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없는 교사의 꿈_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대표 박혜성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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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과 맞물려 학교에 몸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기간제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임용고사 준비생들, 사대생, 정규직 교사들의 반발도 심각했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다. 하지만 수차례 열린 교육부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결과는 그이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는 광화문 서울정부청사 앞에 자그마한 천막 농성장을 설치했고, 박혜성 대표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박 대표는 온힘을 쏟았던 학교생활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그마한 체구로 감내하고 있다.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기간제라는 이유 하나로 ‘온전한’ 선생님이 되지 못한 그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정리 : 문정희 쉼표하나 6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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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했던 애국소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예회에서  ‘시집가는 날’을 했어요. 어디서 대본을 본 것도 아니고, 명절을 앞두고 항상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해줬거든요. 마음씨 고운 착한 여자를 찾는 과정이 인상적이어서 친구들이랑 함께 공연했어요. 그날이 계기가 돼서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또 기자도 멋있어 보였어요.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는 기사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교사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고요. 


어렸을 때부터 〈조선일보〉를 열심히 봤어요. 70년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매일 국민교육헌장도 외우고, 애국심이 강했죠. 모범생이기도 했고요. 아버지는 〈한겨레신문>이 창간될 때 주주였어요. 〈한겨레신문〉을 보며 생각이 조금 트이기는 했지만, 82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서 친구들이 데모할 때도 저는 함께하진 않았어요. 숨어서 지켜보거나 ‘쟤네들은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을 했죠. 1학년 때 운동권 선배가 접근을 해오기도 했어요. 선배들이 술집에 데리고 가서 얘기도 해주고 노래도 부르고 했는데 그때 들은 노래가 ‘짤린 손가락’이었어요. 가사가 너무 무섭더라고요. ‘빨갱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가까이 하지 않았죠. 제가 주입식 반공교육의 전형적인 결과물이죠. 80년대 학번을 386세대라고 하잖아요. 그 386세대의 특징이 저한텐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실 마흔 살이 돼서야 그동안 살았던 삶에 대해 ‘아~ 이게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 거죠. 그 후로 늘 부채감과 부끄러움으로 살았습니다. 


교사가 되고픈 꿈을 꾸다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사범대학이 아니라서 교직 과정을 이수해야 했죠. 그런데 1학년 때 성적으로 교직 과정 이수자를 결정하는데 저는 탈락됐어요. 그래서 교사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고요. 고민이 많았어요. 일단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좌절감이 컸어요. 학교를 그만둘지, 재수를 해서 교대나 사대를 갈지, 아니면 계속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직업을 찾을지 고민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재수할 생각은 할 수 없었고, 결국 고통스러운 대학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죠. 


공무원 시험도 보고 나름 노력은 했지만 취업은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 팬시 가게에서 알바도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거의 일 년 반을 보냈어요. 그러다 카메라 만드는 중소기업에 들어갔어요. 5년을 일했는데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결국 학습지 교사를 시작했죠. 3년 정도 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교사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다 배우는데 아이들은 왜 이런 것도 모를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나는 잘 가르칠 수 있을 거란 오만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학습지 교사를 그만두고 교육대학원에 들어갔죠.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용고시를 봤는데 떨어졌어요. 그 후 본격적으로 다른친구들과 스터디 만들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또 떨어졌죠. 경쟁률이 높았어요. 그때도 0.001점으로 떨어진다는 말들이 있었어요. 밥 먹고 공부만 했고, 이번에는 붙는다는 자신이 있었는데도 떨어지니까 엄청나게 충격을 받고 방황을 했어요.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돈을 벌어야 되니까 초등학교 방과 후 논술강사를 한 3년 했고, 다시 기간제 교사를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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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난 8월 26일 집회를 열었다.(@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기간제 교사의 길로 들어서다


1997년 3월부터 9개월 정도 경기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했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학생들이 밤 10시까지 남아 야간 자율학습할 때 저도 남아서 매일 수업 준비를 했어요. 비평준화 지역인데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였어요. 수업시간에 흐트러지는 아이들이 없어요. “너 조용히 해”, “왜 그래” 이런 말이 필요 없는 학교였죠. 아이들이랑 호흡이 딱딱 맞았어요. 제가 수업을 하다가 농담을 하면 애들이 깔깔 웃다가도 제가 이제 그만하라는 뜻으로 손을 드니까 일시에 웃음이 쫙 멈췄어요. 저와 아이들 모두 순간 깜짝 놀랐죠. 아이들이 모두 제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학생들과 정말 호흡이 잘 맞았어요. 


학생들은 내가 기간제 교사인지 전혀 몰랐고, 그런 개념도 없었어요. 선생님이 오면 ‘다른 선생님이랑 다르다’ 라는 생각을할 수 없었던 시기죠. 그때 기간제 교사 제도가 처음 생겼던 시기였어요. 모집하는 인원도 많지 않았죠. 처음에 계약 내용을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방학을 제외한 계약이었어요. 휴직한 선생님 일정 때문에 1년도 아니고 3월 24일부터 12월 26일 방학식까지 근무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라 방학 때 보충수업을 했죠. 오전에 4시간 보충수업하고, 학교에 남아 교과 연구를 했어요. 보충수업 4시간 급여는 받았지요. 그런데 그 다음해 2월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여름방학은 계약기간에 해당하지 않으니 월급을 토해내라는 거예요. 참 황당한 일이죠. 그런데 지금도 방학을 제외한 쪼개기 계약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에요. 이게 기간제 교사들의 고용 불안을 부추기고 있거든요.


그 후에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논술 강사를 했는데 전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임용고시를 봐야 하는데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임용시험 공부하는 게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 산골마을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캐나다 선생님이 나오는 방송을 봤어요. 한 달마다 다른 학교를 다니면서 수업을 하는데 엄청 행복해보이더라고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정교사가 아니어도 아이들과 만나 수업하는 것은 행복하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기간제 교사를 하게 됐죠. 


경기도에 있는 한 공립 중학교에 1년 계약으로 들어갔어요. 원래 2년으로 구두 계약을 했는데 계약서는 1년 단위로 썼던 거죠. 당시 NEIS 문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선생님들이 투쟁하던 때에요. 전체 교사들이 모여 NEIS 전환 찬반 토론회를 했어요. 저랑 친하게 지내던선생님들이 모두 전교조 선생님인데 그분들이 저에게 NEIS 도입 반대 발언을 부탁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자료조사해서 발표를 했죠. 그때 교장 선생님께 찍혔나봐요. 저도, 전교조 선생님들도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기간제 교사라는 저의 신분을 인식하지 못했던 거죠.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갑자기 제 이름을 크게 부르며 계약기간이 만료됐으니 새로운 기간제를 뽑겠다고 하는 거예요. 전교조 선생님들이 같이 싸워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하고 서울로 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좀 싸웠다면 제가 기간제 교사 차별에 대한 인식을 더 빨리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싸우지 않은 게 좀 후회되기도 합니다.


기간제 교사라는 편견을 갖게 하지 않으려고 매일 야근하다시피 하고 수업 준비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연구수업도 했어요. 표준 수업시간이 20시간인데도 누군가 한두 시간의 수업을 더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기간제 교사인 제가 하는 경우도있었지요. 한 학교에서 5년차 근무를 할 때 학교에서 22시간 수업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도서관 일도 하고, 다른 업무도 하지만 기간제 교사는 성과급도 못 받는데 왜 수업을 많이 해야 하냐, 기간제 교사가 봉이냐 하며 따졌죠. 그랬더니 교감선생님이 수업을 더 안 하면 다른 기간제를 뽑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수업은 맡겠다고 했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2013년 철도 민영화 파업을 할 때였어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이기도 해서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죠. 아이들과 자료를 모아 토론하고 원하는 사람은 철도 파업 노동자들에게 지지 편지도 쓰는 수업이었어요. 그런데 교육청에 민원이 들어갔어요. 교장·교감 선생님에게 불려갔죠. 진술서를쓰라고 강요하기에 거부했어요. 결국 그다음 해에 그 학교에 있을 수가 없었죠. 공개 채용 등의 절차를 밟았지만 결국은 저와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조치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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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주체로 열린 정규직 전환 촉구 결의 기자회견(@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기간제 교사, 불안해요


학생들도 이젠 기간제 교사에 대해 잘 알아요. 드라마 같은 데에도 많이 다루어졌잖아요. 전에 어떤 아이가 “선생님 왜 그 역사 선생님 안 오세요?”하고 묻는 거예요. “왜?” 하고 되물었더니 “그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좋았는데, 혹시 그 선생님이 기간제 선생님이에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다른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학부모님들이 오셔서 “선생님, 홈페이지에 보니까 국어·과학·수학 기간제 교사를 구한다는 공고가 났대요. 그럼 우리 학교에 국어·수학·과학 선생님이 기간제라고 하는데 어느 분이세요?” 하더군요. 그래서 기간제 선생님들도 다 경력이 있는 분들인데 왜 그런 걸 물으시냐고 했더니 “아니, 그래도 좀 불안해서요”라는 거예요. 


불안감이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 불안은 반은 옳고 반은 틀린 이야기예요. 일단 기간제 교사들도 교사 자격증을 이미 가지고 있고, 학교 현장에서 향상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는 건 억울한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그게 일리가 있는 게 기간제 교사들은 고용이 불안해서 자기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신에게 제한을 두는 거죠. 제가 철도 파업에 관한 수업을 했을 때 민원을 받아서 공격을 당한 것처럼 마음껏 수업을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리고 채용 기간도 중도에 해지될 수도 있거든요. 정교사가 복직을 하는 순간 기간제 교사는 바로 해직되는 시스템으로 되어있고, 늘 고용이 불안하니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가 없죠. 그래서 학부모님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건 일면 타당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기간제 교사를 정교사로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기간제 교사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해서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가르칠 수 있어요. 불안한 마음으로 있는 교사가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겠어요. 저희가 3월부터 11월까지는 정말 신나게 수업을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잠재의식 속에 불안감이 나타나거든요. 그래서 12월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짜증이나 화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생각해보면 계약 만료 기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런 심리가 작용해서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니 기간제 교사들을 정규직화해서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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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련은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지지 서명을 받았다.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차별과 편견에 맞서다


사실 저는 기간제 교사가 그렇게 크게 차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차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어쨌든 정교사는 시험을 보고 들어왔고 우리는 시험을 보지 않고 일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과급 소송을 하면서 ‘아, 이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기간제 교사들이 학교에서 하는 일은 정교사와 한치도 다른 게 없어요. 우리가 기간제 교사가 된 이유는 정부에서 교사를 충분히 임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동일 가치의 업무를 하면서 비정규직이라고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도 교과 수업 외에 담임을 하고, 행정 업무도 처리해요. 정교사가 하는 모든 일을 똑같이 하거나 심지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성과급 투쟁을 하면서 정교사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2009년까지 호봉 승급이 제한되어 있었어요. 2009년에는 14호봉까지 제한되어 있어서 더 안 올라갔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이것은 차별이라며 누군가 진정을 넣었고, 2010년에 인권위에서 시정 권고가 나왔어요. 2010년부터 기간제 교사의 호봉도 풀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호봉은 풀렸지만 호봉 승급 시기는 제한되었어요. 기간제 교사도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라서 급여와 수당이 지급되는 건데 제대로 안되고 있는 거죠. 정교사들은 경력이 12개월이 되면 그 다음해는 1호봉씩 올라가거든요. 그런데 기간제 교사들은 계약서를 쓸 때, 경력에 따른 호봉을 한번 확정하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쭉 가는 거예요. 중간에 12개월이 넘어도 호봉으로 인정해주지 않아요. 제가 10년 11개월 경력이에요. 3월 한 달을 근무하면 11년의 경력을 가지게 되지만, 4월에 11년으로 올려주지 않는다는 거죠. 


학교 회계는 3월에 시작해서 다음해 2월까지예요. 그런데 공무원 사기 진작을 위해 주는 정근수당은 7월과 12월에 줘요. 7월에 주는 건 1월부터 6월까지 일한 몫으로 주는데 A학교에서 1~2월에 근무했고 3월부터 B학교에서 근무했으면 1~2월치 정근수당이 안 나와요. 임용권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 학교에서 근무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2개월분의 정근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에요. 경력은 인정하면서 근무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구조인 거죠.


게다가 교사 자격 연수에서도 제외됐어요. 초중등교육법에는 1정연수라고 해서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3년 이상 교육 경력이 있는 사람은 1급 정교사가 될 수 있는 연수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요. 그런데 교육부가 1정연수 대상은 정교사만 해당한다고 하면서, ‘교사자격검정실무편람’을 만들어서 교사 연수 자격에서 기간제 교사를 제외시켰어요. 지금 소송 중인데 ‘교사자격검정실무편람’이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교육부가 패소했어요. 그런데 교육부는 대법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예요. 1정연수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간제 교사에게 교사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부당한 차별이에요.


전기련 탄생, 정규직화 요구에 힘 쏟다


2012년에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이하전기협)를 중심으로 성과급 집단소송을 할때 1년 정도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어요.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프라인 활동보다는 온라인 활동이 중심이 되었고, 저는 그때 전기협을 나와 전교조에 가입했어요.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운동이 일어나고, 2016년에 전기협 활동을 했던 선생님들이 다시 모이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러면서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이하전기련)를 만들게 됐죠. 


원래 기간제 교사의 고용 안정, 즉 정규직화를 요구하려 했는데 교육공무직 투쟁을 보며 큰 반발이 예상됐어요. 그래서 정규직화 대신 고용안정이라고 표현을 했죠. 사용자는 교육감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쪼개기 계약의 부당함을 알렸어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나온 책자를 보면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대표가 쪼개기 계약을 문제 삼고 있다며 쪼개기 계약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저는 그것도 하나의 성과라고 봐요. 다만, 실행 여부는 학교마다 교장의 의지에 따라 달라요. 어떤 지역은 교육청에서 쪼개기 계약을 하도록 지시하기도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에요.


올해 정권이 바뀌면서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얘기했잖아요. 온라인 카페에서 기간제 교사들이 교육이 가장 큰 공공부문인데 기간제 교사도 정규직화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어요. 정당한 요구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회원들이 많이 늘었어요. 집단 성과급 소송 때는 5,000명 정도였는데 정규직화 전환 이야기가 나오면서 2,500명 정도가 더 늘어났죠. 회원들의 열망을 담아서 7월 19일에 기자회견을 했어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학교 강사들은 제외된다는 얘기가 계속 있었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기자회견이었어요. 그런데 7월 20일 가이드라인에서 실제로 제외되었고, 7월 27일 가이드라인에 제외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도 했어요. 그 후로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 대한 집회와 기자회견을 계속 하고 있어요. 교육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고, 교육부의 기간제 교사 담당자를 만나서 기간제 교사 차별, 정규직화 시정요구를 전달했어요. 그러면서 정규직화 운동을 계속하게 된 거죠. 


저희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건 정교사로 임용하라고 하는 거예요. 세월호 기간제 교사 두 분도 그동안 순직 인정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에 교육공무원이 아니라는 거였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그 두 분은 교육공무원으로 인정을 해주면서 순직을 인정해준 거잖아요. 그런데 다른 기간제 교사들은 여전히 교육공무원이 아니라고 국가는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사실 교육공무원이 맞아요. 왜냐하면 우리도 교육공무원 법에 따라서 교원으로 임용된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계약 기간 동안에는 교육공무원증을 발급해달라고 하면 발급해줘요. 물론 계약 기간이 쓰여 있고, 기간이 끝나면 반납해야 하죠. 


전교조도, 사범대생들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요구에 대해 반대했고, 또 한편에서는 모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어렵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단계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해요. 기간제 교사 중에도 무기계약직화를 요구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이 도입되면서 정교사 구조조정의 한 방안으로 기간제 교사가 양산된 것이고, 교원 수급 정책 실패 때문에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잖아요. 당연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안정된 고용 조건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주장은 정당합니다. 정부는 약속과 다르게 정규직화 제로를 발표하면서 기간제 교사들을 농락한 거죠. 기간제 교사들은 이번에 안되었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자며 서로 다독이고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20년 동안 기간제 교사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한번도 집단의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 처음 스스로 목소리를 냈고, 기간제 교사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죠. 


정부에서 처우 개선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말만 무성하지 실제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해하는 분들도 있어요. 아직 이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정규직화를 요구할 거고 더불어 기간제 교사가 받고 있는 차별을 시정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거예요.


광화문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농성도 하고 있어요. 정규직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우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정규직화와 더불어 쪼개기 계약, 1정연수, 호봉 승급 시기에 제한 두는 부분들에 대해 계속 요구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저희가 정규직화 요구를 하지 않고 처우 개선만 이야기 했어요. 처우 개선은 금방 바꿀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차별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는 거예요. 광주광역시에서 쪼개기 계약을 한 몇몇 학교가 방학을 포함한 재계약을 맺는 성과가 있었어요. 그러나 쪼개기 계약이 근절된 것은 아니에요. 이런 시정이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실현되어 모든 기간제 교사들이 쪼개기 계약을 당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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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교사대회’에서 깃발을 들고 행진한 박혜성 대표


운명처럼 다가온 길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기간제 교사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정규직화가 빨리 되어서저도 정교사로 아이들과 한번 만나고 싶은꿈이 있어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문제를 법적인 근거가 없어서 못해 준다고 하는데, 법을 만들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정규직화 의지를 갖고 있다면 해줄 수 있는 문제고요. 또 기간제 교사들이 투쟁을시작했으니 민주노총 등 노동 단체들이 적극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지지하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전교조 중앙집행위원회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전교조 내 교찾사가 좌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노조든 노조 안에 있는 좌파들, 그리고 노동 운동을 하는많은 좌파들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운동을 할 때 좌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사범대생들의 이익과 배치되지도 않고 정교사의 이익과도 배치되지 않아요. 기간제 교사가 정규직이 되면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사범대생들에게도 이익입니다. 또한 정교사들도 고용이 불안한 교사들과 일할 때는 제한이 따르기도 해요. 그러니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보다는 정규 교사로 함께 근무하는 것이 교사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며 참교육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거나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을 해치는 이야기들이 나올 때 좌파 활동가들의 역할이 필요하죠. 


전기련은 앞으로 노조로 전환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고, 계속해서 정규직화 요구를 할 거예요. 저는 좌파 활동가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와 실천적인 투쟁을 건설하고 정부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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