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과지몽碩果之夢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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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자신이 ‘낳을 수 있는’ 여성이라서 좋았다. 임신 중이었을 때, 뱃속의 생명체가 무척이나 신비스럽고 귀하게 다가와서 충만감에 젖어 지냈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과 산길을 오가며 뱃속 아가에게 부지런히 말을 걸었다. 나무와 꽃의 이름이며 새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먹이를 주걱 같이 생긴 부리로 저어가며 찾아 먹는다고 해서 저어새라 부르고, 왝!왝! 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왜가리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느꼈다, 어릴 적 고향의 들판과 산길을 오가며 보곤 했던 애기똥풀의 노오란 진액과 아기의 묽은 똥 빛깔이 닮아 있음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0대 때 사천으로 이사한 후, 진주에서 대학을 다녔다. 함께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던 선배랑 서른 즈음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둘째가 세 살 무렵 이혼을 했다. 이듬해, 지인으로부터 환경단체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먹을거리며 환경·생태문제에 대한 관심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던 때였다. 활동을 시작하면서 고향에서의   ‘자연과 자연스러웠던’ 어린 시절이 더 자주 떠올랐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과 마음에 들어와 ‘꽂혔다’. 뭇 존재의 수런거림이 더 가까이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즈음 사천강에서 제방을 쌓고 어로를 만들고 자전거 길을 닦고 보를 만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습 침수지역에 자전거 도로와 구조물을 설치하므로 홍수 시 범람 위험이 크고 강 하류에 위치한 사천만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강에 사는 수달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공사였다. 공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보호한답시고 사천시에서 인공 보금자리로 조성한 돌무더기에서가 아니라 강 바윗돌에서 생선가시 섞인 수달의 배설물을 발견하면서 공사는 중단되었다.


여러 가지 환경·생태 관련한 일을 해나가다가 인연이 닿게 된 전남 보성으로 이사 와서 살게 된 건 2년 전부터다. 예전처럼 환경단체 상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그녀가 예의 주시하고 있는 환경 관련 정치적·사회적 이슈는 역시 ‘탈핵’이다. 지난 6월에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가 폐쇄된 후 신고리 5·6호기 건설 작업이 일단 중지된 상황에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건설 백지화 여부를 정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되어 지난 7월 말경부터 활동 중이고, 10월 말이면 결정이 난다. 올해 들어 한 달에 한두 번씩 초등학교나 중학교로 탈핵·대안에너지 수업을 하러 다니고 있는데, 핵발전소 문제가 이전에 비해 더 회자되는 만큼 성장기 아이들에게 탈핵의 중요성과 불가피성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수업은 방사능 확산 시뮬레이션 자료, 핵폭발 사고 지역 실태(파악) 자료, 대안에너지에 관한 동영상 자료 등으로 한다. 대책 없이 지어대는 핵발전소가 어떻게 해서 문젯거리가 되는지, 핵 개발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를 비롯하여 풍력이며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가 인류에게 한결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건강한 에너지임을 알리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핵발전소가 없어야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아이들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탈핵과 반핵이 왜 ‘윤리’의 문제인지에 관해 설명한다. 


1986년에 일어난 구 소련 체르노빌 핵폭발 사고며 2011년에 일어났던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를 통해 면적 대비 세계 최대 핵발전소 보유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고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처리 비용을 넘어서서 심지어 ‘온전한’ 처리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핵폐기물을 ‘누가, 도대체 왜’ 떠안아야 하는지, 뒤처리를 후세대에 떠넘기는 것이 얼마나 비윤리적인 일인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핵발전소는 짓지 않는 것이 최선임을 강조한다. 이어서 지구상의 하고많은 생명체가 햇볕과 바람과 물의 힘으로 삶을 이어가므로 풍력과 태양광·태양열과 풍력 발전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얻는 방식이라는 것과, 50년쯤 후엔 석탄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며 우라늄도 결국 고갈될 것이지만 태양이며 바람이 사라질 일은 없다는 점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아이들이 알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서 “아, 그렇구나!”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수업의 목표라면 목표다.  


그녀가 보기에 사실 핵 개발과, 이에 따르게 마련인 핵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폭은 현재의 문제인 동시에 미래의 문제다. 또한 핵 발전이 자본 권력과 정치권력의 협잡에 의해 진행 중이므로, 여기에 우리들 삶의 생태 환경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문제 즉 ‘계급의 문제’가 걸려 있기도 하다.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해 가며 인류를 비롯한 뭇 생명체의 미래까지를 볼모로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가려는 지배 권력의 뻔뻔한 민낯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계급투쟁-시민운동-환경·생태 운동-탈핵·반전 운동이 함께 가야 한다고 느낀다. 탈핵을 얘기하면서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좇아 일어나는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녀의 닉네임은 석과碩果다. 《주역》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씨과일·큰과일은 먹지 않는다)’에서 따온 말이다. 석과지몽은 그러니까 ‘석과’라는 희망의 이름으로 사는 그녀가 꾸는 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핵무기 개발이나 핵발전소 산업 같은 각종 위험한 핵 개발 산업으로 지탱되는 자본주의적 질서를 거스르며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느슨한’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빌려서 살고 있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터를 확보하여 작년부터 집도 짓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예전에 농촌 마을공동체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을 현재에 맞게 되살려내며 살아가고 싶다. 두레를 조직하여 서로의 농사일을 거들고, 장 담그기 좋은 날에 맞춰 장을 담그거나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김장을 하고, 단오며 유두며 정월대보름 같은 명절에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춤추고 노래하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는데 있어 크게 문제될 일도 고민할 일도 별반 없었다. 가난하지만 정을 나누며 자연스럽고 건강하게들 살아갔다. 그녀는 이러한 기억이며 절기와 세시풍속의 맛과 멋이 빠른 속도로 잊히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더욱 “누구나 와서 자연농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절기 음식도 함께 해먹고, 공동육아를 하며 살 수 있는” 자그마한 마을을 일구고 싶은 것이다.


당장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문제와 관련해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여론’이 우려스럽고, 여전히 지구 생태계를 망가뜨리며 자본주의라는 문제투성이 체제가 득세 중인 듯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꿈을 꾸는 사람이다. 인간·인류에 대해, 미래에 관해 많은 이가 이제는 좀체 쉽게는 품지 못하게 된 이상理想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부럽다고 느낀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체념과 비관과 회의를 떠난 인간. 행복이라는 주관적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시대에 자신의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나가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키워가고 있는 그 꿈의 온기가 전해져서 얘기를 듣는 내내 따스했다. 그녀 같은 이들이 더 많아지면 핵발전소도 핵전쟁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고 해야 하나···. ‘인간이란 종이 그려내는 인류의 미래를 두고 비관도 낙관도 하지 말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변화시켜 가기 위해 더 힘을 내자’라며 새삼스레 자신을 다독이게 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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