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권리 없는 노동, 노동조합이 답이다

by 센터 posted Jul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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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



영업한 만큼만 가져가라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CJ헬로비전, 티브로드, 딜라이브(구 씨앤앰), 현대HCN, CMB···.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두 개 이상 가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약정기간이 끝나거나 스마트폰을 바꾸거나 이사 시즌이 되거나 AS를 받고 싶다면 여기 저기 상담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신청이든 해지든 뭐가 됐든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이 상담사들이 2만 1천 명이나 된다.


우리와 통화한 이 상담사들은 짐작대로 그 회사 소속이 아니다. 상담사들과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들은 하청업체들이다. 원청은 복수의 하청과 위·수탁계약을 맺고 실적을 경쟁시키고, 업체들은 상담사들을 쥐어짠다. 상담사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주곤 나머지는 “너희들이 영업한 만큼 가져가라”는 식이다. 업체는 임금 지급, 노무관리 정도만 대행하며 수수료를 챙긴다. ‘중간착취’는 헌법으로 금지하는 것이지만 방송통신업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법을 떠받치는 것은 경쟁과 인센티브다. 원청 기업은 복수의 하청에 센터를 맡기고 실적을 경쟁시킨다. 콜수부터 영업실적까지 원청과 센터는 모든 영역에서 목표치를 정하고 노동자를 줄 세운다. 상담사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 이상을 손에 쥐려면 동료보다 더 오래 일하고, 한 건이라도 팔아야 한다. 인바운드 상담사인데도 아웃바운드 상품 영업까지 해내야 한다. 회사는 상담사들을 영업실적 위주로 상대평가하기 때문이다.


2.헤드셋.jpg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이었던 홍수연 님을 기리며 시민들이 쓴 편지들


죽음으로 내몬 권리 없는 노동


곪을 대로 곪았다. 결국 문제가 터져 나온 곳이 바로 LG유플러스 고객센터다. 2014년과 2017년 이곳 상담사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4년 전주 고객센터에서 민원팀장으로 일하던 서른 살 청년은 회사가 시간외수당과 상품판매 인센티브를 착복하고 있고, 상담사들이 극심한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2017년 1월 같은 곳에서 취업연계형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3학년 학생도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이번 특성화고 현장실습 노동자의 죽음은 외주화와 성과주의가 겹치는 곳에 노동자의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무권리의 현장은 파견·용역·하청의 이름으로 시작됐고, 자본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노동자를 포섭하고 배제했고 노동자는 포섭됐고 배제됐다. 배제된 그곳에서 ‘권리 없는 노동’이 발명됐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파견형 현장실습이다.


현재의 현장실습제도가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6개월 빨리 시작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자본이 학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부려먹는 현실 또한 알았다. LG유플러스 고객센터는 현장실습 노동자조차 실적평가대상으로 삼았고 콜 수와 영업을 압박했다. 회사는 상담사들의 실적을 70여 가지 기준으로 평가했고, 노동자들은 10등급으로 나눴다.


이런 구조를 떠받치는 집단 중 하나가 현장실습 노동자다. LG유플러스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회사들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총 384명의 현장실습 노동자를 채용했다. 같은 기간 총 입사자의 4.5퍼센트 수준이다. 비율은 낮지만 회사 입장에서 현장실습 노동자는 중요하다.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뿐더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실습 노동자는 첫 사회생활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버틴다. 2주마다 사람을 뽑고, 평균근속은 0.85년에 불과한 회사 입장에서 이만한 ‘도구’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감독하지 않았다. 현장실습협약은 엉터리였고, 근로계약은 노예계약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교육부와 노동부는 실태조사를 진행하긴 하나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 교육부는 한술 더 떠 ‘블랙리스트’ 사업자들을 비공개하고, 사업자와 학생들 핑계를 대며 파견형 현장실습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2016년만 하더라도 업체 3만 1,404곳이 현장실습을 운영했고, 여기에 4만 4,601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그런데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이 가운데 238곳이 현장실습협약조차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43곳은 현장실습 노동자에게 유해위험업무를 지시했고, 27곳은 임금을 주지 않았다. 17곳에서는 성희롱, 45곳에서는 부당대우가 있었다. 근무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킨 곳도 95곳이나 됐다.


노동조합이 답이다


현장실습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문제업체의 문제현장에 투입된다. 바로 그곳에서 업체는 쥐어짜고 노동자는 버틴다. 불법, 탈법, 꼼수가 일어날 구조적 요인은 현장실습 과정에 더 많이 있다. 기아자동차 공장, 외식업체 토다이,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어난 죽음은 그래서 예견된 참사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중요하다. 권리 없는 노동 현장을 바로잡을 내부 주체는 사실상 노동조합뿐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도 없는 곳에서도 현장실습 노동자는 죽었다. 우리가 방관한 탓에 ‘권리 없는 노동’은 계속됐고, 현장실습제도는 제대로 된 교육도 노동도 아닌 채 망가져버린 것이다.


책임도 과제도 분명하다. 민주노조라면 단체협약을 통해 예비조합원인 현장실습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고, 현장실습제도와 관련해서 타임오프를 요구해야 하고, 저임금-장시간을 바꿔내야 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직접고용 정규직화하는 싸움을 해내야 한다. 현장실습제도와 일터를 동시에 바꿔야 하는 게 지금 노동조합이 할 일이다. 노동조합만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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