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탈출을 꿈꾸며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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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센터장



탈출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격렬한 파도가 밀려오고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나 지옥 같은 곳에서 얼굴 군데군데 상처가 나고 온몸은 거지처럼 만신창이가 되어서 안간힘을 쓰며 도망치는 그런 탈출 장면. 또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최서해의 《탈출기》 줄거리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주인공 박 씨는 가족들을 데리고 찢어지는 가난을 벗어나고파 간도로 가고 온갖 일을 해보지만, 결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탈출기의 주인공을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귀촌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조금 여유 있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이다. 내가 시골로 간다고 해서 무조건 지금보다 여유 있고 건강하게 살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밥 잘 먹고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 있게 살려면 지금의 삶이 낫다. 우리 부부는 도시에서 틀에 짜여진 생활을 끝내고 자연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아 보자고 얘기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우리는 자녀가 없어서 둘이서만 결정하면 모든 게 가능했다. 아내는 몇 년 뒤에 내려가자고 말렸지만, 내가 아침마다 비염으로 콧물 흘리고 재채기하고, 갑상선 약을 먹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캑캑거리는 것을 보더니 그냥 나라도 먼저 가라고 했다. 시골에 가면 이런 게 싹 없어질 거라는 건강에 대한 환상이 또 나를 귀촌의 숲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나는 강원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청소년기가 되면서부터 쭉 도시에서 살아왔다. 그래도 시골 출신이라서 도랑치고 가재도 잡았고, 겨울에는 올무를 놓아서 토끼도 잡아봤다. 가을 녘에 논둑에서 볏짚을 불 피우면서 벌집도 털었고, 잔대나 더덕뿌리 뽑아서 쓱쓱 문질러 먹던 기억도 있다. 이제 그런 추억 속의 시골로 돌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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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때 무진장 지역을 다니며 발견한 집터(@이종명)


어디에서 살 것인가


그래서 우리 부부는 몇 년 전부터 미래 계획을 세우며 고민을 집중했다. 우선, 어디로 갈까를 고민했다. 아내는 고향이 진도라서 그런지 바닷가로 내려가자고 했고, 나는 깊은 산골로 가자고 했다. 아내는 바닷가에 가면 자기가 갯벌에 나가 조개 캐고 낚시질해서 먹여 살리겠다고 하면서 이미 집 있고, 사람들 있는 진도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오직 산골만을 고집했다. 만약, 진도로 내려가면 잠이 많은 나는 늘 동네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하다. 여직껏 진도에 내려가서 내가 일찍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장인, 장모님이 새벽에 밭에 갔다 오신 뒤 밥을 차릴 때에야 부스스 일어나곤 했기에 바닷가로 가더라도 진도로 가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아내도 내 뜻대로 산골로 가기로 했다. 


왜 산골이 좋으냐고 물으면? 그런 곳은 해가 늦게 뜨니 늦게 일어나도 되고, 해가 일찍 지니 밤에 잠도 많이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펴놓고 남한 땅에서 산 높고 골 깊은 청정지역을 동그라미 치면서 찾아보았다. 거기에 땅값이 아주 싸서 오래 지나도 값이 오르지 않는 그런 곳을 찾아야 했다. 한마디로 오지마을이다. 누군가 그랬다. 산 좋고 물 좋고 값싼 땅은 없다고. 산 높고 물 좋은 권역으로 동그라미를 치니 강원권, 지리산권, 경북권, 전북권이 잡혔다. 산과 물 하면 내 고향 강원도가 일번지지만, 그렇게 덜컥 강원도를 택하면 처갓집이랑 너무 멀어진다. 처갓집은 진도다. 지금도 진도를 가는 게 일 년에 한두 번인데, 만약 강원도로 간다면 아예 서로 만나지 말자는 것과 같아서 일단 배제했다. 그러다보니 봄철 내가 나물 뜯으러 다니던 홍천, 인제, 정선, 영월 등이 탈락됐고, 경상북도 봉화나 충청북도 단양도 배제되었다. 그러면서 눈을 돌린 곳이 지리산 근처 함양, 산청, 남원, 구례, 하동이었다. 천왕봉을 바라보며, 깊은 지리산 골짜기에서 봄마다 돋아나는 나물과 약초를 캐면서 텃밭을 일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마는, 이쪽 지역은 땅값이 비싸다. 내 경제적 상황으로는 살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패스. 그러고 나면 남는 곳은 전라북도 무주, 진안, 장수(이하 무진장) 쪽이거나 경북권 등지이다. 그런데 요즘 경북권은 사드(THAAD) 때문에 난리다. 그래서 택한 곳이 전북권의 무진장이다. 좋아서 택했다기보다는 다른 조건에 밀려서 선택된 면도 있다. 요즘 무진장 지역의 지도를 펴놓고 골짜기를 뒤져보며 방향을 따지고, 고도와 마을 규모를 파악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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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을 빌려 고추 같은 농작물을 적게라도 키우고 싶다.(@이종명)


뭘 해서 먹고 살지?


두 번째 고민은 뭘 해서 먹고 살까. 주변 사람들한테 농담으로 쉽게 얘기한다. 우리 집 뒷산이 덕유산이고 거기에서 산삼 캐 먹고, 멧돼지나 토끼 잡아먹고, 집주변 나물 뜯어 먹을 거라고. 그렇지만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온천지가 눈에 덮여있는 겨울,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고라니나 토끼가 티브이 속에 나올 때가 있다. 내가 꼭 저 신세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무진장 지역은 눈이 많이 온다고 했다. 산이 깊어 해가 늦게 뜨고 해가 일찍 지며, 겨울이 긴 것은 딱 내가 원하는 바지만, 당장 먹고사는 일이 걱정이다. 


처음에는 산골의 맨 위쪽에 논밭을 얻어서 벼농사를 몇 마지기 짓고, 밭농사를 열 마지기쯤 짓고 살면서 소와 돼지를 키워보려고 계획했다. 〈스톡홀름 씨의 좋은 날〉이라는 영화처럼 생명유기축산농법을 실현하면 자연과 생명을 살리면서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돼지도 사료를 먹이지 않고 풀 뜯어 먹일 수 있는 그런 돼지를 키우면 사료 값도 걱정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내가 소나 돼지는 똥파리 날아다니고 냄새나기 때문에 절대 안 되고 동네에서도 쫓겨날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 동물을 키우면 여행 좋아하는 우리가 집을 하루도 비울 수 없어서 더 안 된다고 했다. 맞는 말 같아서 포기하고, 다시 고민하다가 닭을 키우자고 했다. 500평쯤 되는 너른 벌판에 방사해서 키우고 어려서부터 귀소 본능을 잘 가르치면 지들이 산에 가서 모이 쪼아 먹고 다시 돌아오고 우리는 손도 안대고 양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물농장에도 보면 그런 집들이 가끔 나오는데 우리도 그러자고 했지만 아내는 대량으로 키우는 건 무조건 반대다. 그럼, 이번에는 미꾸라지 양식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논밭 몇 마지기와 함께 연못을 만들어서 미꾸라지를 키우려고 여러 가지 자료를 취합했다. 그런데 무진장 지역은 산골이라 수온이 낮은 편이어서 미꾸라지의 최적 생식온도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도 패스. 


이것도 저것도 실상 만만치 않아서 선뜻 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드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귀촌하면 몇 년 동안은 지역에서 모집하는 산불감시원이나 산림보호원, 공공근로 등의 일을 하면서 정착기를 가지기로 했다. 산불감시원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매일 산에 올라 산불을 감시하고 관리하다보면 저절로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시골에서 살기 위해서 보일러 자격증을 하나 따려고 생각하고 있고, 농기계운전기능사도 따야겠다. 부부 중에 한 명은 최소한의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방법 속에서 농사일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필요한 돈을 150만 원으로 잡았다. 최저임금도 올랐으니 부부 중에 한 명이 고정적으로 일을 한다면 생활비는 얼추 해결될 것 같다. 시골생활이 조금 익숙해지면, 그때 논밭을 빌려서 작게 농사를 지으면서 산기슭에 고사리나 도라지 같은 작물을 키우고, 닭이나 염소도 몇 마리 키우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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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집(@이종명)


어떤 집을 지을까


마지막으로 고민하는 것이 ‘어떤 집에서 살까’ 하는 문제이다. 흔히 서양식 주택이나 전통 한옥집 같은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귀농하는 사람들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나랑 거리가 먼 이상향이다. 우리 부부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그런 집 한 채를 짓다가 지붕도 올리지 못하고 손가락 빨아야 한다. 결국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내가 직접 한 땀 한 땀 흙벽 쌓아올려서 짓기로 맘먹었다. 우선 살고 싶은 터 위의 빈집을 임대하거나 시골 농가주택을 싸게 구한다. 그 나머지는 내가 고쳐서 살고 싶고 정이 가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목공기술도 배워야 하고, 흙부대 집짓기 기술도 배워야 하고, 포클레인 자격증도 하나 따야겠다(누가 그랬다. 그런 거 배우고 자격증 따다가 결국 내려가지 못할 것 같다고.) 요즘 잠자기 전에 유튜브를 통해 귀촌 건축학개론을 들으면서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고 있는데 역시 꿈을 꿀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다. 집의 배치를 고민해보면서 목조로 지을지 스트로베일로 지을지 흙부대로 지을 지도 상상해본다. 가운데엔 여럿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실이나 부엌 등이 딸린 본채를 놓고 창고 등을 개축해서 좌우에 온돌방이 있는 흙집을 두 채 정도 지어 함께 살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일단, 같이 간다고 하는 친구가 한 명 있으니 이제 한 명(한 가구)만 더 구하면 된다. 


그러나 시골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많다. 아내가 걱정하는 것부터 본다면 우선, 살인진드기가 무섭다고 했다. 며칠 전에 젊은 사람이 물려 사망했다는 얘기를 아내가 꺼냈다. 별걱정 다한다고 하면서 태연한 척 했지만, 나도 그런 진드기나 벌레가 달라붙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다. 또 뱀은 어떤가? 어릴 때는 제법 뱀 대가리도 잡고 흔들었는데, 이젠 너무 무섭고 징그럽기도 하다. 괜히 풀밭에서 튀어나와 물기라도 하거나 밤에 마당에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어쩔까 싶어 주변에 소금이라도 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에 갔다가 멧돼지를 만나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돼서 인터넷 검색을 하니 몽둥이나 소지품으로 멧돼지보다 커 보이는 척하면서 살살 뒷걸음치는 게 좋다고 한다. 가뜩이나 키 작은 나는 산에 갈 때는 꼭 뭔가 키 크게 보이는 나무라도 가져가야겠다. 그밖에도 수돗물이 안 나오는 지역에 살면 지하수나 개울물 먹는데 누군가 농약을 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어릴 때 우리는 시골에서 고기 잡을 때 농약 뿌려 잡은 적이 있어서). 얼마 전 강릉 산불을 보면서 산골에서 불나면 완전 끝이구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음··· 그렇다면 집 주변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겠다고 위안을 삼았다). 그럼에도 가장 큰 걱정은 의기양양하게 산골 갔다가 다 털어먹고 다시 도시로 올라와야 하면 창피해서 어쩔까 하는 생각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 마치 소풍가기 전날이나 연휴를 앞둔 저녁이 가장 즐거운 것처럼. 올 휴가 때는 무진장 지역을 돌면서 내 촉에 맞는 그런 마을을 찾아보려고 한다. 산속 깊은 골에도 들어가 숲과 내 몸의 정기를 맞춰보려고 한다. 도시 탈출의 디데이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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