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의 쳇바퀴는 언제 멈출 수 있을까

by 센터 posted Ja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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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지난 30년간 사교육비는 증가일로에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1인당 사교육비가 한해 천 원, 이천 원 정도 줄었던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박근혜 정부에서 한꺼번에 4천 원이 올라버려서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선 상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교육비 잡는 것과 부동산 가격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들 말한다. 특히 사교육비에 대해서는 백약이 무효이니 어떤 대책도 소용없다는 낭패감에 젖거나, 그와 정반대로 전두환 정권 시절 과외 금지했을 때와 같이 사교육 전면 금지를 해야 한다는 양 극단의 생각만이 주로 자리한다. 그러나 과잉 사교육, 과잉 학습 노동 때문에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세계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언제까지 무감각하게 바라만 볼 것인가. 


‘입시 고통으로 죽어가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는 세상,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단 1만 원도 쓰지 않는 세상’을 단체의 비전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이번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핵심적 정책을 공약으로 요구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부분 수용했다. 이를테면, 유아 시기부터 과도한 학습 사교육에 노출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동인권법 제정,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된 고교입시 방지를 위한 외고·자사고 등 특권학교들의 일반고 전환, 수능 절대평가제 도입,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및 국립대 공동선발·공동학위제 도입, 채용 때 학력과 학벌로 차별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학력학벌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공약화했다. 얼마나 목적과 취지에 맞게 내용을 충실하게 만들 것인가가 관건이긴 하지만 명목상으로라도 공약으로 받은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일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학원에 대한 직접 규제이다. 앞에 나열한 많은 사교육 경감을 위한 제도와 정책, 또 법률 제정은 그 제도를 마련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제도가 현실에 작동하고 실효를 거두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 과중한 사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도 즉각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구했던 것이 학원의 심야 영업시간의 단축 조치, 2주 7일 중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학원을 가지 않게 하는 학원휴일휴무제 도입, 그리고 학원에서의 선행교육 금지였다. 그런데 학원에 대한 이 세 가지 직접 규제 중 그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사교육 기관 종사자가 대략 50만 명은 된다 하고, 그 가족까지 하면 200만 정도 될 것이니 그 세력만 결집해도 대선 당락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학원휴일휴무제기자회견.JPG

2017년 11월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열린 ‘학원휴일휴무제 및 심야영업단축 촉구 청와대 청원운동’ 기자회견(@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2014년 통칭 ‘선행교육규제법’이 통과되었을 때에도 학교 안에서 행해지는 선행교육 금지만 포함되고, 사교육기관의 선행교육을 금지하는 조항은 삭제되어 통과되었다. 2년 넘게 다시 이 조항을 살리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학원휴일휴무제 입법화를 위해 여러 의원들을 섭외하고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어떤 의원도 총대를 매려 하지 않는다.


그럼 학생들과 지근거리에 있는 교육감들은 좀 나은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학원의 심야 영업시간 단축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려다가 학원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시·도 조례로 제정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17개 시·도 중 밤 10시까지 제한하고 있는 지역은 달랑 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9곳은 밤 12시까지, 3곳은 밤 11시다. 교육감은 조례 발의권이 있다. 교육감 권한으로 얼마든지 심야교습시간을 더 앞당길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도 조례 발의를 하지 않는다. 진보 교육감들을 자처하는 곳이 13곳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밤 11시, 12시 현행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곳이 적지 않다. 3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 세월호’와 같은 대한민국의 처참한 현실에서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진보 교육감들의 공동선언에 부모들은 표를 준 것이다. 이렇게 밤 12시까지 학원 등불 아래 신음하는 아이들을 방치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교육감들이 나서기 어려우면 정부와 국회에 학원휴일휴무제 입법을 교육감협의회 차원에서 촉구하라고도 요구했다. 그마저도 안 하고, 초등학생의 학원일요휴무제 입법을 촉구한다고 하였다. 일요일에 학원 다니는 초등학생은 서울의 경우 0.8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초등학생이 웃을 일이다. 학원업계의 이익을 건드리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발언조차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문재인 정부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주 52시간 이상을 넘어선 근무를 금지한다고 한다. 어른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때 정작 아이들은 함께하지 못한다. ‘월화수목금금금’ 쉼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정치인도 교육감도 장관도 거들떠도 안 본다. 선거권이 없으니 무시하는 것인가.   


얼마 전 연예인이 키우던 개에 물려 한 이웃이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이 일어나자마자 국회에서는 반려동물 관련법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법 개정 발의가 봇물을 이뤘다. 응당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입시 경쟁과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이 한 해 수십 명이 발생해도 ‘입시경쟁방지법’과 같은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국회의원 한명이 없는 대한민국이다. OECD 과로사 판정 기준이 주 60시간을 3주간 지속할 때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주당 평균 70시간(일반고 2학년), 80시간(특목고 2학년)을 연중으로 계속한다. 이미 생존의 경계를 넘어서서 살고 있지만 이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멈추어야 한다는 책임 있는 정치인, 교육감이 없다.


이렇게 학생을 학대하는 나라에서 학생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신기하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4·19혁명 대열에 나섰다는 기록을 보면 진작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어야 하는데, 유아 시기부터 사교육으로 맴돌다 보니 기력도 권리의식도 잃은 게 분명하다. 


민주정부 들어서 사회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변화의 바람은 언제 불 것인가. 내년 6월엔 또 다시 교육감 선거를 치른다. 진보를 자처한 온갖 후보들이 난립하며 학생을 위해 몸을 바치겠노라 외칠 것이다. 아니,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쉬게 하자는 학원휴일휴무제, 밤 10시까지 만이라도 학원 영업시간을 제한하자는 시민들의 제안에 눈도 꿈쩍 하지 않은 현 교육감들도 저마다 내가 제일 잘했느니, 적임자니 하면서 나설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익 집단의 표만 의식해 행동하는 정치인과 교육감에 구걸하지 말자. 우리 부모가, 시민이 아이들에게 학원휴일휴무제, 심야 영업시간 단축, 학원의 선행교육 금지 조치를 만들어 선물하자. 어떻게? 우리 부모들, 시민들도 학원업계 못지않게 단결된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시민이 일으키는 바람이 없는 한 결코 세상은 바뀌지 않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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