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칼럼]
최저임금 만원운동, 이후가 더 중요하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17. 8. 3)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
시급 1천60원·월급 22만1천540원(16.4%) 인상. 2018년 최저임금 7천530원은 역대 최대 인상액이다. 사용자위원 4명 즉각 사퇴에서 반증되듯이 최저임금위원회 한계 아래 노동계가 거둘 수 있는 최선의 성과였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늪에 빠져들던 한국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500여만 저임금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 특히 무노조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였다. 평가가 엇갈리기도 해서 안타깝지만 잘 매듭지어질 거라 믿는다.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최저임금위 활동을 평가하면서 이후 과제를 제시하겠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 촛불시민혁명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열망한 촛불민심이 국민임금으로 불린 최저임금이 적정 수준으로 올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기존 수구 기득권 적폐세력의 힘이 약화한 것도 중요한 변수였다. 일자리위원회에서 전경련이 배제된 것처럼 최저임금위 내 사용자단체들의 위상도 추락했다. 사용자위원 최종안 7천300원은 그들이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생생하게 드러냈다. 공익위원 다수가 노동자위원 안에 찬성한 것도 촛불시민혁명 이후 사회적 여론 확대가 불러온 결과였다.
둘째,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시대적 요구였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선언하면서 핵심 정치적 의제로 격상돼 대선 시기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앞다퉈 내세웠다. 1천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규모를 바탕으로 여성과 청년, 중고령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양극화 재벌왕국을 정상화하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당면 노동의제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직접적 이해 당사자만 700만~800만명에 이르는 중차대한 사회적 의제인 최저임금은 촛불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시대적 과제로 격상됐다.
셋째,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주효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조들이 주도한 6·30 사회적 총파업과 만원행동의 사회적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총파업은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홈플러스노조는 최저임금 결정 당일까지 전 조합원이 돌아가며 농성투쟁을 했다. 임금이 당사자 생존권 요구인 만큼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넷째, 양대 노총 공조도 기여했다. 다른 노동의제와 달리 최저임금은 노조 밖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였으므로 양대 노총의 사회적 책무 성패가 걸린 중요 현안이었다. 수정안과 최종안 제출을 비롯해 고비가 있었지만 양대 노총 대표자와 9명의 노동자위원들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협의하고 조율해 잘 넘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최저임금위는 가장 극적으로 노동계가 완승한 교섭의 장이 됐다.
다섯째,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까지 1만원 달성 공약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올해 15.7%(7천480원)가 하한선이었던 만큼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중요한 마지노선으로 작용했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실세경제부처 내에선 임기 내 1만원 후퇴가 공공연한 주장이 되고 있었던 만큼 막판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노동자위원과 공익위원들(사용자쪽 공익위원을 뺀)이 이 기준선을 넘긴 상한을 놓고 쟁취한 결과가 7천530원이었다.
향후 과제는 세 가지다. 먼저 최저임금위 내 적폐를 극복할 제도개선이 화급하다. 공익위원 추천권 개선, 최저임금위 위상 격상, 회의 공개 확대, 최저임금 산정기준에 가구생계비 반영 등 수년에 걸쳐 논의돼 온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대폭 인상에 따른 위반율 최소화를 위한 전방위 대책도 절실하다. 벌써부터 수구보수 언론이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 대량 해고와 중소기업 폐업 속출을 우려하며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개막을 가로막고 있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위반 사용주 처벌 및 광범위한 홍보와 계도, 고용노동부의 행정감독 등 실질적인 예방책 마련을 강력하게 촉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을들의 연대가 진전돼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반목하는 형국이 되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가 돼 버린다. 개인사업주지만 노동자인 특수고용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영세 자영업자를 준노동자로 규정하고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