 전에는 7시 반에서 8시까지 출근하고 저녁에는 영업 못하면 9시, 10시까지 회사에 붙잡혀 있어야 돼요. 오늘 영업 못한 것에 대한 반성문, 내일 어떻게 영업할 것인가 하는 계획서,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전단지 작업을 남아서 하는 거죠.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은 전혀 없었고요. 제가 먼저 기술센터와 영업센터가 있다고 했는데요. 기술센터 평가에 영업 목표 20퍼센트가 들어가요. 각 기술센터마다 인원에 따라 영업량이 내려오는데 예를들어 이번 달 우리 센터는 방송 200개, 인터넷 60개 해야 된다 하는 거예요. 영업센터는 그게 본업이니까 하는데 기술센터는 AS(After Service) 가서도 방송은 우리거 쓰고 인터넷은 다른 데 쓰고 있으면 꼬셔서 인터넷을 우리 거 쓰도록 해야 되는 거예요. 집에 텔레비전이 한 대 더 있는데 그걸 따서 본다고 하면 그것도 가입시켜야 되고. 또 우리 방송을 보는데 가입은 안 되어 있으면 그걸 불시청이라고 해서 찾아내서 가입시켜야 되고. 짬이 나면 전날 전단지 만들어 놓은 거 가가호호 붙여야 되고. VOD(Video On Demand) 부가서비스도 가입하도록 유도해야 되고. 그런데 그런 부가서비스는 한 달간 무료로 주는데 한 달 후에 본인이 해지하지 않으면 요금이 계속 부과되는 거죠. 그걸 노리고 서비스를 주는데 대다수 고객들은 그냥 까먹어요. 기사들은 현장에서 고객들과 직접 만나잖아요. 그러다보니 본업이 기술인데도 기술로 하는 AS보다는 영업 압박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져요.


‘대리점 밀어내기’라고 예전 남양유업 사태 아시죠? 우리는 그걸 ‘밀어 넣기’라고 해요. ‘자뻑’이라고. 그게 뭐냐 하면 예를 들어 제 앞으로 방송이 하나 가입돼 있어요. 그런데 제가 오늘 영업을 못했어요.그럼 제 앞으로 방송 한 건을 추가 등록하는 거예요. 회사는 영업 한 건이 생긴 거고저는 돈을 또 넣어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편법을 쓰는 게 회사에서 오늘 방송 다섯개를 해야 돼, 그런데 제가 하나도 못하면제 명의를 빌려 다섯 개짜리 단체로 가입해요. 그리고 회사는 돈을 줘야 하는데 안 내주니 덤터기를 쓰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2013년 직원들 앞으로 자뻑한 것들 전수조사 해서 없애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렇게 해보니까 저만 한 달에 17만 원 넘게 회사에 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분명히 센터장이 내준다고 해서 제 이름으로 가입했는데 안 내준 거지요. 제가 내달라고 하면 알았다, 알았다 말만 하면서. 그게 밀어 넣기에요.


그렇게 점심시간 투쟁, 밀어 넣기 투쟁을 하고 난 다음에는 임금 투쟁을 했어요. 2013년 9월 30일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 8층 티브로드 본사를 점거했지요. 150명이 새벽에 올라가 기습 점거농성을 하니까 티브로드 원청, 노동부, 경찰청, 국회 4자가 교섭을 하자고 했어요. 농성을 풀고 교섭을 해서 그 해 월급 45만 원 인상했어요. 저희가 요구한 건 당초 100만 원이었지만. 그때 동종업계에서도 저희 인상률이 반 밖에 안 되었어요. 그렇게 45만 원 인상하고 기본협약서 체결하고 노조 사무실 세 개, 전임자 여섯 명을 확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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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티브로드 본사 앞에서 진행한 티브로드 규탄 기자회견(@희망연대노조)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지역으로’ 


그리고 노사 공동 사회공헌기금 3억을 확보했는데, 그건 저희 희망연대노조에 생활문화연대국이라고 있어요. 희망연대노조 슬로건이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지역으로’인데 우리 회사 안, 노동조합 안에서만 하는 투쟁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할 수 있는, 그래서 지역 시민들한테 지지받을 수 있는 노동조합이 되자는 거죠. 그렇게 하려면 지역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 하고 아동 청소년 사업, 집수리 사업 같은 걸 많이 해요. 그러려면 사업비가 필요한데 그걸 회사에 요구해서 따낸 거죠. 그래서 안양, 안산, 인천, 서울 강서·강북 등 각 지역마다 배분하고 할 수 있는 사업들을 찾아서 지역 네트워크를 꾸리는 거예요. 주체는 지역이지만 저희 노조도 참가해서 같이 실천하는 거죠. 그냥 돈만 내는 게 아니라요. 사회공헌기금은 저희가 처음 시작한 건 아니고 씨앤엠에서 먼저 했어요.


씨앤엠은 노사 협상 과정에서 사회공헌기금을 출연하라고 먼저 요구하면서 투쟁했어요. 그걸 안 내면 교섭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했지요. 그런 것으로 지역 단체들하고 계속 연계해서 활동하고 있죠. 물론 교섭 과정에서 사회공헌기금을요구하려면 조합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되는데요. 저희는 100퍼센트 찬성해서 오히려 쉬웠어요. 조합원들이 지역에 좋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들 좋아했거든요.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나는 게 아니에요. 기금 출연한 만큼 나중에 세금 환급을받으니까요. 다만 회사에서는 자기들이 출연한 돈으로 그 지역 다른 연대 단위들이 파업하면 연대자가 되는 거라 그걸 꺼리는 거예요. 


희망연대노조를 처음 창립했던 분들 생각이 ‘뭔가 새로운 노동조합을 해보자.’였거든요. 그 분들이 추구하는 게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거예요. 처음 노조 가입하면서 그분들이 교육할 때 노동조합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할 때 세뇌(?)을 해요. “우리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사회공헌기금은 반드시 따내야 하고 우리 돈이 아니다. 우리도 지역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그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수단이고 노조가 해야 할 가치다.” 그러니까 조합원들 반발이 없는 거예요. 애초부터 그 얘기 듣고 하는 거니까.


대통령이 다 해주지 않는다 


조합원도 확 줄었다가 늘긴 해요. 2013년 투쟁 끝나고 조합원이 400명까지 늘어났어요. 그런데 2014년 임금 단체협약 때 4개월 노숙투쟁하면서 직장 폐쇄 당할 때 확 줄었지요. 그렇게 매년 줄어서 올해 초 120명까지 떨어졌어요. 그러다 지금은 오산 화성 미조직 센터를 한 군데 뚫어서 15명 조합원이 추가 가입했고, 각 지회에서 한두 명씩 재가입하기 시작해서 현재 150명 선이에요. 올해 목표는 200명까지 채워보자 하는데 마지막 투쟁을 어떻게 해서 좋은 성과를 내서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어서 조합원이 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그렇지 않아요. 본인들한테 실질적으로 와 닿는 게 없으니까. 오히려 더 역효과가 났다고 해야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되면서 비정규직 다 정규직 시켜주겠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기대를 갖고 있어서 노동조합에는 마이너스가 됐어요. 기다리면 다 해줄 건데 왜 힘들게 나서서 그러느냐 하는 거죠. “대통령이 다 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투쟁해야 한다”고 해도 조합원들조차도 기다려보자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튼 노조 만들고 처음 시작한 근로 시간 투쟁 결과 하루 8시간에 연장근로 1시간 보장해서 주 40시간을 따냈어요.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월급 45만 원 인상했고. 투쟁 첫해 치고는 나름 큰 성과를 거둔 거죠. 이후 2014년 임금 투쟁 때는 월급 9만 원 인상, 2015년에는 7만 원 인상, 그리고 작년 임금은 동결되었어요. 해고자 복직 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다른 요구는 양보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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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 티브로드 노동자 5대 요구안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박호준 교육연대부장.(@희망연대노조)


사람을 지키는 해고자 복직투쟁 


2016년에는 해고자 복직투쟁을 벌였어요. 2년마다 원청 티브로드와 협력업체인 센터 간 재계약을 하는데 새로운 센터장이 법인을 만들어 와요. 그러면 기존 센터 기사들 고용 승계를 해야 하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결국 기존 기사들은해고되는 거죠. 그렇게 시흥 광명센터 23명, 전주센터 28명, 모두 51명 해고자가발생했어요. 말이 미고용 승계지 결국 해고자거든요. 3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쟁하면서 처음 원청인 명동 티브로드 본사 앞에서 비닐 천막치고 노숙농성했어요. 그러다 9월 여의도 국회로 옮겨 다시 천막 치고. 결국 10월 그 사이 다른 직장으로 간 사람들 빼고는 전부 복직시켰어요. 그걸 위해서 노조가 요구했던 걸 모두 양보해야 했고요. 임금 인상, 단체협약 등. 그러면서 노조 사무실도 하나 뺏기고. 사람을 지키는 투쟁을 한 거죠.


저희가 2014년에 근로자 지위(정규직) 확인 소송을 한 게 있어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거죠. 그런데 작년 복직투쟁하면서 원청 티브로드에서 그걸 최우선 취하하라고 요구한 거예요. 사실 저희도 걱정했죠. 고민이 많았어요. 우리는 양보할 거 다 하고 더 이상 싸울 무기도 없는데. 그럼에도 사람을 먼저 살려야한다, 복직이 최우선이다 그렇게 결정한 거죠. 모든 조합원이 흔쾌히 동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87퍼센트 넘게 찬성했어요.

현재 하고 있는 투쟁도 고용보장 요구에요. 올해(2017년) 12월 말로 전국 51개 센터가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작년 같은 일이 또 생기지 말란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걸 먼저 “원청이 책임져라. 또 당하고 싶지 않다. 계약서에 고용보장 문구 하나 넣어라.” 요구하는 거죠. 지금은 센터장이 예전처럼 원청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건 아니고 입찰 공고를 해요. 그럴 때 기존 인원들 고용보장 되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의당 국회의원들이 몇 번 다녀가고 간담회도 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된 건 없어요. 


노조! 놓고 싶지 않은 끈


저는 2013년 노조 설립하고부터 우리 투쟁도 알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 여러 투쟁 현장을 다니는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저희는 사실 ‘연대한다’고 안 하고 ‘함께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계산 안 하고 그냥 함께하는 거예요.

저는 회사 측으로부터 “끈질기다. 징한 놈들이다.” 하는 소리 듣고 싶고, “쉽게 꺾이지 않는다. 한 명이라도 있으면 누구든지 손 잡아준다. 그게 우리 노동조합이다.” 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재작년인가 제가 조합원들한테 그랬어요. “주체가 한 명이라도 서 있으면 가지는 항상 뻗는다. 주체가 바로 서기만 하면 된다. 한 명이 남든 두 명이 남든 올곧은 사람 한 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노동조합은 계속 될 거다.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거다.” 제 생각에는 그런데, 다른 사람들 생각도 그렇겠지요. 본인들 투쟁에 다른 사람들 안 오면 서운하겠죠. 또 다른 사람들 투쟁에 자기가 먼저 가야 되고 가면 또 오기를 바라는 거고. 그걸 한 단계 뛰어넘으면 그냥 가는 거죠. 그냥 함께 가는 거, 뭘 바라서 가는 게 아니라.


저에게 노동조합은 ‘놓고 싶지 않은 끈’입니다. 끈이라는 게 용도가 많잖아요. 서로 잡는 것도 있고 테두리를 둘러치는 것도 있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아! 노동조합 하다가 우리가 정말 힘들어서 몇 명 안 남으면 어떻게 하지? 나라도 끝까지 싸워야 하는데 싸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럴 때 생각하는 게 ‘주체가 서 있으면 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끈들을 놓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한다. 아니면 예전처럼 회사에 순종하고 나라에 순종하고 살텐데···. 그렇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가 우스갯소리로 잘하는 말이 있어요. “먹여만 주시면 뭐든 합니다. 밥만 잘 주시면 노조 활동 어떤 일이든지 잘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꿈요. 저는 그냥 노조 간부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쓸모 있는 조합원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까지 해온 대로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쭉 잘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조합 활동 할 거고요, 다른 투쟁 현장에도 함께할 겁니다. “박호준이 항상 저기 있구나.” 하는 소리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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