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버킷리스트

by 센터 posted Jul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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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준 센터 청년활동가



아프니까 청춘일까?


이 시대 청년 노동의 이미지는 활력보다는 피곤과 더 잘 어울린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늦잠’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말이다. 월화수목금금금 바쁘지만, 텅 비어버린 청년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어떠할까? SNS 트렌드 분석 툴인 소셜 매트릭스를 통해 청년 노동자들의 감정을 분석해보았다.

‘죄송하다, 이상하다, 잘못되다, 눈물 흘리다, 힘들다, 위기, 위험, 헬조선, 미안하다.’

조금 먹먹해졌다.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싶지만 나와 친구들이 겪고 느끼고 있는 감정이라 쉽게 떨쳐낼 수도 없었다. 난 어디서부터 잘못한 것인지, 분명 열심히 쉼 없이 달려왔는데 더, 더, 더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지쳐가는 것도 죄송할 따름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너희에겐 나이가 아깝다며 손가락질과 채찍질을 일삼는 사회에서 지구 멸망을 꿈꾸는 청년은 오히려 현실적인 꿈을 꾼다고 느껴졌다.


청년 노동자들이 이토록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업무량, 편견, 출퇴근, 대기업, 돈도 아닌 결국 ‘사람’이었다. 즉 감정 노동의 굴레 속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감정 노동이란 우리가 일터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을 수행할 때, ‘타인이 좋아하는 나’가 되기 위해 조직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노동을 말한다. 나는 쉽게 말해 가면을 쓴 상태라고 생각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 시간 중 김 사원, 이 대리는 있지만 결국 ‘나 자신’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이 문제는 서비스업에서 고객을 대하는 업무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상사, 동료, 후임, 거래처와의 관계에도 내재되어 있다. 또한 자신들이 감정 노동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집에 가면 말을 하기 싫어요. 누가 물어도 대답도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사소한 것에 화를 내거나, 화를 내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내면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나란 인간은 정말 쓸모가 없어.”

어느 청년 노동자의 말이다. 이전 회사를 다닐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같아서 무척이나 놀랐다. 그땐 그 힘듦이 오롯이 내 잘못인 것 같아 자꾸만 나를 질책했다.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알바부터 대기업, 노동단체까지 각각 나름의 힘든 노동 환경을 겪으며, 마음먹은 것이 하나 있다. 내가 겪은 감정 노동의 고통을 다른 청년 노동자들이 겪지 않게 도와주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를 통해 노동 문제가 자신만이 겪는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더 나아가 조금 더 실제적이고, 새롭고, 쓸모 있는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하게 된 것이 청년 감정 노동자 활력프로젝트 ‘청년들의 버킷리스트’이다.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우린 조금 더 즐거울 필요가 있다


청년들의 버킷리스트(이하 청버)는 청년 감정 노동자들이 감정 노동 굴레에서 벗어나 같이 고민하고 활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타파하는 자리이다. 쉽게 말해서 청년들이 ‘함께’ 모여 놀아보자는 것이다. 


우선 청년들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여섯 가지의 키워드를 도출했다. 취미, 요리, 만들기, 여행, 운동, 파티다. 키워드에 맞춰 왁자지껄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감정 노동과 함께 새콤하게 버무렸다.


각 프로그램은 3월부터 2주에 한 번씩 진행됐다. 매회 2배수 이상의 지원율을 기록하고, 총 100명이 넘는 청년 감정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프로젝트 배경에는 감정 노동이 있기 때문에, 모든 프로그램에는 감정 노동에 대한 간략한 강의와 자신의 감정 노동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말하고 싶지도, 묻지도 않았던 감정 노동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다 보니 과거의 응어리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금세 마음을 열고 서로 친해졌다. 


다음은 시간적·경제적·심적 여유가 없는 청년 감정 노동자들과 함께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기 위해 기획된 활력충전프로그램이다. 혼자 하긴 두렵고, 시작이 어려운 프로그램들을 함께 모여 능동적으로 진행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기획자와 참여자를 가르지 않고 청년으로 뒤섞여 프로그램을 헤쳐 나갔다.


Hobby : 우쿨렐레 해볼렐레?


우쿨렐레 음에 저의 스트레스를 녹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취미? 딱히, 라고 고민만 하는 청년들을 위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쉽게 접할 수 없던 우쿨렐레 배우기를 기획했다. 취미를 갖는 것은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의 위안과 치유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다는 친구들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시작한 활동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껴져서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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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 : 맛 좀 볼끼니?


‘함께하는 맛있는 식사, 이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 감정 노동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혼밥에 익숙해진 청년에게 함께밥의 의미를 공유하고 싶었다. 나처럼 라면밖에 못 끓이는 청년도, 잘 먹는 청년도 함께 모여 직접 요리를 해먹었다. 결론적으로 엄청 맛있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음식이라 더욱 값졌다. 여섯 가지 음식을 만들 재료를 준비했는데 열 가지 음식이 나오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청년밥상, 밥 한 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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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 : 업-사이클링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만 도리어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업-사이클링이란,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을 말한다. 소모성 소비에 바쁜 청년들에게 경험적 소비와 만듦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직접 동대문에서 가져온 우리만의 팔찌를 만들었고, 버려진 가죽을 이용해 세상에 하나뿐인 카드지갑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빨래터에 모인 새댁 마냥 자신의 감정 노동을 시시콜콜하게 떠들며 바느질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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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 내가 몰랐던 서울


‘감정노동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받기도 하지만 같이 즐기면서는 해소되는 단어’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다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일평생 살았던 서울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 고궁에 가본 경험 또한 전무했다. 그래서 경복궁 투어와 근사한 루프탑을 빌려 바비큐 파티를 기획했다. 함께한 청년들은 수학여행을 온 기분이라며 말랑하고 설레는 감정에 휩싸여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워했다. 우리는 행복했던 감정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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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ercise : 야夜한 산행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함께 꿈꾸고 함께 이루어낸 꿈’

불타는 금요일 밤! 우린 술 대신 운동을 택했다. 한 주 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서울을  한눈에 담고 싶어 인왕산 범바위로 향했다. 날 괴롭히던 그 미로 같던, 두통 같던 그곳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놀라웠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땀 흘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 인왕산 범바위에서 스트레스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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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y :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보다 많은 청년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는 40여 명의 청년들과 노동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했다.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놀았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과도 무척이나 잘 먹고 잘 놀았다. 더불어 사람이 모이면 힘이 된다는 노동조합의 의미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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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버킷리스트 그 후


우리는 프로그램을 함께 해나가면서 직업, 나이, 성별, 학벌, 지역, 국적과 무관하게 즐거웠고 행복했다. 나에게도 엄청난 의미가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프로그램을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성장한다는 것, 남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실행한다는 것, 그 준비시간은 쉽지 않다는 것, 그 성취의 열매는 더 달다는 것, 아직 이런 프로그램들을 필요로 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 일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 해소, 치유, 행복하다, 즐겁다, 배려, 좋았다, 공감, 재미있다, 다양한 경험’

청버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느끼고 주고 간 생각들은 큰 성취로 다가왔다. 우리가 갖고 있던 고통스러운 감정들도 찰나의 기회로 변화하고 치유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3개월이었다. 나중으로 밀려나도 되는 삶은 없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버리고 싶진 않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위해 사람을 모으고 생각하고, 나누고 함께하다 보니 나의 인생도 즐거워지고 있었다. 혼자 견디지 못하는 나를, 바뀌지 않는 사회를 욕하며 체념하기 전에 한번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즐거운 것을 찾아갔으면 싶다. 혼자가 어렵다고 생각 된다면 우리 함께했으면 한다. 청년들의 버킷리스트에서. 


*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페이스북 : fb.com/wishyou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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