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서사

by 센터 posted Jul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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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Untitled, 1960~1961, 캔버스에 아크릴,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Tate Modern Museum, London

“작품에는 어떤 설명을 달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 _ 마크 로스코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에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 1970) 방은 어둡고 적막하다. 그의 그림과 마주한다. 고요한 침묵만이 흐를 뿐. 하지만 이 침묵이 평정심을 찾아주지는 않는다. 그저 큰 화면 가득 쓱쓱 물감을 펴듯 발라 내린 색채덩어리, 단순한 면과 색이 빚어내는 강한 울림이 느껴진다.


로스코는 자신을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불리는 것에 불편해 했다. 관람자의 눈에 작품들이 ‘추상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는 단호하게    “나는 추상주의 화가가 아니다. 내가 살면서 경험한 인생의 비극을 그린 서사다”라며 인간의 형상에 대한 묘사가 단순 모양과 상징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러시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러시아에서 유태인에 대한 차별에 시달리다 미국으로 건너가자마자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안과 가난 속에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이 고통이 그의 작업 밑바닥에 깔려있는 비극적 서사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근원적 슬픔, 비극적 감정은 그림을 그릴 때 늘 나와 함께했다”라고 고백했다. 


로스코의 명성이 화단과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이름을 타기 시작하면서 1958년 캐나다 주류회사인 시그램은 맨해튼에 신사옥을 완공하자, 1층 ‘포시즌즈’ 레스토랑 벽면을 장식할 회화작품을 로스코에게 주문했다. 그림 아홉 점을 거액에 계약하고 정작 그림이 완성되었지만, 고급 레스토랑에 비싼 음식 값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하며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주고받는 이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경건한 삶으로 안내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계약 철회를 함으로써 자기가 부여한 작품의 순결성과 화가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후 작품을 완전 단색 처리하거나 윤곽선이 선명한 검은색 사각형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전에 작업했던 형식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로스코는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이 어두운 색채 실험을 계속했다. 음울한 분위기는 그의 심각한 우울증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한때 맨해튼에서 배를 굶주리며 거리를 배회하던 그는 미국에서 가장 몸값 높은 화가가 되었지만 1970년 2월 예순일곱이란 나이에 그만 손목을 긋고 자살했다. 추상표현주의 선구자로 불리는 로스코의 생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가난한 자나 잘 나가는 자나 모두 저마다 인생의 십자가는 힘겹기만 하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곧 로스코의 슬픔이 위로가 된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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