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없다

by 센터 posted Jul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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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혁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정책팀 활동가 



지난 5월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출마한 이들은 너나없이 동물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소위 유력 후보들은 동물보호소나 관련 행사 등에 찾아가 동물들과 행복한 표정의 사진도 찍었다. 그 과정을 거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유기견과 길고양이 출신 반려묘를 청와대로 데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에 동물복지의 새 시대가 열리는 듯한 기대와 희망이 반짝이고 있다. 2017년 이 땅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만약 그들이 말을 할 수 있어 마이크를 건네준다면 스스로의 삶에 대해 무어라 말할지 궁금하다.


AI 확산 최대원인은 ‘사람’


6월 2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제주지역에서 AI 발생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말부터 전국을 휩쓸었던 조류독감의 기세가 이제는 한풀 꺾였나 싶었는데 겨울도 아닌 초여름의 AI 발생이라니. 그 뒤 며칠 새 전국에서 약 18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 지난해 말부터 이미 3,787만 마리의 닭과 오리 등 동물이 산 채로 생매장된 나라에서 18만이라는 숫자는 이제 사람들의 눈길조차 받지 못한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대량학살이지만 사람들의 걱정거리는 계속 오르는 달걀과 치느님의 몸값뿐이다. 동물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하면 그만인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6일 JTBC는 〈팩트체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AI 확산의 최대원인이 ‘사람’이라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4년 자료에 따르면 AI 발병의 확산 원인 중 ‘축주 및 관계자에 의한 전염’이 27.4퍼센트, ‘차량’ 26.9퍼센트 등으로 사람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우가 54.3퍼센트로써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의 방역대책은 ‘살처분’이 핵심이다. 한국은 어느 농장에서 AI가 발병하면 인근 농가의 가금류까지 모조리 죽여 버린다. 잘못은 사람이 했는데 벌은 동물들이 받는 셈이다. 병의 발생 원인을 막고 단 한 생명이라도 살리려는 노력보다는 무조건 죽여서 전염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조금만 더 확장해보자. 아예 한국 내의 모든 조류를 살처분하면 대한민국은 조류독감 발생률 0퍼센트인 ‘AI 청정국가’가 될 수 있다.


경계-베터리케이지.jpg

한국에서 키워지는 산란계의 95퍼센트 이상은 배터리 케이지와 감금틀에서 살다 죽는다.(@카라)


AI 사태의 주범, 밀집형 공장식 축산


동물보호단체들은 한국의 AI 사태가 밀집형 공장식 축산으로부터 기인한바 크다고 주장한다. 특정 지역들에축산농가가 조밀하게 모여 있고, 동물을 대규모로 밀집 사육하는 환경이야말로 AI 사태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살처분된 3,800만 마리 중 절반 이상이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산란계에 집중되었다. 가장 규모가 큰살처분 농장의 경우 92만 마리를 죽였는데, 이는 프랑스와 독일 전국의한해 조류독감 살처분 숫자에 맞먹는다. 산란계 농장의 닭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리를 잘리고 평생을 A4용지 2/3 공간에 갇혀 날개 한번 펼치지 못하고 달걀 뽑는 기계처럼 살다 죽는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은 당연지사일 테고, 설령 병에 걸리지 않아도 근처 농장에서 AI가 발견되면 소위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미명하에 어디 하소연 한번 못해보고 대부분 산채로 땅에 파묻힌다.


한국의 ‘공장식 축산’은 1994년 이른바 ‘WTO 체제’의 출범에 따른 대응책으로 도입되었다.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WTO 체제하에서 한국은 자국 축산업을 보호하겠다며 농장을 공장으로 바꾸어갔다. 예를 들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에 총 1조 1,971억 원이 투입되었다. ‘현대화’된 축사는 몸 한번 뒤척일 수 없는 감금틀에 동물들을 기계부속처럼 구겨 넣는다. 한국에서 키워지는 산란계의 95퍼센트 이상, 돼지의 99퍼센트는 배터리 케이지와 스톨(감금틀)에서 살다 죽는다.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부어 ‘현대화’했지만, AI나 구제역은 해가 갈수록 기승을 부렸고,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살처분 보상금으로 지급된 돈만 1조 8,418억 원에 달한다. 돈을 쏟아 부어 동물들을 밀집 사육하고, 그러다 보니 전염병에 취약해지고, 대량으로 살처분하려니 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잔인한 블랙 코미디가 연중무휴로 상영되고 있는 셈이다.


공장에 갇힌 동물들


지난 대선 기간 중 어느 후보의 ‘돼지 발정제 사건’은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사람 여성에게 돼지 발정제를 먹여 강간을 모의했던 젊은 날의 추억(?)은 선거기간 내내 해당 후보의 별명으로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돼지에게 발정제를 먹여 강제로 임신시키며 새끼 낳는 기계처럼 취급해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분노는커녕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먹는 삼겹살과 스테이크, 우유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강제로 임신을 시켜 새끼를 낳게 하고, 새끼를 낳으면 곧바로 어미로부터 떼어낸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의 울음소리는 단장의 아픔으로 참혹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소와 돼지는 그렇게 평생을 살며 자궁축농증 등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병에 시달리다 도축장에 끌려가서야 그 고통스러운 삶을 마치게 된다.


발정제를 먹어가며 새끼를 뽑아내야 하는 것은 소나 닭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제는 ‘가족’이라는 반려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개와 고양이는 소위 ‘공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1년에 두세 번씩 강제로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2개월령 미만의 강아지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지만 45일 정도 되었을 때가 가장 예쁘고 잘 팔린다는 이유로 펫샵에 진열된다. 고양이의 경우도 매한가지이다. 공장(번식장)의 개와 고양이들은 병에 걸려도 수의사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병에 걸려 더 이상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되면 생매장 되거나 개소주집에 팔려가거나 투견들의 연습용으로 던져지기 일쑤이다. 이러한 강아지공장, 고양이공장의 참혹한 실상이 알려지자 지난해 7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는 그 대책이라며 <반려동물산업 육성 정책>을 발표한다.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반려동물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동물은 ‘생산과 유통’의 대상일 뿐이다.


경계-기자회견.jpg

카라와 동물보호 단체들이 함께한 애견경매장 폐쇄 요구 기자회견(@카라)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


짐승들이야 어찌 살다 죽든, 우리는 싼 값에 양질의 고기와 계란, 우유를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인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이고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니 그 정도 권리쯤 당연한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3세계에서 횡행하는 아동노동에 대한 착취를 반대할 이유도 없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비정규 노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투쟁할 필요도 없다. 더 싸게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굳이 반대하고 막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없고, 존중받아야 할 생명의 범위에 인간만 포함된다는 오만은 돌도끼 들고 사냥으로 연명하던 시대에나 어울리는 야만이다. 결국 문제는 ‘돈’이고 자본주의이다. 마스크 한 장 없이 돼지 축사의 분뇨를 치우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스에 질식해 죽어도, 가격만 오르지 않으면 모른 척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는 비정한 세상. 그런 세상이 싫고, 그래서 그런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투쟁하는 것이 노동 운동이라면,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들의 목소리에도 이제는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동물을 착취하고 생명의 고통을 이윤으로 바꾸는 탐욕의 세상에서 인간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노동자들이 앞장서 외칠 때,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새세상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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