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NoJo]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 희망을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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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


2.집회.jpg

@전국택배연대노조


택배 노동자 조직화의 어려움


2009년 박종태 열사 투쟁은 세상에 택배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우체국 위탁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 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CJ와 대한통운 합병 과정에서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파업을 계기로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이 본격화 되었다. 이런 성과에 기초해 올해 초 1월 8일, 택배 노동자 전체를 포괄하고자 하는 소산별조직으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출범했다. 


노동자로서 첫 진출 이후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직화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정규직, 비정규직도 물론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에 의해, 그리고 이전 정부들의 반노동 정책에 의해 조직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이에 더해 노동자라는 신분마저 박탈당하는 또 하나의 굴레를 더 쓰고 있다.캠페인을 하고, 문자를 뿌리고, 콜링을 하고, 대면 만남을 해도 조직이 쉽지 않다. 심지어 현장의 주요 사안을 가지고 투쟁에 승리해도 그 현장만의 성과로 끝나고 이마저 공들여 잘 발전시키지 못하면 유실되기 일쑤다. 해고가 너무 쉽게 이뤄지고 이를 보호할 그 어떤 법, 제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사용자에게는 천국이다.


사용자의 업무 지시가 곧 현장의 법


특수고용노동 형태 현장은 그야말로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는 무법천지 노예시장, 노동지옥이다. 현장의 불합리, 부당함에는 그만한 구조적 뿌리가 있다. 한 명의 택배기사가 자기의 권리를 말하지 못하는 것은 계약 해지의 위협 때문이다. 조사에 의하면 택배기사 절반이 계약서조차 없다. 그나마 있는 계약서도 천차만별이고 태반이 노예계약서다. 노동자라면 사용자와 근로 계약을 맺게 되고 사용자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택배기사는 위수탁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이 계약서를 사용자는 원치 않고 법적 제재 방법도 없다. 이 경우 구두계약으로 간주하게 되는데 사용자에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취업규칙도 없다. 사용자의 업무 지시가 곧 현장의 법이다. 사장이 임의로 수수료를 낮추려고 하는 계약 변경을 시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 하고 실제로 해고시킨다. 체불도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택배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민사소송인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변호사 비용도 들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조건에서 소송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 엄두조차 못 낸다. 설사 민사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하루벌이로 사는 노동자에게는 실익이 크지 않아 효과적이지 않다.


택배 현장은 무법천지


계약관계가 이러다 보니 택배 현장은 무법천지다. 택배 노동자가 평균 14시간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낮은 수수료 때문이다. 수수료가 낮으니 물량으로 채울 수밖에 없고 물량이 많으니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수수료가 낮은 원인은 재벌이 택배 산업에 뛰어들어 시장 독점을 위해 저단가 경쟁을 부추기고, 중간에 대리점(집배점)이라는 도급 체계를 만들어 노동자에게 비용과 책임을 더욱 전가하기 때문이다. 택배 현장에서 기사들은 자조적인 말로 “물건 분실 파손, 미회수도 내 책임이고, 아파도 내 책임이고, 죽어도 내 책임이다”는 말들을 한다. 모든 것이 택배 노동자의 책임이고 회사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택배 현장에서 택배 노동자는 레일 끝에 달린 부품에 불과하다. 회사가 중계를 지시하면 도급사는 중계를 하고 택배기사는 대체휴일뿐 아니라 일요일이어도 출근해야 한다. 이에 따른 그 어떤 대가도 없다. 


2016년 가을, CJ대한통운에 의한 중계 실책으로 생물이 변질되고 거래처들이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도급사는 변질 물량을 책임져야 했고, 기사들은 일요일도 출근했으며 대리점(집배점)은 거래처 이탈 피해를 봤다. 그러나 본사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가 대형고객사와의 계약 과정에서 각종 페널티 조항을 넣어도, 안심번호에 대한 비용을 기사에게 전가해도 항의조차 어렵다.


택배기사의 본업은 집하·배송업무다. 그러나 본업보다 상하차 분류 시간이 더 길다. 업무 시간의 경계도 없고 업무 영역도 구분이 없다. 오로지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각종 세금은 꼬박꼬박 내는데 투표일도 장시간 일을 해야 해서 참여가 어렵고, 택배 산업 법제도가 정비 안돼서 때로는 이유 없이 화물차 단속에 걸려 불법 사업자로 내몰리기도 한다. 


무법천지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찾기 어렵다. 관리자가 화장실을 더럽게 쓴다고 화장실을 폐쇄해도 청소를 하지 않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관리자들은 사무실에서 겨울에는 히터를 빵빵 틀고, 여름엔 에어컨을 빵빵 트는데, 택배 노동자는 야외에서 겨울엔 땡땡 얼고 여름엔 불덩이로 익어도 아무런 얘기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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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 결의대회’를 앞두고 전국을 순회하며 선전전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전국택배연대노조)


법 제도 보호 받지 못하는 택배기사


택배 노동자는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한 헌법에 보장된 ‘자주적 단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택배연대노조 자체 조사에 의하면 모두가 부당한 현실에 대해 느끼고 있고 이 해결을 위해 노동조합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90퍼센트 이상이 답한다. 그러나 현실은 특수고용노동자이기에 임의단체는 만들 수 있어도 노동조합으로서의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택배 노동자들은 절박한 현실로부터 임의단체 형식으로 노조를 만들고 있다. 해고 등 노동 조건의 급격한 상황 변화에 맞서는 집단적 투쟁 방식으로 근근이 버틴다. 단결권을 인정받지 못해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해도 이를 어찌하기 힘들고, 교섭은 인정받지 못하며, 이겨도 확약서라 쉬 지켜지지 않고, 단체행동은 손배를 동반하고 성실이행각서로 이어진다.


2015년 울산 파업 이후 많은 이들이 현장에서 떠나야 했고 남은 이들은 성실 이행 각서를 썼으며 이를 위반할 시 해고 절차 진행 위협을 받고 있다. 심지어 CJ대한통운은 택배연대노조 출범 시 대회에 참가하는 택배기사가 있으면 당사자는 물론 소속 대리점도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문자를 돌리기도 했다. 노동 조건이 이러다보니 택배기사가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엄두내기가 쉽지 않다. 해고를 당하는 세상의 절망 끝에 봉착해 지푸라기 잡듯 노조를 찾는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임의단체라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다. 현장 입구에서 노동조합 관련 소식지를 배포하면 택배기사들은 곧바로 관리자에게 빼앗기고도 아무 말도 못한다. 온라인 네이버 밴드 ‘택배기사권리찾기모임’에 가입하면 지점장 면담을 하게 되고 탈퇴를 강요받는다.


재벌에게는 천국인 한국 사회


반면,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 현장은 사용자에게는 이보다 좋은 사업장이 없으며 재벌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CJ대한통운의 대리점(집배점) 사장들은 투자 없이 회사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놀고먹어도 월 2~3천만 원의 수익이 보장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사무실 직원을 고용해놓고 본인은 카페를 내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재벌은 오죽하겠는가. 대외적으로는 오전 배송한다는 상품을 내놓고 어떤 추가 비용 지출 없이 택배 노동자에게 오전에 배송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오후에 한 번 더 나가라는 2회전 배송을 업무지시하기만 하면 된다. 저단가 경쟁으로 비용이 상승하면 상하차 인력을 바로 줄이고 허브를 단축 운영한다. 힘들면 택배기사들을 동원하면 되고, 분류 작업이 3~4시에 끝나도 집배송은 택배기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 발뺌만 하면 된다. 토요일도 주휴수당 없이 평일처럼 똑같이 부릴 수 있고, 일요일도 업무 지시만 하면 추가 비용 없이 출근시켜 일이 돌아가게 할 수 있다. 미안하다는 문자 정도만 날려주면 된다. 


2017년 재벌들의 사내보유고가 700조가 넘었다고 한다. 700조면 우리나라 2년 치 예산에 맞먹으며 1000만 서울 시민의 35년 치 예산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온 20년간 재벌 총수와 그 일가들의 친인척들이 벌어들인 것까지 합하고 재벌들의 각종 혜택을 생각해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부가 재벌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이 사회 절대 다수의 국민인 노동자들은 절대로 오르지 않는 저임금 장벽 앞에 서게 되었고 비정규직 제도, 특수고용노동자가 만들어지면서 하루하루 해고 위기 속에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합법적으로 유린당해 왔다. 


노동자에게는 노동지옥이고, 재벌에게는 천국인 것이 한국 사회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이 나라의 불평등한 극단의 문제,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딱지는 악의 제도다. 노동을 노예화하고 사회를 불평등의 극단으로 몰게 하는 실패한 제도다.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노동3권 보장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촛불은 박근혜의 비리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이 사회 켜켜히 쌓인 적폐를 청산하자는 국민적 요구와 시대 변화의 요구였다. 이런 요구가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적폐 청산, 노동 존중 등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게 한 것이다. 


현 시기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있어 노동 존중이란 ‘노조할 권리’,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3권 보장’이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재벌들은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3권이 보장되면 마치 자신들이 엄청나게 어려워지는 것인 냥 얘기한다. 그 저의가 저주스럽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보장되면 현장의 불법 노동 행위가 1차적 해결과제로 제기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연히 비용이 발생할 것이고 그 비용은 재벌들이 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수백 조의 사내보유고, 각종 혜택, 재벌만 배 불리는 경제는 실패한 경제이니 노동을 존중해서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그간 각종 혜택을 누려온 책임 있는 주체라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면 ‘노동 존중’의 시대 변화 흐름은 인정해야 한다. 


얼마 전 최저임금 인상 관련 국감 자리에서  편의점주연합회 회장은 본인 스스로 최저임금 인상에 동의하고 지지한다면서도 이로 인한 편의점주들의 어려움도 대책을 함께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벌들은 이런 소사장들에게 배워야 한다.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처음 국정 과제 실행 계획으로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에 대해 올해 안에 산재·고용보험 처리하고, 2019년까지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해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매우 실망스럽다. 그나마 최근 이를 수정해 올해 안에 단결권을 포함한 노정 교섭이 이뤄지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감장에서 희망을 주기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 말이 위안이 되긴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 그간 누려온 각종 혜택을 하나라도 뺏기지 않으려 하는 재벌 적폐가 공공연히 준동하고, 특수고용노동자는 여전히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노예로 유린당하는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동을 존중하겠다며 사용자, 재벌의 편에서 무언가를 조율하려 하는 방식으로 과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즉각,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 노조 설립을 인정하고 노동조합과 함께 이들 사업장에 대한 부당 노동 행위를 적발 시정해나가고, 노동조합이 교섭과 단체행동에 나설 때 사용자가 법적 대응을 하면 고용노동부가 적극 나서 법정에서 노동자의 편에서 진술하면서 여론을 만들고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그 힘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사회 국민임에도 국민으로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합법적으로 유린당하고, 벼랑 끝에 걸려있는 230만 특수고용노동자를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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