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3권을 부정하는 법 제도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권영국 변호사, 경북노동인권센터장

노조좋아.jpg
지난 10월 18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노조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 출범식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 이유

추석을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울산대병원분회 파업 현장에 지지방문을 다녀왔다. 병원에 들어서자 조끼를 입은 여성 조합원들 수백 명이 로비와 복도를 점거(?)하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사업장 내 점거파업을 본 게 얼마만인가? 가슴이 마구 뜨거워졌다. 로비를 가득 메운 조합원들의 열기에서 이 싸움은 오래가지 않고 마무리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확보하고 벌이는 파업은 대체로 승리로 귀결된다. 그 이유는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9월 30일, 임·단협에 대한 잠정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노동자들이 사업장 밖으로 쫓겨나 차가운 길바닥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혹은 전광판이나 송전탑에 올라 목숨을 걸고 농성을 벌이는 모습들에 너무도 익숙해졌다. 그것은 사용자들이 공격적인 직장 폐쇄를 통해 파업 노동자들을 사업장 밖으로 내쫓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거나, 편법적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사업장 내에서 기계를 돌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업장 밖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은 더 이상 기업 운영에 타격을 주지 못하고 의미 있는 경제적 손실을 끼치지도 못하게 된다. 사업장 밖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의 투쟁이 장기화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없는 이상 이익 분배를 둘러싸고 양보 의사를 가질리 만무하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점거하고 진행하는 파업은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경제적 손실을 가져옴으로써 비로소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대등한 교섭력을 확보하게 된다.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 이유는 바로 노동자가 단결을 통해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을 집단적으로 저해함으로써 경제적인 타격을 입힐 힘을 갖도록 하고 그를 통해 대등한 교섭력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동3권을 부정하는 법 조항

노동3권과 관련하여 현행 헌법 제33조 제1항에서 ‘근로자는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우리 헌법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법률은 최고법인 헌법의 이념과 취지를 반영하여 현실에서 적용 가능하도록 구체화하는 규범이다. 법원이 법률을 해석함에 있어서 헌법의 이념에 맞게 합헌적으로 해석을 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따라서 법률이나 법률해석이 헌법에 위반되면 무효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기본권인 노동3권을 구체화하는 법률은 노동3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제정되어야 함은 법치주의의 이념상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노동자의 노동3권을 규정하고 있는 기본 법률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은 노동3권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항으로 가득 차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집행하는 노동부와 검찰의 친기업적인 법 적용과 법원의 법리 외적인 정치적 해석으로 인해 ‘노동3권 방해법’으로 기능한지 오래다. 이는 마치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만들어진 최초 단결법이 단결을 형사공모죄로 처벌하기 위한 단결 금지를 규정한 법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노동3권을 부정하고 있는 법의 현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보자.

노조에 대한 행정관청의 해산명령 조항을 삭제하자 노조설립신고서 반려제도를 도입해 허가제처럼 운영함으로써 노조의 법적 지위를 자의적으로 부정했다. 노조법상 노동자성에 대한 협량한 해석으로 형식상 사업자일 뿐 종속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해 오직 몸뚱이로 일하는 사람들을 노동법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았다. 복수노조 금지에 맞서 단결의 자유를 요구하자 교섭창구단일화라는 제도를 도입해 소수 노조의 교섭권과 파업권을 박탈해버렸다. 직권중재조항을 통한 공익사업장의 쟁의금지 규정을 비판하자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만들어 쟁의 중에도 주요 업무의 대다수를 유지·운영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사실상 쟁의권을 무력화시켰다. 단체 교섭과 쟁의 행위 대상을 임금, 노동 시간, 복리후생 등 근로 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지극히 협소하게 제한함으로써 노동법 개악이나 노동 정책에 대한 단체 행동에 대해서조차 정치파업이라는 이유로 불법화시켰다. 심지어 정리해고 반대 등 최고의 근로 조건인 고용과 직결된 사안에 관한 파업에 대해서도 근로 조건 결정이 아니라는 해괴한 법률 해석으로 단체행동권을 부정했다. 

쟁의 행위 중 제품 변질이나 부패 방지를 위한 작업 수행 의무 등 쟁의 행위에 대한 여러 제한과 금지조항을 겹겹이 두어 합법적인 쟁의 행위를 현저히 어렵게 만들어놓고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하면 평화적인 파업조차 범죄 행위로 처벌하고 손배가압류로 가정의 생존권을 파괴했다. 

파견·용역·도급·위탁관계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이나 기간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 용역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해고하거나 기간만료로 해고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나 이를 보호할 법적 장치는 마련되고 있지 않다. 규약과 단체 협약에 대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 제도를 통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거나 합의한 규약이나 협약에 개입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처벌함으로써 노사자율 원칙을 근본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행정기관은 편향적인 법 집행으로 대항수준을 넘어 파업을 파괴하는 부분적·공격적 직장 폐쇄를 허용하고 불법적인 대체인력을 묵인함으로써 파업 효과를 거세하는데 오히려 조력했다. 

헌법 제33조 제2항에서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법률로 정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관계법인 「교원 노조법」과 「공무원 노조법」은 처음부터 교원과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위헌적인 법률로 출발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해고자가 가입해 있다는 이유로 교원과 공무원 노동조합의 법적 자격을 박탈해버리는 헌법 부정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해왔다. 

노동3권 방해법, 바꿔야 한다

노사 관계를 둘러싼 법률 현실이 이 정도면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이 무색하지 않은가? 참으로 열거하기가 민망할 따름이다. 노동3권의 행사가 제한되고 그 영향력이 축소되면 될수록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해 경제적인 타격을 줄 힘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아무리 송전탑에 올라가고 차가운 길바닥에서 농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용자의 이윤 추구 업무를 방해하여 경제적으로 타격을 주지 않는 한 사실상 대등한 교섭은 불가능하게 된다. 경제적 타격을 받지 않는 사용자는 잠시 무언가를 양보하는 시늉은 낼지 모르나 사회적인 관심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8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의 중요한 국정 목표 중 하나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되려면 정부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그런 정책들을 더 전향적으로 펼쳐야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스스로 단합된 힘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나가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자 조직률을 높여나가는 것은 중요하고요···. 정부도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서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노동조합의 결성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사용자 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의지로 단속하고 처벌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고를 해드립니다”라고 답변했다. 

대통령의 노조 조직률 제고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벌 발언은 그동안 ‘노동3권 방해법’으로 기능해온 위헌적인 법률과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열린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것은 노동자들의 영향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절실하다. 노조 조직률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 노동3권의 행사를 제약하고 있는 법제도 개선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 시기를 앞당기고 공무원과 교원노조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치밀하고 엄격한 감독을 상시화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그와 함께 노동자 개념을 개정하여 범위를 넓히고,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폐기하여 복수노조의 자율교섭권을 확보하고, 교섭과 쟁의 행위를 제한하는 독소조항들을 제거하여 교섭권과 파업권을 확장하고,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함으로써 노조법을 헌법상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률로 바꾸어 내야 한다. 법제도를 바꾸지 못하면 대통령과 정부 정책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돌변할 수 있다. 우리는 사드 배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 변화를 통해 법을 통해 통제되지 않는 정부 정책이나 입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지 않았는가? 

나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송전탑이나 전광판 위로 오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울산대병원분회의 파업에서 보았듯이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에 영향을 미쳐 경제적인 손실을 입힐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노조할 권리 운동’을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확장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