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 청소년 淸掃年

by 센터 posted Mar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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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민중의소리 수습기자



“앗, 뜨거!” 

급히 무언가를 마시던 애순이 입천장을 데어버린 듯 무심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애순의 손에는 인스턴트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들려있다. 새벽 6시. 가장 분주한 럼블 타임이 끝난 뒤 잠시 숨통을 틀 수 있는 시간. 애순은 화장실 청소도구함에서 숨겨놓은 보물상자를 찾듯이 믹스커피를 꺼내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천 원짜리 라텍스 장갑에 비닐봉지를 덧끼우고, 거기다 고무장갑까지 ‘완전무장’하고 병실 청소를 한바탕한 탓에 애순의 손은 한껏 닳아져 있었다. 가뜩이나 주름진 손등은 이제 늙은 고목나무가 된 것 마냥 연륜을 상징하는 나이테가 등고선처럼 펼쳐져 있다. 애순은 냉기가 감도는 화장실 타일 위에 아무렇게나 서서 종이컵을 홀짝인다. 아무렇게나 섞은 고동색 믹스커피 향을 타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애순에게 온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곧 해가 뜬다.

A대 병원의 청소는 3교대로 반복된다. 새벽 6시에서 오후 4시, 오후 1시에서 10시, 오후 4시에서 11시까지. 애순은 그 중에서도 새벽타임이다. 정식 근무 시작 시간은 새벽 6시이지만, 맡은 구역의 ‘할당량’을 다 채우려면 한두 시간은 일찍 병원에 출근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청소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청소구역은 6~7개의 병실과 복도, 화장실 등이다. 깨끗한 병실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도 열두 번, 때 빼고 쓸고 닦고 광내고를 반복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다. 애순에게 이제 새벽 4시 반 달밤의 풍경은 익숙하다. 모두가 잠든 도시, 가로등의 샛노란 불빛, 고요한 병실의 적막은 매일 마주하는 장면들이다. 


*

“여사님, 요기··· 환자 피 찌꺼기 또 다 쏟아졌어요. 어유 이걸 어떡한담··· 아후··· 냄새···!”

애순이 ‘커피 한잔의 여유’로 잠시 숨을 돌리자마자 코디네이터 미영이 애순을 애타게 부르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환자의 피 찌꺼기를 스테인리스 양동이에 모아두고 한번에 비우곤 하는데, 그것이 그만 쏟아진 모양이다. 식사 시간 전 깨끗이 대걸레로 닦아놓아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하루 중 다반사다. 바닥에 쏟아진 노리끼리한 피 찌꺼기의 찌릿한 오물 냄새가 금세 코를 찔렀다. 미영은 이를 보며 어찌할 줄 모르고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두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애순을 유일한 구원자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삐익-삐익-삑-삐빅―

애순의 주요 담당구역인 심혈관조영실에 들어서자 대형 장비들이 내는 고주파 기계음이 반복해서 애순의 귀에 내리꽂혔다. 심혈관조영실은 심장혈관 환자들이 입원해있는 병실이다. 이곳에서는 환자들이 허벅지나 손목 혈관을 절개해 검사를 받는다. 

심혈관조영실에서는 혈액이 바닥에 묻을 때 끈적끈적한 혈액을 지워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 병실보다 힘이 두 배로 든다. 뿐만 아니라 조영제를 구석구석 닦으려면 세제를 몇 번이나 들이부어도 일반 걸레로는 안 닦일 때가 많다. 팔과 다리를 동원하여 바닥을 닦으려고 온 힘을 다해 휘적휘적거릴 때마다 애순이 드는 생각은 ‘유한락스 하나 정도만 있으면 참 편할 텐데’라는 작은 바람이었다. 매번 팔이 저리고 퉁퉁 부어서 집에서 주무르다가 유한락스 생각이 나서 심혈관조영실의 선생님들에게 저번 달에 살짝 귀띔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소식이 없다.


애순은 대형 수채기에 마포걸레 두 개를 집어넣고 세제를 뿌려 옴팡지게 빨기 시작했다. 애순의 걸레 펌프질이 왔다, 갔다 스무 번 정도가 계속된 이후에야 세제물이 빠졌다. 걸레 두 개를 짤순이에 힘차게 짜낸 물에는 구정물과 세제가 섞여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왔다.

“부탁해요, 여사님.” 

미영은 애순에게 살짝 목례를 한 후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애순은 마포걸레 두 개를 겹쳐서 바닥을 세게 닦기 시작했다. 애순이 능숙하게 걸레질을 시작하자, 바닥에 고여 있던 핏물이 넘실대듯 파도쳤다. 몇 번 몸을 움직이고 나니 열이 올라왔다. 애순이 쓰고 있는 마스크는 한증막에 막 들어온 듯 금세 습기가 가득 찼다. 


4.병원.JPG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제5회 청소노동자행진 선포 기자회견(@공공운수노조)


*

사실 애순은 처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의사나 간호사와 달리 여기 있는 대부분의 청소원들은 사명감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막연한 수치심과 거부감을 가지고 들어온다. 애순도 그랬다. 병원에 오기 바로 전, 애순은 기사식당에서 일했다. 3년 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은 터졌다. 평소와 같이 드럼통만한 국통에 국을 끓이다 그 어마어마한 걸 엎지른 것이었다. 용광로에서 방금 나온 듯 팔팔 끓는 200인분의 국물은 단숨에 애순의 온 몸을 덮치고 말았다. 애순은 넘어지면서 팔뚝과 허리, 궁둥이 등 몸뚱이의 대부분을 다 데었다. 


지금도 애순의 팔뚝에는 그때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날 이후 애순은 팔에 있는 거뭇거뭇한 화상을 가리기 위해 사시사철 팔토시를 늘 끼고 산다. 그런 애순을 안쓰럽게 여긴 아는 언니가 이 일을 추천했다.

“A대 병원 청소 이모 구한대. 너 일 안 한지 꽤 됐잖아. 여기 한 번 해.”

“언니, 내가 무슨 청소야. 나 안 가. 청소하면 얼마나 창피해. 사람들이 다 보잖아! 식당에서 일할 적에는 사람들이 안 봤는데 청소하면, 다 보잖아··· 어떻게 해.”

애순은 무엇보다도 더러운 오물을 만지고 먼지를 먹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보다 낮은 곳에서 허리를 숙이고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걸레질을 연신 해댈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창피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니가 대신 쓴 애순의 이력서는 합격 도장을 받았고 애순은 그때부터 덜컥 청소 일을 시작해 벌써 3년차 청소원이 다 됐다.


*

A대 병원 3층 복도 구석에 위치한 비소독물실은 이들 청소원들의 유일한 아지트이자-비록 ‘휴게실’이라는 간판은 없지만- 휴게실이다. 그전까지는 청소원들이 휴식을 취할 때면 마땅한 휴게 공간 없이 병실 한 켠에서, 또는 인적이 드문 화장실에서 플라스틱 의자 하나에 앉아 쉬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비소독물실을 내준 것이다.

3평 남짓한 방 크기의 비소독물실에는 아직도 마대걸레를 빠는 수채기가 있고, 청소도구와 화학 약품, 세제 등이 꼭 백화점 명품관에 있는 향수처럼 선반에 즐비해 있다. 물 먹은 스펀지처럼 눅눅하고, 지하실처럼 퀘퀘한 공기가 감도는 아지트에 청소원들은 여름철에는 은색 돗자리, 겨울철에는 전기장판을 깔아 생활한다. 그나마 발 뻗고 쉴 수 있는 이 곳에서 청소원들은 틈틈이 쪼그려 앉아 집에서 싸온 고구마와 귤, 감자, 찹쌀도넛 등 주전부리들을 우물우물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언니, 진짜라니까. 나는 다인실 병동이잖여. 청결에 민감한 간병인이나 환자 가족들이 환자 상태가 나뻐짐 병원 청소 탓을 헐 때가 있더라고. 말이 돼?”

1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 오전 8시. 1년차 막내 인숙이 입을 샐쭉거리며 애순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차갑게 식은 도넛을 질겅질겅 씹고 있다. 그들 앞에 놓인 민트 얼그레이 차는 간호사들이 포장지조차 뜯지 않은 새 차 세트를 버린 걸 가져온 것이다. 애순의 쉬는 시간을 책임지는 맥심 믹스커피도 마찬가지다.

“에이, 설마. 그랬을라구.”

생각해보니 애순도 ‘무언의 무시’를 당한 적이 있었다. 병원은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눈치를 보고, 간호사는 의사의 눈치를 보고, 청소원들은 간호사나 코디네이터, 때로는 간병인, 때로는 보호자, 때로는 환자의 눈치를 봤다.  

“아, 잠시만요. 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애순은 심혈관조영실 청소를 혼자 맡기 때문에 거의 타인과 대화 없이 일만 한다. 그런 애순이 오후까지 일하면서 병실 바닥을 수십 번 닦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죄송하다’이다. 애순 본인도 왜 죄송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청소하러 왔고, 청소하기 위해 걸레를 들이대는데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간병인과 보호자들이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비켜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도 모르게 죄송하단 소리가 나왔다.  

“저기요, 아줌마~ 여기 쓰레기 박스 다 찼는데~”

바닥에서 굳고 있는 피 찌꺼기들을 거의 다 처리한 순간, 병실 쪽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순은 일할 때는 ‘여사님’, ‘저기요’, ‘아줌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애순은 말없이 침대 쪽으로 가서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를 확인했다. 젊은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발로 툭-하고 쓰레기통을 애순 쪽으로 밀어냈다. 애순은 재빠른 속도로 비닐봉지를 손으로 묶어서 비품실에 모으고, 새 비닐을 갈아 꼈다.


*

“꺄아악!” 

쓰레기봉지를 정리하던 애순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대바늘만한 주사기가 그녀의 주름진 손바닥 중앙에 박혔다. 주사기 피스톤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듯 보이는 환자의 혈액이 들어 있다. 애순이 눈을 질끈 감는다. 손바닥을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드는 그것을 어떻게든 털어내야 할 참이었다. 애순은 마침내 바늘을 쭉 뽑아낸다. 애순의 손에선 검붉은 피가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새어나온다. 애순은 붉은 잉크처럼 흘러내리는 피를 붙잡고 손을 덜덜 떤다. 환자와 보호자, 수십 개의 시선이 일제히 애순에게 꽂혔다. 그들은 다친 애순의 근처에 서서 웅성대기 바쁘다. 몇 명의 보호자들이 중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저거. 환자 찔렀던 거 아니야?” 

“설마 우리 애 시트에 튄 거 아냐?”

날카로운 바늘이 파고든 자리는 그대로 구멍이 뚫린 듯 허전했다. 애순은 방금 일어난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푸욱-.’ 뾰족하게, 그리고 묵직하게 찌르던 바늘의 서슬 퍼런 칼날, 발가락까지 털끝이 곤두서던 찌릿함, 그대로 굳은 손바닥에 진득하게 매달려 덜렁덜렁 춤을 추던 주사기의 바늘, 뚝뚝 떨어지던 붉은 피, 병원의 새하얀 조명, 그녀를 내려다보던 수십 개의 눈알들, 등골을 덮은 공포와 두려움그랬을라구···.

애순은 한편으로 원망의 마음도 들었다. 환자 피가 묻어있는 주사기를 헝겊으로 감싸놓는다든지, 바늘을 구부려 준다든지 최소한의 배려 없이 버리고 갈 수가 있는지 말이다. 애석했다. 검지 손가락만한 대바늘에 사람이 찔려서 앉아있는데 사람들은 눈앞에서 침대 시트에 피가 튀지는 않았는지를 걱정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자존심이 상했다. 만약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병실은 한바탕 뒤집어졌을 테다.


삐익-삐익-삑-삐빅―

심혈관 장비가 내는 괴음이 차가운 적막 속에서 애순의 귀에 이명처럼 들리고 있다. 팔짱을 끼고 애순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속 애순은 무생물 바위가 된 듯 그대로 멈춰있다. 애순은 ‘청소 노동’이라는 굴레에 박힌 편견의 벽에 부딪히니 허탈해지는 것 같다. 애순은 환상에서 깬 듯 다시 마포걸레를 집어 들었다. 저릿, 애순은 익숙한 듯 팔토시에 손을 갖다 대며 습관처럼 팔뚝을 주물렀다. 그녀의 화상 흉터 위에 누군가가 소금을 뿌려댄 듯, 짓무른 살갗이 어쩐지 자꾸만 욱씬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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