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NoJo] 노동조합 조직화 전략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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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추세와 실태, 그리고 함의1)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조직화 모델의 전 세계적 수렴 추세

상대적으로 산업이 발전된 국가들의 노동조합 세력들은 대부분 ‘조직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Ibsen과 Tapia(2017)2)는 관련 문헌 분석을 바탕으로 조직화 모델의 전 세계적 수렴 추세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한다.

첫째, 오늘날에는 영미권 국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북유럽 노사 관계 제도가 안정적인 국가들의 노동조합도 조직화 전략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수렴해 가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도 노동조합에게 안정성을 부여했던 제도들에 대한 사용자와 정부의 공격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높은 수준의 노동자 경영 참여가 제도화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노동조합들도 바로 그 노동자 대표 제도를 방어하고 재활성화하기 위해 조직화와 동원의 강화가 필수적인 것이라 여기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전략적 선택 결과, 조합원 수 증가, 단체 교섭 영향력 강화, 조직 민주주의 신장 등 측면에서 애초 기대했던 만큼 긍정적인 성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현재까지 어렵다.      

둘째, 최근 들어 상당수 국가의 노동조합들이 정치 행동과 사회연대 등의 측면에서 투쟁의 레퍼토리들을 혁신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노동조합 정치적 총파업의 성공률, 즉, 정부 정책을 변화시킨 비율이 1980년대 31퍼센트, 1990년대 37퍼센트에서 2000년대에는 44퍼센트로 증가했다. 또한 핀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 다수의 국가들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집회와 시위 등의 노동자 동원이 강화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최저임금과 생활임금 관련된 캠페인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셋째, 조직화 모델은 영미권 국가들에서 우선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노동조합의 초국적 네트워크를 따라 덴마크,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등 안정적인 노사 관계 제도를 가진 국가들로 확산됐다. 안정적 제도를 가진 국가들에서 조직화 모델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영미식의 ‘노사갈등에 기초한 동원(mobilisation-around-conflict)’ 방식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활동 방식은 이미 높은 수준으로 상호 신뢰를 쌓은 사용자와 노동자들을 동시에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화 모델을 도입하고자 하는 노동조합들은 ‘내부와 외부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노동조합은 한편으로 조직화 모델 도입이 기존 조합원들의 충성도를 낮출까봐 걱정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조합원을 확대하지 못할 경우 노동조합의 대표성과 효과성이 약화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넷째, 아직까지 상당수 노동조합들이 여성, 청년, 이주민 등 새롭게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직의 의사 결정 기구에 대한 접근 권한이나 교섭의제 설정 권한을 갖는 것을 막고 있다. 이를테면 여성이 다수인 산업(예컨대 교육부문)이나 직종(예컨대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에서도 남성 중심 문화 등으로 인해 지도부의 위치에 이르는 여성들의 수는 제한적이다. 그런 한편으로, 최근에는 많은 국가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조직되고 있다. 공공부문 등 조직화가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지는 부문에 여성들이 몰려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수 연구자들은 노동조합 지도부에 여성, 청년, 이주민 등의 참여가 더 많아질수록 조직화가 더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기하고 있다.

다섯째, 노동조합이 사회단체와 연합하는 추세가 영미권 국가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가들에서 강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LA에서 노조와 사회단체가 결합해 이주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추진한 ‘세차장 캠페인’이 성공하면서, 다른 도시들에서도 이러한 ‘지역사회-노동 연합(community-labor coalition)’ 모델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 시작됐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러한 실천이 지속적인 제도화와 실행력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 비판했지만, 지역사회-노동 연합 모델은 현재 미국 노동조합 운동의 기본적인 전략 의제가 됐다. 예컨대 미국노총(AFL-CIO)은 환경단체, 이주민협회, 지역사회단체 등에게 회원 조직으로 가입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호주와 영국에서도 노동조합의 도덕적 정당성과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역사회-노동 연합 모델이 실험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안정적인 노사 관계 제도를 갖춘 일부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등에서는 노동조합과 외부 사회단체와의 연합 건설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

조직화 모델 실천의 국가별 다양성  

Gumbrell-McCormick과 Richard Hyman(2013)은 유럽 10개국 노동 운동에 대한 사례연구와 활동가 면접조사를 바탕으로, 각 국가별로 조직화 모델의 실천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제시했다. 

첫째,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노르딕 국가에서는 최근에 와서야 조직화 모델을 수용했다. 겐트시스템을 기반으로 견고하게 유지되던 조직률이 최근 실업급여 체계가 변화하면서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 국가들에서 조직화 사업은 주로 청년, 그리고 일부는 외국인 및 소수민족에 집중되고 있다. 청년들의 노조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직업 훈련생이나 실습생들에게 조합비를 면제 또는 할인해주는 정책을 도입했고, 노동조합이 청년 노동자들을 위한 일종의 ‘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둘째,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등 중부유럽 국가 노동조합은 모두 조직률 감소와 조합원 고령화, 그리고 여성, 비정규, 소수민족의 과소대표라는 문제를 겪고 있다. 독일 공공서비스노조인 Ver.di는 조직화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유통, 콜센터, 교회, 여타 서비스 부문 등의 조직화를 추진했으나 실질적인 조직률 상승효과는 별로 없었다. 독일 금속노조 IG Metall 역시 조직률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조합원 증대를 위한 공세적 전략’을 선택했다. 또한 파견 노동자인 견습공이 안정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요구하는 사업인 ‘인계 작전(Operation Übernahme)’을 추진해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오스트리아 민간부문 노조 GPA는 유통업과 콜센터에서 조직화 및 제도 개선에 성공했고, 프리랜스 노동자를 위한 조직으로서 ‘work@flex’를 출범시켜 9천 명을 조직했다. 벨기에에서는 청년 조직률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실업보험 기금을 노동조합이 관리하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작업장에서 노조가 존재감이 높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기존 노조연맹들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산하 조직들(FNV Jong, CNV Jongeren 등)을 만들었고, 다업종노동조합(FNV Bondgenoten)을 건설해 저임금, 이주,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추진해 성과를 내고 있다.

셋째,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 국가 노동조합의 주요 조직화 대상은 청년 불안정 노동자이다. 프랑스 노동조합총연맹 중 하나인 CGT는 2003년 청년 조직(CGT Jeunes)을 만들었고, 일찍이 1970년대부터 파견 노동자들을 위한 조직을 건설해 패스트푸드업체와 쇼핑업체 등을 대상으로 주목할 만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세 개 노총 모두가 청년 조직들(CGIL NIdiL, CISL FeLSA, UIL Temp)을 건설해 12만 명을 조직하고 있다. 한편, CGIL은 밀라노 지역 노동회의소를 불안정 청년 노동자를 위한 ‘원스톱센터’로 변경해 직업을 바꿀 때마다 노조를 바꿀 필요가 없도록 지원했다. 

넷째, 영국과 아일랜드 등 국가들은 조직화 모델에 상대적으로 가장 적극적이다. 특히 영국의 노동조합은 조직화 모델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영국노총인 TUC는 1998년 조직화 학교를 열어 조직가를 교육 훈련시키고 있다. 또한 운수일반노조인 TGWU/Unite는 조직화부서에 100명을 채용하고 있고, GMB, Unison, USDAW 등 역시 조직화를 조직의 골간화 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영국의 노조들은 조직화 모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빈 곳 채우기(이미 합법성을 인정받은 노조가 있는 곳에서 미가입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방식)’ 대 ‘불안정한 기반에 노조를 새로 만들기’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었다. 그렇지만 비용편익분석으로는 합리적이지 않음에도 저임금, 여성, 불안정 노동자 등 더 열악한 노동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자원을 집중하는 활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한편, TUC는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주 노동자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 노동자라는 우산 아래 이주 노동자를 포괄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TUC는 2007년 ‘취약고용위원회’를 만들어 조직화 방안 등과 관련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영국 노동 운동의 조직화로 전환하는 성과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극적인 부활을 일으켰다기보다는 조합원 수 감소 추세를 약화시키고 조직을 안정시킨 정도”라는 것이다. 아일랜드 노조들은 상대적으로 최근에야 조직화 우선순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최대 규모의 일반노조인 SIPTU와 소매업 및 술집 종업원을 대표하는 Mandate 두 노조가 조직화 모델에 적극적인데, 이들은 조직가로 여성, 청년, 이주민 등 조직대상과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채용해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미국식 방식을 추진했다. 또한 아일랜드 노총인 ICTU도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에 대한 포괄적인 안내를 제공하는 〈Union Connect〉라는 웹 사이트를 만들어 이를 지원하고 있다.   

이상의 유럽 10개국 상황을 살펴봤을 때,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이 조합원 가입이나 내부 민주주의 측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약자들의 옹호자로서 노동조합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에 확실히 도움을 주며, 이러한 노력이 없으면 노동 시장 이중화를 향한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또한 조직화 노력이 체계적으로 수행되는지 여부는 많은 부분이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전략적 선택과 사업 수행의 결과에 달려 있는 것이다. 

조직화 전략 활성화를 위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외국 노동조합들의 조직화 시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우리 노동 운동이 여성·청년·이주 노동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추진할 수 있는 조직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청년·이주 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과소 대표되고 있는 이들이 노동조합 활동과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인 남성 중장년층이 조합원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성이나 청년, 이주민 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조합원이 조직적 배려 없이 노동조합 지도부로까지 성장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 등을 마련 및 추진하여 활동가와 간부 후보군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및 육성하고, 간부 및 임원 할당제 등 내부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해 이들을 노조 활동 일선에 배치해야 한다. 또한 언론에도 자주 노출시키고 대외 활동과 조직화 사업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토록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노동 운동이 한국인 남성 중장년층 노동자 이외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노동자들과도 상호작용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음을 시민사회와 공론장에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둘째, 단체 교섭의 틀을 넘어서는 조직 체계와 교섭 의제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노동조합의 골간구조는 사업장 단체 교섭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이로 인해 여성이나 청년, 이주민 등 다양한 정체성에서 비롯될 수 있는 요구들을 노동조합 상급단체조차도 다루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앞에서 살펴봤듯, 유럽의 노동조합총연맹들에서는 특히 청년 등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 산하 조직을 만들어 조직화 사업에 추진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노총 경우에는 환경단체, 지역시민단체 등 사회단체들에게 자신의 회원 조직으로 가입하도록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노동조합 상급단체들도 역시 청년이나 여성, 이주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 조직을 중앙과 지역 차원에서 실험적으로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직들은 노동조합의 전통적인 사업인 단체 교섭이 아니라, 언론 이슈 파이팅,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정책 개입, 지역사회 환경 및 생활 수준 개선 캠페인과 다양한 조직화 캠페인 등을 담당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노동 운동의 사회적 대표성과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정책 참여를 통해 초기업 단위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산업별 단체 협약의 효력 확장을 실질화 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지난 보수정권 시기와 달리 현재의 한국 정부에서는 노동조합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 노동 친화적인 정책 변화를 관철시켜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커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동 운동에 우호적인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외국 사례들에서도 노동조합 조직화 모델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정치권력의 태도와 제도적 틀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호적인 정치 및 제도적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만으로는 사실상 조직률이나 영향력의 쇠퇴를 막고 노동조합 재활성화와 부흥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조직화 모델 강화를 위한 노조 활동의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노조의 정책 참여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노조의 대표성과 정당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조직화 모델을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노조에 가입하는 노동자 수를 늘리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전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활동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조직 체계 및 활동 의제 혁신과 다양한 사회단체들과의 연대, 그리고 정부 정책 결정 과정 참여가 맞물릴 때, 여성·청년·이주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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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홍석범 외(근간) ‘금속노조 전략조직화의 방향과 과제’,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에 실린 것을 일부 요약 수정한 것입니다. 

2) Christian Lyhne Ibsen & Maite Tapia(2017), Trade union revitalisation: Where are we now? Where to next?,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 Volume: 59 issue: 2, page(s): 17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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