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 나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by 센터 posted Ja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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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영(가명) 교무행정사



작년 12월, 학교 교무행정사 면접을 앞두고 가장 큰 걱정은 (나이를 보면) 당연히 물어볼 결혼과 아이에 대한 계획에 대한 것이었다. 결혼은 2월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학교가 방학이니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 계획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일단 당분간은 아이 계획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마음먹고 교무실을 찾아갔다.


면접을 본 선생님은 세 분이었는데, 그중 여자 선생님(알고 보니 교감 선생님)이 역시나 그 질문을 했다. 

“결혼하고 아이 바로 생기면 어떻게 해?!”

이건 질문이 아니라 아이가 바로 생기면 곤란하다는 말투였다. 다행히 옆에 있던 선생님들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죠. 미리 그런 걱정을 하세요”라고 말해주어서 면접은 더 곤란함을 겪지 않았고, 그날 오후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고등학교 교무행정사의 주 업무는(학교마다 다를 것이다) ‘방과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이다. 선생님들에게 계획서를 요청해 받고, 학생들이 신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온오프라인 신청 및 취소를 받고, 수강료·강사료를 계산해 각 교실에 돌아다니면서 부착하고, 교실 공지하고, 행정실과 소통해 CMS 인출을 요청하고 결재를 올린다. 이런 주 업무 외에도 해야 할 일은 늘 끊이지 않는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중요하다더니 상장도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상장 출력 요청도 자주 있고, 점심 식당 지도 순서를 짜고 아침마다 선생님들을 점검하고, 매일 오는 우편물을 분류해 행정실, 교장실은 물론 선생님들 각 자리마다 올려놓고, 교무실에 A4와 분필이 떨어지지 않도록 체크하고 갖다 놓는다. 수능을 앞두고는 재수생들 수능 원서 접수를 받거나 모의고사 감독을 보기도 했다. 교재나 방과후학교 지원 받는 학생을 챙기는 일도 담당한다. 어쩌다 해야 할 일이 없는 날엔 희한하게도 선생님들의 부탁이나 가정통신문 복사 및 문서철 요청 등을 받게 돼 해야 할 일은 꾸준히 생겼다. 교무실에 오는 과일이나 간식 등을 나눠주고 세팅하는 일도 당연히 내 몫이었다. 


그래도 예전 다른 곳에서 일했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이곳은 괜찮은 직장이었다. 지역 신문사에서 일했을 땐 취재처를 돌아다녀야 하는 어려움보다 어쩌다 회식을 하는 날엔 쉽게 집에 간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더 힘들었다. 집까지 2시간이나 걸리는데도 택시비를 준다며 2차, 3차까지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분위기라도 즐겁고 좋았다면 모를까, 술이 들어갈수록 목소리만 커져가는 술자리에서 여자인 나도 같이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야 하는 술자리는 야근보다도 더 곤혹스러웠다. 방송국 SNS 일을 했을 땐 매일 아침마다 부장회의에 팔로워 수, 리트윗 수를 보고해 타 방송국보다 기사를 빨리 올리고 있는지, 팔로워 수는 앞서가고 있는지를 압박 받았다. 사회단체에서 사무국 일을 하게 되었을 땐 매달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게 안정적이지 않아 월급날이 가까워오면 늘 긴장하고 걱정이 앞섰다. 


학교는 1년 달력에 적혀 있는 일정이 거의 그대로 진행되며,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되는 일도 거의 없고 월급까지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좋은 직장’이었다. 물론 학교마다 분위기가 워낙 달라서, 어느 학교에선 교무행정사의 책상을 뒤져 필요한 물품을 가져가거나 간식까지 말도 없이 가져가 먹는 이해 못할 일도 있다고 하고, 연차를 원할 때 쓰는 것도 눈치를 봐야한다고 하니 늘 그래왔듯 ‘더 안 좋은 상황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는 월급이 적긴 하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건 삶의 ‘안정’이었다. 내가 몇 시에 퇴근하는지 알 수 있고,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는 것만으로 학교는 괜찮은 직장이었다. 그래서 내년 2월에 재계약이 될 수 있도록 1년 열심히 일해야겠다, 무엇보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좋은 평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3.여성.jpg

임신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해고 0순위.


차가운 바람이 사그라들고 벚꽃이 거리마다 흐드러지던 4월 어느 날, 아기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확인을 하고 나오며 아기가 생겼다는 기쁨보다도 마음은 복잡했고, 머릿속은 갖은 걱정들로 가득했다. 

‘12월에 출산을 하면 2월 재계약은 어렵겠구나. 출산까지가 아니라 빨리 그만두라며 눈치를 주면 어쩌나. 임산부라고 선생님들이 불편해하면 어쩌지.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임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면접 때 그 교감선생님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출산 휴가는 가능한 걸까. 육아 휴직은 어렵겠지. 언제까지 버텨야 실업급여가 가능할까.’


예전에 뉴스기사에서 회사에 임신 소식을 알리자 ‘축하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못 들었다던 임산부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이게 당장 내 문제로 왔음을 실감했다.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난임과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요즘,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가진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하지만 역시 마주해야 할 현실은 기쁨과 행복보다 걱정과 불안이었다. 


5, 6월엔 입덧이 있어 어지럽기도 했고 속도 자주 안 좋았지만 임신했다고 조퇴나 병가 낸다는 말을 듣기 싫어 참고 참다가 조퇴를 딱 한 번 썼다. 속이 너무 안 좋을 때도 선생님들에게 몸이 안 좋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아무도 없을 때만 화장실을 찾았다. 예전에 임산부들의 고충을 담은 기사를 접할 때나 친구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이야기했을 때 ‘당당하게 이야기하라’며 큰소리치던 나도 내 직장에선 영락없이 을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입덧이 좀 괜찮아지고는 몸도 좀 나아져서 일은 계속 할 수 있었고 일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큰 문제없이 다닐 수 있었다. 무거운 걸 들 일이 생기면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먹을 걸 챙겨다 주시는 분들도 있었으니. 하지만 눈치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했던가. 임신이 아니었으면 저런 일도 내가 해야 할 텐데 임신이라 못한다고 생각하겠구나, 다음에 사람 뽑을 땐 당장 임신 안 하는 사람을 찾겠구나 등 괜한 미안함과 눈치에 부담을 가져야했다. 


출산 휴가는 석 달. 주변 대부분 친구, 언니들은 최대한 출산 후 기간을 더 보장하기 위해 다닐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다니다 출산 휴가를 썼다. 그리고 안정되게 육아 휴직을 보장받을 수 없는 많은 엄마들이 출산 휴가가 끝나자마자 (아이 100일도 전에) 직장으로 돌아온다. ‘힘들 텐데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벌써 출산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출산 휴가를 써야할 때가 되었다. 학교 분위기가 출산 휴가를 눈치 주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재계약이었다. 이제 출산 휴가를 써야겠다고 이야기하면서 2월에 복귀할 수 있다는 내 의지와 의사를 드러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나 “그동안 열심히 해왔으니 재계약 해야죠.”, “아이 낳고 바로 괜찮겠어요? 다시 온다면 우리야 좋죠”라는 대답을 조금이라도 기대하면서.


교감 선생님께 어렵게 출산 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11월 00일부터 출산 휴가를 썼으면 해서요.”

“아. 예정일이 언제였죠? 일단 알겠어요.”

“출산 휴가가 2월 중반이면 끝나는데요. 그때 복귀할 수 있는데 혹시 2월 재계약은 어떻게···.”

“아마 어렵겠죠? 교장 선생님과 상의해볼게요.” 

말 꺼내자마자 ‘당연히’ 어려울 거라는 대답을 들으니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건 순진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날 신랑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당장 그만두는 건 아니었지만 해고라도 된 것처럼 서러웠고 허무했다. 일을 못해서,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이 때문에’라고 생각하니 상황도 속상했고, 억울했다. 


얼마 전 노동조합 간부 언니가 (나는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이다) 내가 재계약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런 문제 때문에 1년, 2년 계약직들이 다 아이 갖는 걸 미루게 된다”며 (내 의지가 있다면) “노조에서도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큰 문제가 없다면 대부분 1년은 더 연장되는데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를 당하면서 아무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좌절시켰던 건 ‘나 같아도 연장 안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던 주변의 반응이었다. 나를 지지해주고 상황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문제제기라도 해볼 마음을 가질 텐데, ‘그래, 애 낳았다고 재계약 안 해주는 건 너무하지.’, ‘애 낳고 복귀하겠다는데 왜 재계약을 안 해주겠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상황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당장 부딪혀야 할 벽은 학교만이 아니라 이런 문제가 당연시 되는 현실임을 새삼 깨달았다. 학교가 법을 어겼거나 출산 휴가 도중에 계약 해지 통보를 하는 등의 부당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사측의 입장에서는 생각해도,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현실. 당장 재계약이 안 되는 문제보다도 서러운 건 그것이었다. 


여성에겐 노동 시장 초기 진입이 중요하단 말을 들은 적 있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으로 진입하면 출산을 해도 안정되게 돌아갈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임신,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잃어야 하고, 아이를 키우다 새로 구하게 되는 직장은 내가 공부했고 일해 왔던 곳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곳이 많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경력 단절’ 문제다. 4,50대 여성들이 서비스업 취업률이 높다는 것이 이를 보여주지 않는가. 


임신 사실을 알고 관련된 책을 사러 대형 서점에 갔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던 《82년생 김지영》 책만 사들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나도 82년생이어서 그랬을까, 나에게 곧 닥칠 고민들이어서 그랬을까,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그날이 떠올랐다.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 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p.146


출산을 한 달여 앞두고 곧 아기를 볼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요즘, 나도 ‘경력 단절’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아이를 좀 키우다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할 텐데 재취업은 쉽게 될까, 그땐 또 면접에선 뭐라고 해야 할까, 둘째 계획은 또 없다고 말해야 하나.

나도 임신-출산 기간을 거치며 많은 곳에서 임신을 두려워하는 김지영들,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게 걱정인 김지영들, 출산과 함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김지영들, 그리고 경력 단절을 두려워하는 김지영들에게 “그래도 힘내자”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힘낼 것이 아니라, 눈치 보고 걱정하고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될 세상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아이를 가질, 혹은 아이를 가진 여성을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측 입장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봐주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게 오히려 희망적이지 않을지. 


아, 마지막으로 얼마 전 내가 다닌 학교에서도 지진 대피 훈련이 있었다. 실제를 가상한 훈련이라며 전 학년이 반별 정해진 순서대로 운동장으로 피신했고, 교무실은 물론 행정실 전 직원도 운동장으로 모이는 훈련이었다. 그날 나에게 맡겨진 것은 비어있는 교무실에 남아 혹시 모를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훈련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진짜 지진나면 나만 죽는 거 아니냐”며 웃고 말았지만 얼마 전 진짜 지진이 났을 때 학교 비정규직 홀로 교무실에 남았다는 기사를 보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에는 생명과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고 아이를 가져도 축복받지 못하는 의미도 포함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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