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NoJo] 광장의 민주주의가 직장의 민주주의로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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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촛불집회는 초저녁부터 시작되어 밤까지 지속되곤 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는지, 어떤 표정으로 촛불을 들고 있는지가 궁금해 광화문광장 인근을 수차례 산책했다.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다보면 부모의 손을 잡고 광장을 나온 아이, 친구들과 함께 나온 청소년, 손을 꼭 붙잡고 촛불을 들고 있는 연인까지 촛불의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광장을 돌아다니면 어느덧 9시에서 10시 그즈음에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이제야 도착한 듯, 광화문이나 시청 출구를 통해 나오던 사람들이었다. 


그이들은 토요일에도 직장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일신문과 현대정치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계층에 따른 촛불집회 참여 비율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계층, 즉 수입에 따라 구분했을 때 계층이 ‘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저녁 늦게 촛불에 하나라도 보탬이 되고자, 혹은 박근혜가 물러나면 내 삶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광화문으로 나섰던 노동자들. 이들의 직장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직장 갑질이 문제야 


촛불의 기억을 업고 당선된 ‘국민의 정부’. 새 정부 들어 적지 않은 변화들이 느껴진다. 문재인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소득주도 성장론’을 이야기하면서 역대 가장 높은 인상률로 최저임금을 인상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음으로써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임 노동부 장관은 부당노동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길바닥에 현장 노동청을 차리며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었다.


사회적 여론 역시 이전과는 다르다. 프랜차이즈 갑질과 일감 몰아주기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고, 역대 정권에서 존재감이 보이지 않았던 공정거래위원장은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갑질’과 ‘정의’에 대한 사람들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 갑질 중 가장 심각한 갑질이 바로 직장 갑질이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직장 갑질’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해보면 2017년 3분기(7월 1일~9월 30일)까지는 총 879건이 검색된다. 이는 2016년 114건에 비해 7.7배나 높아진 수치다. 또한 중앙일보 조사연구팀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관계가 어디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업주·종업원 관계(44.0퍼센트)와 직장 상사와의 관계(36.1퍼센트)를 꼽았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갑질을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수단은 노동조합으로 모여 집단적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갑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노동조합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민간부문이 그렇다. 85.5퍼센트 국민들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동조합이 고용안정을 담보하고(72.1퍼센트), 노동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높다(70.3퍼센트)고 생각하지만(노사관계 국민의식조사, 한국노동연구원, 2017년 8월) 많은 이들은 여전히 노동조합 문턱이 높다고 느낀다. 이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시선, 노동조합 활동을 선택했을 때 각오해야 할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 투쟁, 비정규직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6.30 사회적 총파업 등의 시도들이 이어졌지만 민주노총은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대표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지부의 비정규직 노조 분리 총회,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전교조의 중집 결정 등을 지나며 ‘귀족노조’ 프레임은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갑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이들을 노동조합으로 모아낼 수 있을까. 직장갑질119는 노동조합 문턱에 오지 못하고, 직장에서 갑질에 시달리는 직장인·알바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준비되는 프로젝트다. 


5.미생.jpg


더 많은 A씨를 찾습니다


회사의 잘못된 일 처리로 항상 고객들의 항의와 불만에 시달리는 A씨. 실적 강요와 ‘진상고객’한테 시달려도 숨 한번 돌릴 시간이 없는 A씨는 회사의 행태가 갑질이라고 느낀다. 어딘가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지만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직장에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지만 일에 치이고, 관리자들의 감시와 해고의 위협이 두려워 동료들과 커피 한잔 하며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직장갑질119는 이런 이들이 모여 불만을 토로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함께 만들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이다.


SNS를 통해 A씨는 직장갑질119를 알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장갑질119의 온라인 채팅방에 들어온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과 법률가·활동가 등과 만나게 된다. A씨는 채팅방에서 본인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A씨의 직종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법률가, 활동가들은 A씨가 겪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으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한다. 노동부에 진정하기, 공정거래위원회 제소하기. 혹은 언론을 통해 이슈화하기. 가능한 방법들을 늘어놓고 머리를 맞댄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A씨가 겪은 일이 이 업계 노동자 모두가 경험한 업계의 불공정한 관행이었음을 확인한다. 직장갑질119는 A씨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을 온라인 채팅방으로 모아 업계 노동 조건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다. 결과를 바탕으로 직장갑질119는 이를 언론에 제보하고, 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한다. 그렇게 알려진 사실들은 사회적 반향을 얻고,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로 A씨 회사를 비롯한 업계의 갑질이 멈추게 된다. 이 소식을 언론과 SNS를 통해 접한 다른 업종 사람들도 직장갑질119를 찾고, 또 다른 업종의 단체 채팅방이 열린다. 이어지는 선순환. 이제 온라인을 통해 모인 사람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직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을 찾기 시작한다. 


직장갑질119


직장갑질119는 더 많은 A씨를 만나고, A씨의 문제해결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온라인 모임이나 네트워크가 있는 업종을 찾고,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는 노동자들과 만날 접점을 찾기 위해 취업포탈 사이트를 만나기도 한다. 직장 갑질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위해 리서치기관과 함께 직장내 갑질과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도 진행 중이다. 11월 1일에는 설문결과를 발표하면서 직장갑질119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목표다.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에 우려와 걱정도 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문제해결 경험을 충분히 축적할 수 있을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기에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을 해본다는 것, 갑질에 시달리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경험이 노동 운동과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노동 운동이 노동자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띄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대표성은 ‘말’로서 확보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이에게 양보함으로서 확보되지도 않는다. 지금 시급한 것은 소외되고, 배제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고, 그들과 함께 행동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모여 직장갑질119의 시동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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