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사람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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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윤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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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비정규노동》에 연재를 하던 초기, 청주에 가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 한 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윤희왕. 내 나이 또래의 이 사내는 대학에 다니는 애가 둘이 있었다. 많이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장애인 활동보조로 한 달 100만 원이 안 됐다. 그래서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 

“시급 8,300원을 받고 다사리자원자립센터에서 수수료로 25퍼센트를 뗍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어요. 1급 중증 장애인에게만 활동 보조가 지원되는 거니까 거의 거동을 못하시는 분들을 돌보는 거죠. 아침에 자는 사람 깨워서 휠체어에 태워 밥 챙겨 먹여요. 외출할 때 같이 동행하고요. 가정으로 직접 가니까 부인 빨래, 애들 빨래를 시키기도 하고 고추 따기를 시킨다는 분도 있어요. 못하겠다하면 오지 말라 그러고요. 일이 힘들지만 그나마도 일거리가 없어 100여만 원의 급여도 보장이 되지 않아요.” 

사진을 찍기에 앞서 함께 간 센터 편집국의 이혜정 씨가 이들의 삶을 녹취했다. 나는 옆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조용히 그를 벽에 세우고 가감 없이 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 단순하게 찍었다.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6년 기준으로 32퍼센트다. 즉 노동하는 인구 세 명 중 한 사람은 비정규직이다. 이들의 소득은 정규직의 54퍼센트 정도에 머문다. 10~60대까지 노동 인구 중, 특히 10~20대, 50~60대의 비정규직 비율은 45퍼센트 대를 보이고 있다. 이 연령대는 거의 두 사람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이다. 그렇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만나는 사람들 중 흔한 것이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놓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알 수 없다. 물건을 만드는 이들, 물건을 파는 이들, 물건을 계산하는 이들, 물건을 나르는 이들 모두 둘 중 하나는 비정규직이거나 그에 가깝다. 그들은 존재하되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비정규직 노동자는 유령이거나 투명인간처럼 보였다. 점점 이들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스쳐지나간 그들의 얼굴을 고정해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플래시를 사용해 배경에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고 훤하게 밝은 얼굴을 드러내려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어느새 만난 사람들이 70명을 넘었다. 그리고 오래전 독일에서 살았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1876-1964)를 생각했다. 초상사진에서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그의 실천을. 잔더는 1927년 그의 대표작 〈20세기의 사람들〉이라는 전시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진은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냉혹한 진실성으로 사물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또한 사진은 사물들을 엄청나게 왜곡할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동료와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 이 진실이 우리에게 유리하건 그렇지 않건 관계없이 말이다.” 


초상 사진가였던 그는 독일인을 분류하는 7개의 섹션을 열거하면서 1. 농민, 2. 장인, 3. 여성, 4. 전문 사회직종, 5. 예술가, 6. 대도시, 그리고 7은 불구자, 실업자 등을 포괄하는 ‘최후의 사람들’로 구성했다. 분류는 이후 더 세밀화되면서 나치가 집권하기까지 약 1만 장의 인물사진을 찍어낸다. 사회주의적 관점을 견지했던 그의 사고와 실천은 나치의 ‘아리안주의’적 검열에 걸려 원판이 압수되거나 책은 불태워졌다. 그가 담아낸 사진들은 나치가 주장하는 고결한 독일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전후에 복권되어 60년대까지 작업을 이어나간 잔더는 최종으로 4만 장의 인물사진을 구축했고, 이는 유형학적 담론과 아카이브라는 방식을 실현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물론 이러한 성과보다 더 위대했던 것은 인물사진을 사회적 풍경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도 그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분류 8. 비정규직 노동자 섹션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가급적 사진은 기존의 미학 체계에 포섭되지 말 것. 사진 이미지만으로 독자를 설득하려는 만용을 부리지 말고 그들의 구어를 문자화해서 충분히 정보를 전달할 것. 분류를 고민해서 설득력 있게 나눌 것.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취재해 보편성을 획득할 것. 오랫동안 보관될 수 있는 매체를 고민할 것. 이런 것들이 이번 작업의 나름 원칙들이었다. 


올해 이들의 초상사진과 구술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뜻밖의 비보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윤희왕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하루 종일하는 노동도 모자라 진보정당 활동까지 하던 그였지만 결국 육체는 정신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의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이었다. 책에 담길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슬픔 감정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내 또래 사람들의 삶에 연민이 든다. 그리고 우리 한번 버텨보자. 아이들에게 뭔가 변화된 날을 물려줘야 할 것 아닌가? 그리 힘겹게 빌어본다. 


이상엽 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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