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NoJo] 북유럽 노조 조직률은 왜 높을까? 정치와 제도에 답이 있다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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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팀장



노조하면 신세 망친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은 물론 단체 협약 적용률도 낮은 기형적 노사 구조를 갖고 있다. 일하는 이들 스스로 노조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않는다. 노조 없는 기업에 익숙해진 결과이다.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묵살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33조는 노동3권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가 노동 조건 향상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노조 조직률은 1989년 19.8퍼센트까지 올랐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10퍼센트 대에 정체되어 있고 노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노조’ 하면 사회적 역할보다는 파업과 투쟁, 생산 차질과 경제적 손해, 시민 불편 등을 떠올린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아직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조하면 신세 망친다’는 속설은 예나 지금이나 속설이 아니라 견고한 현실이다.  


그런데 노조 조직률이 70퍼센트에 가까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나라들은 좀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노조 조직률은 산업계의 큰 자산’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산업별 노사 간 협약이 지켜지고 이것이 경제 문제를 예측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노조 또한 강한 힘에 비례해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의 성장과 쇠퇴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경기 순환, 산업 구조의 변화(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노동력 구성(고령화와 인구학적 변동, 이주 노동자, 여성, 비정규직), 제도적 환경과 정치(노조가 운영하는 실업급여, 단체 교섭 구조, 작업장에서의 노조 접근성과 존재, 노조할 권리의 실질적 인정, 진보정당 등), 세계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제도적 환경과 정치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노조 조직률과 단체 교섭 적용률 변화


[그림 1]은 에스핑-안데르센(G. Esping-Andersen)의 ‘복지자본주의의 세 세계’ 논의와 홀과 소스키스(P. A. Hall and D. Soskice)의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에 따라, 21개 OECD 국가를 네 개의 정치경제 체제로 구분하여, 각국의 노조 조직률과 단체 교섭 적용률의 변화를 살펴본 내용이다. 이 그림은 노조화 추세에 있어서 정치경제 체제 내에서의 유사성과 정치경제 체제 간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집-표.jpg

사민주의 국가들은 일관되게 높은 수준의 단체 협상 적용률(점선)과 노조 조직률(실선)을 보여주고 있다. 단체 교섭 적용률은 거의 변하지 않거나 약간 증가하였다. 노조 조직률은 단체 교섭 적용률만큼 높지는 않았지만 거의 변하지 않거나 약간 감소하였다. 대륙형 국가들은 스위스를 제외하고 높은 수준의 단체 교섭 적용률을 나타내고 있다. 1980년 이후 단체 교섭 적용률은 거의 평평하거나 7개국 중 6개국에서 약간 증가하였다. 예외는 독일인데, 독일은 1980~2000년대 후반에 단체 교섭 적용률이 25퍼센트 포인트 줄어들었다. 대조적으로 노조 조직률은 7개국 모두에서 감소하였다. 대륙형 국가들은 단체 교섭 적용률과 노조 조직률 사이 격차가 크지만, 단체 교섭 체계(임금과 노동 조건)가 많은 비노조 노동자들에게 확대, 적용된다. 자유시장경제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노조 조직률을 보여주고 있고,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노조 조직률은 감소하였다. 2000년대 후반에 다른 자유시장경제 국가에 비해 단체 교섭 적용률은 호주, 아일랜드에서 높았고, 노조 조직률은 캐나다, 아일랜드, 영국에서 높았다. 1980년 이후 캐나다는 단체 교섭 적용률과 노조 조직률은 약 5퍼센트 포인트 감소하였지만, 다른 국가들은 노조 조직률이 상당히 감소하였다. 호주를 제외한 모든 자유시장경제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단체 교섭 체계가 비노조 노동자들에게 확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체 교섭 적용률과 노조 조직률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독재 경험이 있는 국가들은 독재 경험으로 인해 결과가 명확하지 않지만, 1980년 이후로 살펴보면 단체 교섭 적용률은 스페인에서 증가하였고 그리스에서는 약간 감소하였으며 포르투갈에서는 상당히 감소하였다. 반면 노조 조직률은 세 나라 모두 감소(포르투갈은 급격히, 스페인은 완만히)했다.    


각 정치경제 체제 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980~2000년대 후반에 사민주의 국가들은 단체 교섭 적용률이 평균적으로 약 5퍼센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륙형 국가들은 단체 교섭 적용률이 평균 4퍼센트 감소했다. 반면 자유시장경제 국가들은 단체 교섭 적용률이 평균 26퍼센트 포인트 감소하였다. 노조 조직률은 모든 정치경제 체제에서 감소했지만, 평균 감소율은 체제 간 상당히 다르다. 사민주의 국가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평균적으로 5퍼센트 포인트, 대륙형 국가에서는 14퍼센트 포인트, 자유시장경제 국가에서는 23퍼센트 포인트, 독재 경험 국가에서는 18퍼센트 포인트 감소하였다. 


높은 노조 조직률을 유지하는 제도적 요인


이러한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학자들은 단체 교섭 적용률과 노조 조직률 변화는 다른 요인들보다 정치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먼저, 실업급여 제도를 들 수 있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그리고 대륙형의 벨기에에서 노조 조직률이 높은 이유는 실업보험 운영에 있어서 노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노동조합이 실업급여를 관리한다.1) 실업급여 혜택을 받으려는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노조에 가입하게 돼 이는 높은 노조 조직률을 유지하는 근간이 됐다. 그때부터는 선순환이다. 높은 노조 조직률은 임금 및 단체 협상에서 노동자의 협상력을 유지시켜주는 힘이 되고,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 시장 정책과 사회 보장 제도까지 합세하면서 소득불평등은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사민주의 국가들의 소득 안전망은 높은 노조 조직률을 바탕으로 한 노조의 협상력과 정부의 바람직한 고용 정책, 높은 사회 복지 지출 등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높은 노조 조직률을 유지하는 또 다른 제도적 요인은 작업장에서 노조 접근의 용이성과 노조의 존재이다. 많은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작업장에서 제도화된 노조에 대한 접근 정도와 노조의 존재는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가시적으로 대표하게 하고 노조의 조합원 충원 노력을 촉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가능성을 상당히 높인다. 이는 높은 노조 조직률과 긍정적으로 결합된다. 사민주의 국가들은 위에서 언급한 실업 보험 제도 이외에도 여러 요인들로 인해 다른 정치경제 체제보다 노조에의 접근성이 용이하다. 노조할 권리는 실질적이고 자연스러운 권리가 되고, 부정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4.ebs.jpg

EBS <지식채널e> ‘국민의 집’


중앙집중화된 단체 교섭 체계


노조 조직률은 단체 교섭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사민주의 국가들처럼 상대적으로 중앙집중화된 단체 교섭 체계는 대개 노조 조직률을 증가시키고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중앙집중화된 단체 교섭 구조는 작업장 수준에서 경영 관리에 덜 개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작업장에서 노조를 없애고자 하는 유인을 줄여줄 수 있다. 또한 중앙집중화된 단체 교섭 구조는 거래비용을 맞춰 자본과 노동 사이에 잠재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거시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다른 한편, 단체 교섭 구조의 중앙집중화는 노동자들이 조합원이 되지 않거나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단체 협약의 영향을 받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사민주의 국가들에서는 중앙집중화된 단체 교섭 구조가 이전보다 약해지고 분권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노총과 경총 간에 임금 인상률, 노동 조건, 복지 등에 대한 내용의 합의를 보는 중앙임단협의를 한다. 노총과 경총 사이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 내용은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조직률이 높은 노조가 조직률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조의 임금 협상을 도와줌으로써 보다 높은 임금 체결을 가능하게 한다.


노동 운동의 힘이 사민주의로 가는 길 열어


최근 우리나라 노동법 전면 개정을 지켜보면 위로부터 노조 활동을 도와주는 길을 터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노조 활동이 힘을 받아 조직률 상승이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법 개정이 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노동자의 지위 향상에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아무리 법 개정이 된다 해도 해당하는 주체인 노동자들 스스로 힘을 모아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결국 힘 있는 외부에 의해 법이 해석되고 적용될 것이 분명하고 그 이익의 당사자들은 항상 힘 있는 소수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사민주의 국가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70퍼센트에 달하는 것은 그러한 일을 돕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노조가 전국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가능한 협상력 확보, 그리고 일부 정규직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조의 모습이 아닌 비정규직까지 아우르는 보편성 확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유럽 사회가 사민주의로 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하고 큰 원동력은 대중이 노동 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노동 운동의 정치화를 가능케 했고 사회를 진보화 시킬 수 있는 중요 요인이 되었다. 또한 대기업 고숙련자들의 재분배 시스템에 대한 지지도 사회 진보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직도 북유럽 사회 대기업 고숙련자들은 재분배 시스템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런 조직들의 세력이 자본층을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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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 같은 독특한 실업 보험 제도를 흔히 ‘겐트시스템(Ghent System)’이라고 하는데 벨기에의 겐트 지방에서 처음 실시되어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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