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은 단김에 빼야 합니다

by 센터 posted Jul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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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센터 상임활동가, 센터 이사


위대한 촛불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식민의 시절 되뇌었을 시구가 더 이상 입안을 맴돌지 않아 기분 좋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은 겨울왕국을 계절의 이치에 맞게 봄으로 진전시켰습니다. 바꿔야 할 세상의 적폐는 여전하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뒤바꾼 집단적인 촛불시민혁명의 기억은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탱해갈 정치적, 사회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각성한 주권자로 불의한 권력을 응징하며 정의의 귀환을 현실화한 위대한 촛불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창립 17주년을 넘긴 한국비정규노동센터도 한국 사회 비정규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며 줄기차게 제 몫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새삼 가져봅니다. 마침 센터 조돈문 대표님이 노동계 대표 일원으로 일자리위원회에 들어가면서 센터가 짊어져야 할 책임도 더욱 커졌습니다. 저도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3년째 활동하면서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바꾸기 위해 애썼고, 한계는 분명했지만 소기의 성과도 거뒀습니다. 지금 와 돌이켜보니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를 중심으로 센터가 현장연대와 정책연대로 꾸준하게 비정규 문제에 천착해 자기 자리를 지킨 결실이라 여겨져 참 뿌듯합니다. 이제부터 다시 신발끈을 질끈 동여매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할 때입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 동안 비정규 문제는 모든 정부가 한결같이 실패해온 대표적인 노동 의제입니다. 오랜 동안 한국 사회의 최대 다수이면서도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심각하게 제약당해 온 비정규 노동자들의 한숨과 눈물이 켜켜이 쌓여왔습니다. 10퍼센트 대에 고착된 낮은 노조 조직률은 노사 간 기울어진 역관계를 반증하는 상징 지표입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은 2퍼센트 내외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이 무력화돼 있는 실정입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겐 진작 이게 나라냐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일상이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이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구속시켰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이 처한 고단하고 힘겨운 현실은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례 없는 희망의 근거가 생겼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비정규 노동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고 해결될 때가 아직도 멀지만 악화일로에서 반전될 결정적인 분기점이 온 건 분명합니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했지요.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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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물결이 광화문 일대를 온통 뒤덮었던 지난겨울.(@곽세영)

제2의 노동자대투쟁이 절실하다

촛불시민혁명은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사회적 요구로 정립했습니다. 불평등한 대한민국을 보다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것이 촛불을 든 노동자들의 열망이었습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촛불 광장에 나가기도 힘들었지요.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을 때는 행복하지만 일터와 집으로 돌아오면 버거운 현실이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을 마주하며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상실감은 여전했습니다. 양극화로 고통 받고 있는 한국 사회가 진정 정글에서 공동체로 진화하려면, 거리와 광장을 넘어 무엇보다 일터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87년을 돌아봅니다. 6월 항쟁 후 7~9월 노동자대투쟁이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사회적 진출을 맞아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87년 6월 시민항쟁을 결정적으로 진전시킨 것은 노동자대투쟁이었습니다. 폭발적으로 결성된 노동조합의 힘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계급인 노동자들이 취약하게나마 시민권을 얻었고 민주노총 결성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지 못한 채 노동자들과 노동 운동은 총자본과 권력의 위세에 짓눌리고 포섭됐습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천민자본주의 체제가 가속화됐습니다. 이제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전방위적인 사회복지와 기업복지 차별에 시달리는, 전체 노동자의 과반이 넘는 비정규 문제를 두고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와있습니다.

세상이 제대로 바뀌려면 가장 차별 받고 착취 받아온 비정규 노동자들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봉기해야 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한국 사회를 아틀라스처럼 떠받쳐온 노동자들이 역사의 주인으로 나설 때 한국 사회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입니다. 촛불민심이 그토록 염원했던 평등하고 정의로운 일상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결국 미조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느냐가 관건입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한민국의 슈퍼갑인 재벌자본과 수구관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회주체인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의 크기만큼 한국 사회의 불평등 정도는 경감되고 개선될 것입니다.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조 할 권리가 당연한 자신의 권리로 인식될 때 사회는 극적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1천만 비정규 노동자들이 가슴 속 깊이 내 사랑 민주노조를 열망하고 실현하는 2017년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금 여기

최저임금 시급 1만 원 달성도 노조 결성 확대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생존의 벼랑 끝에 서면 둘러볼 새도 없이 자신의 생존에만 급급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최소한 먹고 살 만해야 자기 옆구리를 내어줄 수 있습니다. 노조를 만들려면 함께 어깨 걸고 일터를 바꿀 동료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노조를 무기로 움켜쥘 유리한 사회적 조건도 필요합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최저임금 1만 원과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는 한국 사회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혁명적인 조합입니다. 고용 불안과 차별이 일상화되고 재벌 자본이 먹이사슬의 최상층에서 독식해온 공멸의 사회경제구조를 혁파할 비장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촛불시민혁명이 일깨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미래는 아직은 오리무중이지만 어느 때보다 밝습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똑바로 진격해야 합니다. 광범위한 을들의 아픔과 눈물에 공감하면서 공동의 목표인 상생과 해방을 향해 뚜벅뚜벅 전진해야 합니다. 드문 역사적 호기를 맞았으니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제2의 노동자대투쟁을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만들어갈 때입니다. 비정규 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강렬하게 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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