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죽음의 현장실습

by 센터 posted Jul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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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마이스터고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와 대안


하인호 전 인천비즈니스고등학교 교사,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



현장실습 제도, 예견된 사고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졸업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교육당국도, 학교도, 기업도 그의 고통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구의역에서 스무 살 특성화고 졸업생이 스크린도어에 치이기 전, 누구도 그의 참혹한 노동 조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성남 외식업체에서 현장실습생이 전공과 상관없는 현장실습의 살인적인 노동 시간으로 시달릴 때 누구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실시하는 현장실습 제도는 교육적 목적을 상실한 채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이다. 그동안 많은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 다치거나 죽어갔다. 이들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학교를 졸업하기 전 현장실습, 조기취업 등의 형태로 노동을 시작했다. 둘째, 동료나 상사의 폭언 등 위험한 노동 환경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했다. 셋째, 8시간 노동, 주 5일제가 무색하게 혹사당했다. 넷째, 숨지기 전까지 학교는 그들이 노동권을 침해당하며 위태롭게 일하는 것을 몰랐다는 점이다.


그이들의 죽음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았으며, 닮은 수많은 혹사와 죽음이, 그리고 뒤따른 대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고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 LG유플러스 사건이 보도된 이후 현장실습 실태 점검을 한다고 호들갑을 떨던 교육부는 작년과 다름없는현장실습 운영지침 공문을 보냈고, 교육청과 학교는 또 다시 ‘죽음의 현장실습’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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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교육부 앞에서 연 건강하고 안전한 현장실습을 바라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과 졸업생, 교사 선언 발표 기자회견


교육의 연장? 


‘현장실습’은 학생들이 전공을 살려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기술’을 직접(노동)현장에 나가 ‘실습’해 보면서 새롭고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제도 같아 보인다. 말이 그럴 뿐이다. 정상적인 학교수업을 받으면서 잠깐 현장에 나가 체험하며 ‘배움’을 얻는 성격의 ‘교육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적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저임금 단순기능 인력 수급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다. 학생, 교사, 학부모, 관계 부처, 해당 기업 그 어느 쪽도 사실상의 ‘조기 취업’인 현장실습을 ‘교육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기 ‘취업’이라면 ‘교육’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적 관점을 견지하지 못한 채 취업으로서 한 학기를 통째로 사용하는 현장실습이 운영됨으로써, 중등 교육과정인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재학생들에게 그만큼의 교육 받을 기회를 빼앗는 결과가 되고 있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 질을 따지지 않고, 실습생을 받아주는 곳이면 어디든 학생들을 보낸다. 그리고 회사는 학생들을 부리기 쉬운 인력으로 볼 뿐이다. 학생 자신도 처음에는 학교 밖으로 나간다고 좋아하지만 후회하게 된다.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나머지 관련자들은 모두 만족하는 제도인 셈이다. 현장실습생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하나도 다름없이 일하고 있는데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실습생’ 이라는 신분에 묶여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실습생’, 여기에 바로 현장실습의 온갖 폐해가 자리한다. 


학교에서 취업률 향상만을 주입받은 현장실습생들은 나중에 올 후배들을 생각하며 힘들어도, 뭔가 잘못 됐다 느껴도 항의 한번 하지 못한다. 적절하지 못한 일, 부당한 처우 등에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할 학교와 교사들은 오히려 바람직한 취업도, 필요한 교육도 아닌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내몰고 있다. 취업률 경쟁 때문이다. 그 결과는 전공과 무관한 업체, 인기 없는 일자리에 부적절한 업체까지 학생들을 노동 시장에 넘기는 인력파견 업소가 되어 가고 있다. 정부나 기업은 낮은 임금으로 쉽게 노동 인력을 공급받는 제도이자 학교는 취업률을 높여 지원금을 받는 수단일 뿐이다.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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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연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 인권 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


현장실습제도, 필요할까?


취업규정과 노동 인권 보호 등의 현장실습생에 대한 안전장치 없는 현장실습제도는 제2, 제3의 피해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학교로서는 현장실습 기회를 한 사람이라도 더 내보내야 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학생들을 저임금 노동착취 대상으로 삼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계산이 맞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각성과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을 즉각 중단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제2, 제3의 피해를 막는 길이다. 


현장실습의 파행적 운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장실습 문제를 부분적, 미봉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현실 앞에서 좌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와 시·도교육감은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중단을 선언하고 그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성찰이 필요하다. 


현장실습이 과연 필요한가,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현장체험교육은 과연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가, 노동의 체험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될 때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과연 우리 현실에서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현장실습이 보편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부분적인 재정 지원과 프로그램 제시만으로 교육적 의미를 갖는 현장실습을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단순노동이 아닌 교육프로그램을 운용할 의지가 있는 산업체를 확보할 수 있는가, 그에 관한 물적·인적 지원은 가능한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단순한 노동의 체험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체험교육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직업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등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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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교육청 앞에서 진행한 일인시위.


현장실습제도 개선을 위한 기본 방향


현장실습제도 개선을 위한 기본 방향은 첫째, 현장실습과 취업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현장실습과 취업을 엄격하게 구분하되, 실습은 실습답게 취업은 취업답게 운영하기 위해 실습은 학교 안에서, 취업은 졸업 후에 할 수 있도록 한다. 교육 목적의 현장실습은 유지하되, 임금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조기 취업인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은 폐지하고, 졸업 시점에 취업 가능한 일자리 연계를 하도록 하면 된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한다고 했을 때 취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반문이 뒤따른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취업을 위해 현장실습이 운영된다면 교육과정의 하나라고 볼 수 없으며, 학생들의 교육받을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단순히 취업 시기를 앞당긴다고 학생들의 취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인 것도 아니다.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는 당면한 현실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받는 자로서도, 노동하는 자로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취업 현장에 내몰리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순히 취업률 제고를 위해 학생들이 전공과 무관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발적인 취업 시기 조정을 통해 교육과정 내실화를 기하도록 하면 된다. 학기 중 채용은 관행대로 유지하되, 실제 근무 시점을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제도적인 고졸 취업 촉진 방안으로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생 채용 할당제 등 적극적 조치 시행과 채용 시 직급 분리 채용으로 인한 학력 차별 금지, 근로감독 강화 등을 적극 검토해 볼 수 있다.


둘째는 노동 인권 교육 강화이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들에게 현장실습보다 더 필요한 것은 노동 인권 교육이다, 취업을 몇 달 앞당기는 것보다 앞으로 평생 노동자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급선무이다. 실습생들이나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자기 인권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사전교육을 충실히 진행해야 한다. 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도 주장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STOP’을 외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며, 성희롱 발생 시 ‘NO’라고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길러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노동 인권 교육과 함께 교사와 관리자 연수 프로그램에 노동 인권 교육을 배치하는 등 교사들의 노동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특히 요구된다. 그리고 학부모들에 대한 노동 인권 교육 계획도 수립되어야 한다.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 일부에 노동 인권 교육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현장실습제도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직업 교육을 하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교육 특성 상 ‘실습교육’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목표가 ‘취업’인지, 그 형태가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인지 분명히 다시 물어야 한다. 현장실습을 넘어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교육과정 자체가 왜 존재하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되물어야 한다. 일반계고등학교 교육 목표가 대학입시가 아니듯, 특성화고등학교 교육 목표도 취업이 아니다.


넷째, 중등 단계 직업교육관련법 제도 정비이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개선방안이 제시되고 시행되었지만 미봉책이었을 뿐, 많은 문제점들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이 교육의 일환으로서 ‘실습’이 아니라 임금 취득 목적의 ‘취업’으로 인식되고 있고 법제도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에 불거지는 문제이다. 따라서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폐지하고,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중등단계 직업 교육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를 규율하고,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의 하나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나 수시로 변경되는 교육과정 고시에 추상적으로 그 내용을 담기보다 현장실습의 목적, 운영 방안, 안전과 보건 기준을 교육 관련 법령 안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중등 단계 직업 교육을 일관성 있게 집행할 수 있는 책임 주체와 안정적 재정 유지를 법령으로 보장할 수 있다.


또한 현장실습이 ‘교육’의 일환이라면 현재처럼 특성화고·마이스터고 교육과정 중의 전문교과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교과와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현장실습이 운영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향후 진로 등에 대한 선택권 및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하나의 산업체에 종속되어 장기간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습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를 통해 교과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실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조기취업이 아닌 진로 탐색을 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현장실습 중단 후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현장실습 폐지를 포함해 현장실습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사회적 협의체 구성은 정부와 산업체, 교원단체와 노동조합 등으로 구성하되 북유럽 국가들처럼 유관기관 간의 적극적인 협력 체제를 토대로 지역적 또는 사회적인 노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기관들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깊은 연계체제를 구축, 기관 간 네트워크를 담당할 인력을 지정하고 학교 담당자와 협의하여 체험학습, 현장실습, 취업업체를 선정하고 운영한다. 그 과정에 산업체 및 노동조합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현장실습과 졸업예정자 취업에 대한 논의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는 물론 전문대학 및 대학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특정 집단의 불이익을 완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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