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대상] 조롱받지 않을 권리

by 센터 posted Ja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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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범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상근활동가



국회 앞


너무 일찍 찾아온 겨울이 원망스러웠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양주석 위원장의 국회 앞 단식농성이 8일째로 접어들던 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추위가 찾아왔다. 대표적인 특수고용 직군인 대리운전노동자를 대표하여 노조필증 발급과 노동3권 쟁취를 목표로 시작한 농성은 18일간 계속됐다. 추위와 세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며 투쟁하던 양 위원장은 급기야 쓰러져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그가 바랐던 건 단 하루라도 공식적인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이었으리라. 그런 그에게 노동부는 “아직까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당신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솔직한 말 대신 “두 노조가 조직대상 등에 있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애매한 답변으로 노조 조직변경 신청을 우롱했다. 


1.대리기사.jpg

2017년 10월 국회 앞,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설립필증 쟁취 및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대표자 단식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


투명인간과 자동차


나는 서초동에 있는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에서 일하는 상근활동가다. 이동노동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1년 3개월째 대리운전을 병행하고 있다.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느낀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운전을 하는 내내 소변이 급했다. 술에 취한 고객에게 차를 잠깐 세우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아파트 주차장에 고객을 내려주고 급하게 가까이 있는 지하철 공용 화장실을 찾았다. 새벽 2시, 지하철 화장실은 의외로 대부분 잠겨있었고 급하게 뛰어 들어간 상가빌딩 화장실 문은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다. 결국 본의 아니게 공사장 한쪽 구석에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문제는 민망함이 아니다. 대리운전노동자가 평소 받는 대우는 화장실이 없어 노상에 방뇨를 해야 하는 민망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든다. 


대리운전 이용자들은 대리기사를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마치 자율주행 차량에 탑승한 것처럼 뒷자리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거나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일은 일상이다. 투명인간 취급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어떨 때는 자동차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기도 한다. 요즘 지하 주차장은 3, 4층이 기본이다. 밤늦게 주차를 하다보면 자리가 없어 3층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많다. 불평 없이 주차를 하고 키를 넘겨주면 차주는 아무 말 없이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진다. 남겨진 나는 차를 타고 내려온 길을 거슬러 한참을 헤맨 후에야 입구를 찾아 나올 수 있다. 들어올 땐 사람이었으나 나갈 땐 차량 취급을 받는 것이다. 가끔 차주에게 엘리베이터에 같이 탈 수 없냐고 물어보면 차량이 내려온 오르막길을 가리키며 “저~리로 가시면 돼요”라고 하거나, 못 들은 척 빠른 걸음으로 유유히 사라지기도 한다. 이뿐이랴. 선배 기사님들께 여쭤보면 반말과 폭언, 폭행 경험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갑질 백화점


대리운전을 하려면 대리운전업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업체와의 계약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이다. 심지어 계약서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는 노동자면서도 법적으로는 사장님인 특수고용노동자를 대하는 업체의 태도는 어떨까. 물론 친절한 직원도 있긴 하다. 하지만 콜센터 직원이 대리기사를 대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멸시다. 대리운전‘이나’ 하는 사람이라 여기고 대놓고 무시한다. 간혹 콜센터 직원이 도착지를 잘못 입력해서 손해를 봐 민원을 제기하면 사과는 커녕 막말과 욕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사자들만 아는 용어이기도 한 ‘락(lock)’을 걸어 한 시간씩 일을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등급을 떨어뜨려 밥줄을 끊어놓기도 한다. 또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다음 날 좋은 ‘콜’을 잡지 못하게 하는 제도도 있는데 일명 ‘숙제’로 불린다. 평소 ‘숙제’를 통해 기사에게 업무를 강요하지만 고객이 대리운전 비용을 내지 않아 시비가 생기면 돈을 받아내는 일은 고스란히 기사의 몫이다. 업체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대리운전업체의 갑질과 편법, 위법 행위를 여기에 기술하려면 수십 페이지를 할애해도 모자를 것이다. 결국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시장에서 대리운전노동자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만성적인 불이익과 위협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오아시스


대리운전노동자에게 희소식도 있었다. 2016년 3월 18일 서울시가 대리운전 노동자, 퀵서비스 기사 등 이른바 이동노동자를 위해 쉼터를 만들었다. 서초동에 들어선 쉼터 1호점은 주로 대리운전노동자들이 이용한다. 이곳에서 기사님들은 대리운전업체의 갑질과 진상고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동료 기사들에게 털어놓는다. 한참 욕을 하고 함께 흥분하고 나면 화가 조금 풀리시는 듯하다.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된 쉼터에서는 다양한 모임과 상담,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시를 떠나 인문학 강의를 듣고 단풍 구경도 겸하는 인문학 산책은 인기가 좋다. 무료 법률 상담은 이동노동자의 편에서 변론을 도와주기도 한다. 금융복지 상담을 통해 파산이나 면책을 진행하는 기사님, 주거복지 상담을 통해 주거비용을 대출받아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의욕을 찾아가는 기사님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그러나 쉼터에서 지원하는 복지서비스는 여러모로 대리운전노동자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특히 대리운전노동자의 노동 여건은 전보나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법과 제도의 부재 속에 대리운전노동자는 주취폭력, 폭언, 산재, 자동차 보험사기 등 각종 위험에 방치되어 있다. 그나마 있는 대리운전보험은 리베이트와 허위 등록을 포함해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선 일반 운전자 보험에 비해 보장성은 낮지만 보험료는 높은 보험을 어쩔 수 없이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뿐인가. 직업으로 운전을 하는 대리운전노동자에게 연 3회 사고 시 보험 연장을 안 해주는 대리운전 단체보험의 변칙 운영은 죄 없는 노동자의 밥줄을 끊어놓는다. 


다시, 국회 앞


이제 다시 양주석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의 단식농성장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료 대리운전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에게 추위와 배고픔, 비바람쯤은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뒤에 있는 15만 대리운전노동자의 생존과 존엄, 안전이 그의 어깨에 있기에 의연함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대리운전노동자들이 더 이상 조롱받지 않고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한겨울 추위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정부는 이들의 노력 앞에 어설픈 법리를 내세웠다. 정규직에서 간접고용노동자로 또 특수고용노동자로 고용 관계를 바꿔온 자본가들의 책임 회피와 비용 절감의 역사를 뻔히 알면서도 소위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노동부의 입장이 이처럼 무책임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뉴스를 통해 노조 전환 신청 반려 소식을 접한 대리운전노동자들의 마음은 한겨울 아스팔트처럼 공허했을 것이다. 지금은 고객과 콜센터로부터 조롱과 천대를 받지만 우리도 언젠가 당당한 노동자로서 제도권의 보호를 받으며 일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졌던 그들에게, 마땅히 책임 있어야 할 정치권과 정부마저 쌩하니 얼굴을 돌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고객과 콜센터의 조롱과 무시, 폭력에 상처 입은 대리운전노동자들이 국가의 무관심과 방조를 다시 한 번 경험해야 하는 상황은 세월호에 남겨졌던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던 선원들과, 그저 언론을 통제하고 덮으려고만 했던 당시 정부의 행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인격과 삶이 무너지고 온갖 불법과 비리로 가라앉는 대리운전 노동 현실을 외면한 채 그저 현실을 덮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제도권의 습성은 태블릿PC로 드러난 이전 정권의 그것과도 꽤 많이 닮아 있다. 


“존엄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인간을 도구나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노동 현실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 그 노동자가 내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현실을 매일 마주하는 우리가 제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일지 모른다. 조롱받지 않을 권리,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 대등하게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어느 분야에나 보장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대리운전노동자에겐 그럴 권리조차 없다. 교묘한 자본가의 술책을 탓하기보단 방임하는 국회와 정부, 무관심한 시민에게 호소하고 싶다. “대리운전노동자에게 조롱받지 않고 살 권리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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