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취업성공패키지

by 센터 posted Ja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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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쉼표하나 6기 회원



몇 년간 계속해오던 야채 장사일을 엄마, 아빠는 자연스럽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미수금은 늘어가고, 품목도 적어서 일을 하면 할수록 빚이 늘었다. 그만두고 어디라도 들어가서 일을 하라고 매년 이야기를 했지만 당장 손에 한 푼이라도 들어오는 가게 일을 엄마, 아빠는 쉽게 놓지 못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게차에 발가락이 부러진 아빠는 가게 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영업을 하는 아빠가 없으니 엄마 혼자서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겨울에 집중적으로 하는 장사인데 한겨울에 일을 그만두게 되니 엄마는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엄마는 이번에야말로 취직을 하겠다고 했다. 마침 그맘때 일을 그만두게 된 나는 매일 엄마와 남산을 오르면서 엄마의 취직 계획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은영이 엄마 알지? 신용카드 회원 모집 일을 하는데 나 소개시켜 준데. 한 달에 여섯 명 성공하면 100만 원 받고 더 하면 보너스도 받는대. 야, 어디 가서 여섯 명 못하겠냐?” 

엄마의 첫 계획이었다. 일단 막냇동생이 하나, 옆집 아주머니가 하나 해주기로 했다고 희망찬 얼굴로 산을 오르는 엄마를 보니 답답해졌다. 여차저차해서 여섯 명을 했다 치자. 다음 달에도 또 여섯 명을 해야 하는데, 적은 숫자 같지만 매달 모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시작하겠다고 하는 엄마에게 일단 필요한 돈은 줄 테니까 길게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으라고 했다. 엄마는 알겠다며 다른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인력소개소에 전화를 걸었어. 당장 돈이 없으니까 임금을 받고 나서 취업 수수료를 주겠다고 했더니 아줌마를 뭘 믿고 수수료를 나중에 받아요? 이러는 거야.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냥 냅두라고 하고서 전화를 끊어버렸지.” 


벼룩시장을 보던 엄마는 이곳저곳에 매일같이 전화를 해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엄마 나이가 올해로 쉰아홉. 뭐든지 해내던 원더우먼 같던 우리 엄마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지. 마트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화하는 족족 퇴짜를 맞던 엄마에게 일단 와보라고 하는 곳이 생겼다. 

“생산직 비슷한 일이야. 일단 처음에는 최저임금이 안 되는데 손이 얼마나 빠른지 보고나서 급여를 결정하겠다고 하더라고. 일단 멀어도 가봤지. 근데 막상 가봤더니 너무 더러워. 아유~ 그 좁은데 옹기종기 앉아서···. 차비도 안 나오겠더라. 시간에 맞춰서 돈을 줘야지. 빠르기에 맞춰서 돈을 주는 게 말이 돼? 손이 두 배로 빠르면 두 배로 돈을 주냐고 물어보려다가 참았어.” 


이렇게 계속 두면 안 될 거 같아서 나도 같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던 엄마에게 국가에서 장려하는 취업 프로그램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름하여 취업성공패키지. 상담과 취업 교육을 받은 후에 취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엄마를 설득해 고용센터의 상담사와 상담 날짜를 잡았다. 두근두근 가슴 떨려 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나까지 설렜다. 첫 상담을 받고 온 엄마는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다.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데. 자격증을 따서 요양보호사를 하든가, 아니면 요리를 배워서 식당에 들어가거나 둘 중에 하나야.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아니래.” 


엄마에게 맞는 맞춤형 상담을 받을 거라 예상했던 엄마는 상담을 받고 와서 기분이 더 처져 보였다. 꼼꼼하게 임하는 엄마에게 상담사가 적성테스트를 아직도 하고 있냐고 면박을 주었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화가 나서 다음번에는 따라 가야겠다 생각했다. 두 번째 상담을 받기 전에 엄마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워크넷에 올려놓은 엄마의 이력서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자신의 요양보호원에 와서 일을 하라고 하는 전화였다. 알고 보니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서 일을 하는 사람을 고용하면 정부에서 지원보조금이 나오는 것을 알고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일을 시키는 곳이었다. 얼마 주냐고 하니까 요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130만 원 남짓 받는다고 했다. 수당이 형편없이 적은 것은 둘째치고라도 요양보호사가 정말 힘들다고 하던데 걱정이 됐다. 이대로 상담을 계속 받게 해서 엄마를 요양보호사를 시켜야 하는지 고민이다. 일 년을 일하면 취업한 사람도 보조금을 준다는데 그 일 년을 어떻게 버티나. 그리고 그 이후로는 어떻게 하나. 고민만 늘어갔다. 


두 번째 상담 날짜가 다가오던 중에 엄마가 전화를 했다. 

“뒷집 아줌마가 알바 소개해줬어! 건물 청소하는 일인데 일하던 아줌마가 허리 디스크 수술 받게 돼서 2주 정도만 해달래. 바로 하겠다고 했어!”

취업성공패키지를 하는 도중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는 게 조건인데 엄마는 어찌나 환하게 웃는지···.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이것저것 다 안 되면 요양보호사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이 기회마저 놓쳐버릴까 싶어서···. 결국 문의해보자 아르바이트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 상담사에게 감사인사를 연신하고 엄마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집에서 가깝고, 건물이 깔끔하고 쉬는 공간도 있고 너무 좋아. 건물 화장실이랑 사무실이랑 바닥 닦는 일이야. 새벽 다섯 시에 나가는데 여덟 시까지 3시간 일하고 나서 3시간은 쉬는 거야. 그리고 열한 시에 한번 나가서 깨끗한지 둘러보고 또 한 시간 쉬고 한 시에 마지막으로 나가서 또 둘러보고 두 시에 퇴근하는 거야.”


청소하는 일이라고 해서 걱정이 태산이던 나는 엄마 말을 듣자 좀 안심이 되었다. 솔직한 엄마이기 때문에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셨을 거다. 2주만 일하는 게 너무 아쉽다며 이런데 취직하면 너무 좋겠다고 하는 엄마를 보니 안타까웠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잠시 쉬기로 했던 아주머니가 허리가 당장 나을 거 같지가 않아서 아예 그만둔데. 그래서 나보고 그 아주머니 대신 정규직으로 계약하면 어떠냐고 하는데, 엄마 이거 할래.”

일을 하다 보니 좋다고 느낀 엄마는 취업성공패키지고 뭐고 이쪽으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상담도 그만두었다. 나중에 똑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려고 할 때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상담사의 말은 엄마에게 아예 들리지 않았다. 나도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일을 구했다고 저렇게 좋아하시다니. 아웃소싱업체 소속이 된 것이다. 미화원 분들을 고용해 건물과 계약을 맺어 청소를 보내는 곳이다. 


일하는 곳은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였다. 일도 쉽고 깔끔해서 엄마는 결국 정규직으로 취직을 했다. 부업도 해보고 식당에서도 일해보고 파출부도 해보고 장사도 해보고 여러 가지 일을 해봤던 엄마지만 59년 만에 처음 정규직으로 취직을 한 것이다. 엄마 앞으로 4대보험이 가입되고, 처음으로 엄마 이름으로 의료보험증이 나왔다. 엄마는 너무 뿌듯해하고 좋아했다. 허리가 아파서 나갔다는 그 아주머니의 치료비도 거기에서 대준다고 한다. 일하면서 아픈 것이라고. 엄마는 정말 잘됐다고 좋은 곳에 취직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간씩 나가서 버는 돈은 세금을 제외하고 12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이다. 실제로 청소하는 시간만 계산하고 나머지는 쉬는 시간이라고 제외시키는 것이다. 엄마는 일하는 시간 말고는 다 방 안에서 쉬기 때문에 괜찮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온전하게 회사에 있는 시간인데,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고 대기를 하는 시간인데 제하고 받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엄마는 그래도 너무 좋아한다. 


계약도 평생계약이 아니라 올해까지 계약이다. 일 년마다 계약서를 다시 쓴단다. 올해가 지나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엄마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먼저 잘리는 경우는 없었다고 이번에 나가게 된 아주머니도 7년이나 그 회사와 같이 일했다고 매년 계약서를 썼고 이번에 아팠지만 회사에서 잘린 건 아니라고 안심했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도 그만두면서 너무 아쉬워했다고, 엄마가 좋은 기회가 생긴 거라고, 하지만 결국 말이 정규직이지 언제 잘려도 이상할 거 없는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엄마는 요 몇 달간 좋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밤중에 일이 끝나 새벽에 들어오는 남동생 때문에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출근해도 가서 일하다가 쉴 수 있다고 좋다하고, 쉬면서 그 회사 직원들이 기계에 내려서 먹는 커피를 그냥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원두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두었다가 마시는 것도 좋다하고, 새벽같이 나가지만 그래서 또 일찍 끝나니 일찍 와서 쉴 수 있다고 좋다하고,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에게 그 회사에서 버리는 애니메이션 관련 물건들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좋다하고, 유난히 무뚝뚝해서 대하기가 어려웠던 경비 아저씨가 엄마와 다른 아주머니의 작은 말다툼에서 엄마 편을 들어주었다고 좋다하고, 요즘 얼굴이 정말 좋아보였다. 워낙 긍정적이고 소녀감성을 가진 엄마인데 더욱더 빛이 나 보였다.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엄마 자신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누구와 말을 할 때면 시장일 그만두고 정규직으로 취직 되어서 일한다고 말하며 좋아한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몇 달간 좋아하던 엄마에게 요즘 근심 걱정이 생겼다. 엄마가 청소하는 건물과 건물에 세를 들어와 있는 회사의 계약이 끝난다고 한다. 누군가 새로 그 건물에 입주하지 않으면 건물과 엄마가 속해 있는 아웃소싱업체의 계약도 의미가 없다. 결국 엄마가 하게 될 일은 없어지는 것이다. 운 좋게 누군가가 들어와서 엄마의 일이 계속 연장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다시 엄마는 이런 일 저런 일을 찾아다니면서 고민을 할 것이다. 어쩌면 안 하겠다고 했던 카드회원 모집하는 일을 다시 도전해 보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매일 주문을 외우듯이 이야기한다. 

“12월이 걱정이야. 누군가 그 건물에 들어와야 할텐데···. 어떻게든 되겠지. 잘되겠지.” 


덩달아 나도 걱정이다. 엄마의 환한 미소를 계속 보지 못할까봐서. 자식인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예전보다 돈을 더 벌게 되어도, 내 자신이 성공을 하게 되어도, 엄마에게 매달 몇 백만 원씩 가져다 드린다고 해도 엄마의 지금 이 미소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 명의 노동자로서 인정받은, 정규직으로 존재하는 엄마의 자신감이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비록 나이로 따졌을 때 엄마의 나이가 생애주기 뒤쪽이라고 해도 엄마의 마음만큼은 생애주기 앞쪽에 있었으면 하는 게 나의 요즘 바람이다. 엄마를 응원한다.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노동자로서 한 명의 노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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