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운동, 운동이 삶이 되는 길_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정책실장 2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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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오랫동안 비정규 노동 운동에 몸담았던 김주환 정책실장. 지금은 특수고용 노동자인 대리운전 기사들을 조직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그이도 대리운전 기사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금세 끝낼 생각도 없었지만, 오래 할 생각도 없었다. 대리운전노조? 처음부터 생각한 건 아니었다. 기존에 해왔던 비정규직 노조 조직 시스템과는 다른 조직 방향을 고민하긴 했다. 지금껏 살아온 자락이 어디 가겠는가. 대리운전 현장에서 먹고 사는 사람이 그 사회의 부당함을 못 본 척, 모르는 척 넘길 수는 없었을 터다. 자연스럽게(?) 생업인 대리 일은 뒷전이 됐지만, 올빼미 생활을 하며 전국의 대리운전 기사들을 만나느라 하루가 짧기만 하다. 지난 호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 대리운전 기사 김주환 정책실장이 고민하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인터뷰·정리 : 진기훈 쉼표하나 6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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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정책실장(@강인수)


대리운전을 시작하다


2008년 연말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했어요. 거리는 하얀 눈으로 뒤덮였는데 등에선 땀이 흐르더라고요. 제가 길치인데 대리운전을 하겠다고 맘을 먹다니···. 운전하는 것보다는 콜을 받고 사람 만나고 콜을 완료하고 나서 이동하는 게 힘들었죠. 추운 겨울 들판을 몇 시간씩 걸은 적도 있고 편의점에서 밤을 새기도 하고 그나마도없는 외진 곳 불빛 아래서 첫차를 기다리기도 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지리도 알게 되고 일하는 요령도 생기더라고요


한국 사회에서 대리운전은 90년대 초반에는 고급 식당이나 강남 술집 등을 중심으로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였어요. 그런데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자가용이 보편화되고 외곽 베드타운이 형성되면서 90년대 중반부터 대리운전도 대중화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PDA(휴대 정보 단말기, per-sonal digital assistant) 등을 활용한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광역화 되었고, 최근에는 카카오가 진입하는 등 고도화되고 있어요


한국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대리운전이 활성화되었어요. 독특한 음주 문화와 주거 환경 그리고 통신시스템의 발달이 기반이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서비스 직종의 임금 수준이 낮은 것이 주요한 조건이지요. 일상화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몰린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이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거리를 찾아 나섰고 임금 수준이 낮아도 대리운전이 가장 가까운 일이었던 거죠. 초기에는 대리기사라고 하면 아르바이트로 생각했지 직업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대리운전이 활성화되고 IMF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업에 뛰어들면서 최근에는 전업 기사들이 다수가 되었어요.


대리운전 조직화 전형을 찾아가는 길 


어느 정도 일이 익으면서 주위의 대리기사들을 만나기 시작했지요. 직장에서 내몰린 노동자, 사업을 하다 망한 사장님, 전직 택시·화물 등의 운수 노동자···. 다양한 사람들이 삶을 돌아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거지요. 손님들도 사장부터 관리자, 노동자들까지 다양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운동과 조직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보다가 개개인의 삶의 가운데서 다양한 생각과 태도,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살아온 삶도 돌아보게 되었죠. 동료들을 만나면서 과연 조직할 수 있을까?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고민됐어요. 기존에 해왔던 비정규직 노조 조직 시스템과는 다른, 그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조직 방향 같은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던 거죠. 그리고 이전 방식의 조직화를 넘어 대리운전에 맞는 조직화의 전형을, 운동의 전형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실제로 대중적 조직화는 힘들 거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대리운전업 자체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서 업체들의 횡포도 심하고, 소위 진상 고객을 만나도 하소연 할 곳도 없어요. 그래서 대리기사들도 나름대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모색들을 해왔죠. 아무래도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대인관계가 적어질 수밖에 없어요. 대리기사들끼리 모이기는 하는데 고달픈 일을 마치고 소주잔을 나누며 일하면서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정도지요. 좀 더 적극적인 기사들은 협회, 협동조합 그리고 노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로 조직적인 운동을 모색해 왔어요. 대리운전 판에서는 권익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대중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했어요. 의외로 현장 노동자들은 이런 운동에 대한 불신들이 형성되어 있어요.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대리기사의 특성상 모이기 힘든 것이 크겠지만 대중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몇몇의 고군분투는 결국 대리전으로 소모되거나 이권으로 전략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운동의 기반을 넓히기 위해 지역에서부터 사람들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지역모임을 시작했죠대리운전 노하우를 공유하고 초보 기사들을 위한 교육도 하면서 대리운전 판에 이슈가 생기면 함께하는 방식으로 지역모임을 했죠. 한편으로는 대리기사뿐만 아니라 직종이나 사업장을 넘어서 지역 수준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요. 결국 밑으로부터 연대를 통해 비정규 운동도 정치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대리기사들 조직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특수고용은 자본의 통제를 위해 노동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거예요. 또한 비정규 노동 중에 기간제나 간접고용 같은 경우는 기업에서 노동을 배제하는 체제잖아요. 그런데 특수고용은 여기에 사회적 배제가 덧씌워지는 거죠. 일반 기업들 같은 경우에는 모여서 싸우면 교섭을 통해 노동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기대치가 있어요. 게다가 한 공간에서 사람들을 대면하고 관계를 맺기 때문에 더 나아질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죠. 그래서 조직도 하고 투쟁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잖아요. 반면에 특수고용직은 워낙 고용 관계가 복잡하고 자발적 참여로 위장된 시스템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다 보니 문제는 심각한데 손에 잘 잡히지 않아요. 사업장에서는 고용 보장이나 임금 인상이라는 계기가 선명하게 보이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고용 시장 자체에 대한 통제와 표준요율제와 같은 제도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데 그에 맞는 전국적인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죠. 더욱이 일정한 작업장이 없어서 같은 노동자들끼리 대면할 기회도 적고, 먹고 살기도 힘들고 하다 보니 모이기도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되죠. 어려운 환경일수록 조직이 되려면 중심이 서야 하고, 그 중심이 설 때까지 디딤돌이 필요하죠. 그 역할을 노동조합이 해야 하는데 어려운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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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9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대리운전노조 출범식 및 창립총회.(@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리운전 기사들의 쉼터, 서울이동노동자쉼터 개소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집안일도 신경 써야 했어요. 저도 건강이 많이 나빠졌죠. 조직화는 진전이 없고,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활동 방식과 내용에 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어요. 그동안 애들한테도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마침 친구들이 애들하고 네팔에 가자고 했죠. 그때가 2014년 겨울이었는데,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대리기사를 위한 쉼터를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어요. 단순한 쉼터를 만들 거면 내가 할 것도 별로 없을 것 같고 별 의미 없는 거 같다,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 되는데 현장 대리기사들한테 제일 중요한 게 주체들 조직하는 거니까 주체들 조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고 네팔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2015년 봄에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그런 방향으로 추진해보자는 연락이 와서 쉼터 만드는 일을 했어요. 조직화를 위한 디딤돌로서 쉼터를 고민했는데 건설노조의 경험이 많은 영감을 주었어요. IMF 터졌을 때 포항에서 건설노조가 용접학교를 운영했어요. 그때는 플랜트가 막 커나가는 시기였지만 용접학교가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도움도 되고, 한편으로는 그 공간이 조직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죠. 그래서 대리운전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목표로 쉼터를 준비했어요


처음부터 현장 대리기사들을 모아서 간담회와 토론을 통해 쉼터 사업의 방향과 계획을 잡아 나갔고, 현장 의견을 모으기 위해 실태조사도 실시했죠. 그 결과로 이동노동종사자 지원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보고서치고는 워낙 인기가 좋아서(?) 재판까지 찍을 예정이에요. 거의 1년 정도 준비 과정을 거쳐 대리운전의 중심지인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 이동노동자쉼터 1호점인 서초 쉼터를 오픈했지요. 그런데 반응과 평가가 매우 좋았고, 그 결과 서울에서는 종로 장교 쉼터에 이어 마포 합정에 3호점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국적으로도 기초 지자체 중에 처음으로 창원에서 이미 만들어졌고, 10여 개의 도시에서 이동노동쉼터 개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쉼터를 준비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이동노동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쉼터를 운영한지 1년이 되지 않아 중앙 정부에서도 이동노동쉼터에 대한 지원 계획을 발표했어요


쉼터를 이용하는 대리 노동자들은 우선 자신의 공간이라는데 많은 의미를 부여해요.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은행 ATM 박스나 편의점을 많이 이용하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안 되면 남의 건물에 들어가서 추위를 피하죠. 그런데 비록 시범으로 하나뿐이지만 자신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깊은 정서적 안정을 주는 거예요. 그리고 쉼터라는 공간에서 동료들을 만나게 되니 길에서 경쟁상대로 만나는 것과는 다른 만남의 의미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현재 쉼터에서는 편의시설 외에 대리운전 기사의 노동과 생활 특성을 고려해 재정과 주거, 그리고 건강, 법률 상담과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어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대리기사를 위한 힐링 여행도 일 년에 두 번 다니고, 이를 발전시켜 귀농 준비 겸 농활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쉼터 운영도 당사자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대리운전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대리보험 문제 해결을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가 한 번 성공적인 경험을 만들면 다른 것도 해볼 수 있고, 그래서 더 잘해나가야 된다는 흐름이 형성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안정적으로 하나씩 모색해 나가고 있는 거고요. 강남에 있는 쉼터는 보통 대리기사들이 모이고, 장교동 2호점은 퀵서비스 기사들이 중심이에요. 앞으로 합정동에 열 3호점은 일단은 대리기사 중심으로 만들어지고는 있는데 좀 더 사업을 진전시키는 노력이 요구되죠. 대부분이 특수고용 노동자인 이동 노동자 전체가 함께 모이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쉼터사업을 발전시켜야 된다고 봐요. 다종다양한 이동 노동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좀 더 진전된 조직화와 사업에 대한 여지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기들의 이해관계보다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도 고민하게 될 테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연대 폭도 넓힐수록 운동이 갈 수 있는 토대는 강화되겠죠. 그렇게 가야하고, 갈 것 같아요. 끊임없이 확장하지 못하는 노동 운동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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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동권익센터는 2017년 6월,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2호점에서 ‘서울시 이동노동자 쉼터 1년, 평가와 운영방향’ 토론회를 열었다.


대중 조직, 그리고 전국적 운동으로 만들어나가야


전국 노조로서 대리운전노조가 대중적 조직으로 가야하는 게 젤 큰 고민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를 15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동안 대리운전노동조합에 가입을 한 인원은 만 명이 넘어요. 그런데 실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오백 명 정도죠. 노동조합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죠. 대구에서 일반노조 조직사업으로 대리운전 기사를 조직하는 사업을 하면서 2006년에 대리운전노조가 만들어졌어요. 그때 대구 대리운전노조는 설립필증도 받았어요. 대구 지역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가장 대중적인 노조 활동을 했는데 아직 전국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어요. 2013년이 되어서야 전국화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는데 대중 운동으로서의 노조는 아직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고 봐요. 대전지역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이 전개되었는데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전국적인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했죠. 현재 대리운전 노동 운동은 새로운 모색과 시도들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주요 흐름은 대중적 조직과 운동을 전국적으로 형성해 내는 것이죠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람만 모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쉼터 만든다고 조직화되는 것도 아니에요.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엮어야 하죠. 쉼터뿐만 아니라 대리운전 시스템 전체를 가지고 문제제기 하고 전국적인 역량을 모아나가는 게 중요하죠. 대리운전 판도 구조조정 시기에 있는 거예요. 판 자체가 활성화되다 보니 구조조정을 겪을 수밖에 없잖아요. 전국적으로 여러 업체와의 갈등도 있고. 새로운 업체들도 생기는 거고. 셔틀 문제, 보험 문제 등 지역 속에서만 풀 수가 없는 거예요. 전국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현장을 조직화하고, 사람들 만나는 방식들도 또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 가야죠. 그러면 현장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하는 것과 전체 노조 차원에서의 사업 투쟁들이 엮이면 대리운전 기사들의 대중적 조직으로서 대리노조가 형성되겠죠. 그 속에서 한국 사회의 비정규 운동이 새로운 모색을 해나가는데 대리운전노조가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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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1일 오전 11시, 세종로정부청사 앞에서 대리운전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내 앞에 놓인 길 


지금 비정규 운동은 세 가지 축인 거 같아요. 하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조직화, 또 하나는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예요. 한국 사회는 이윤 구조가 원·하청 관계로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게 중요하죠. 마지막으로 역사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인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한편으로는 운동의 성과가 정치적인 힘으로 모아지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 기본이 중요하다고 봐요. 대중 운동이 자기 운동의 흐름이 생기지 않으면 정치 운동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포함해서 운동을 바로잡지 못하면 진보 정치 운동은 성공 할 수가 없어요. 그 속에서 저의 역할을 고민해 나가겠죠.


저도 귀농에 관심이 많아서 지인들이 있는 장수에 자주 가는데 장수 민중의집에 이주 농업 노동자의 인권과 관련한 설명 책자가 있더라고요. 내가 귀농을 하더라도 해야 하고 할 일들은 여전히 내 앞에 놓여 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삶 그자체가 운동, 운동 그자체가 삶이 되는 길을 만들어 갔으면 해요. 그동안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한 게 아니라 현장에 있으면서, 싸우면서 주위 사람들한테 배웠던 거예요. 그리고 아직까지는 할 만한 게 있고 해볼 수 있는 것을 하고는 있는데 이 길이 모두에게, 아니 한 명에게라도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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