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 권력과 민주주의와 여성기본소득제

by 센터 posted Apr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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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2017년은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고, 세계여성의 날 109주년이 되는 해이다. 러시아혁명은 여성 노동자들을 비롯한 수천 명의 여성이 빵을 요구하면서, 세계여성의 날은 미국의 만 5천여 여성 섬유 노동자가 임금 인상과 노조 결성과 정치적 평등권 쟁취를 요구하며 시작되었다. 100여 년 전 영국 런던에서는 여성들에게도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여성들 자신으로부터 거세게 일었고, 맞고 갇히고 뺏기면서 마침내 그 절실한 권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억압과 배제와 착취가 일상이던 다양한 세대의 여성이 한 목소리로 외쳤던, ‘존재할 권리’에 관한 문제의식이 촉발한 당연한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데 이리도 오랜 시간과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세계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렇듯 여성들로부터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부조리하게 질서 지워진 세상(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맞서 공정과 정의 추구라는 양심의 윤리를 다그치는 정치적 행위의 상징이 되었다. 100여 년 전 그 광장들을 채웠을 온기와 열기를 지난겨울 ‘촛불광장’ 이후로 자주 떠올리곤 했다. 


‘시민 권력’이란 말이 가슴을 뛰게 했던 지난겨울을 딛고 비로소 봄이 왔다. 이재용이며 박근혜 일당이 구속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마침내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드디어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봄 또한 시나브로 당도 중인가 보다고 순간 순간 희망이란 걸 품어보기도 했다. 정말로 이제는 이 사회가 조금쯤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려는 것일까. 피땀 어린 손으로 겨우 움켜쥐게 되었구나 싶은 그 순간 어이없이 빠져나가 달아나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싶던 찰나 황망히 사라져가던 민주주의며 정의라는 봄이었다. 절대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이들이 구속되고, 자본주의가 앞으로 반세기 안에 제 모순에 겨워 스러지고 말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기도 하는 때. 마음 한쪽에서 꺼버렸던 ‘희망’이라는 불씨를 꺼내보려고 조심스럽게 어찌어찌 주위를 돌아보게도 되지만, 세상은 여전히 모순이랄까 부조리랄까, 빠듯함과 생경함과 외면의 얼굴로 어둡다. 가슴에 여유와 온기를 지피며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힘이 든다. 깊어진 빈부의 골은 속수무책 상태고, 대선을 앞두고 한계 투성이 대의 민주주의가 정치의 전부인 듯 몰아가는 주류 언론의 구태도 여전하다. 이내 침울해져 일상을 돌아보면 가부장제의 모순이 작동하는 방식은 더 교묘하고 치밀해져가는 것만 같다.  


많은 이가 주류 정치의 함정과 논리에 포획된 채 각자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이며 방향을 결정할 자유가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존엄, 특히나 정치적 약자/소수자에 속하는 여성의 존엄은 더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물질적 재화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하기 쉬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 특히 홀로 사는 여성들의 삶은 대체로 가난하고 팍팍하다. 남성들에 비해 취업하기가 어렵고, 직장을 얻는다고 해도 불안정한 일자리가 태반이며, 여전히 남성들이 받는 임금의 60퍼센트 가량만을 받는다. 1인 가구 여성들은 가족을 이루지 못했다고/않았다고 차별 받고, 여성이라서 차별 받는다. ‘가난’에 성별이 있다면, 낱말별로 성별 관사가 있는 지구 저편 여느 나라들의 언어처럼 ‘가난’이라는 한국어에도 성별 관사가 붙는다면 아마도 여성형이 아닐까. 


1인 가구가 500만을 넘어서고, 그 중 여성의 비율이 60퍼센트에 육박하는 시대. 도시며 도시 변두리의 옥탑방이며 반지하방이며 고시원에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도, 변변한 관계를 만들지도 못한 채로 고독하게 나이 들어가는 가난한 여성들을 본다. 가난의 이 편 저 편을 떠돌며 그들은 곧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될 것이다. 결혼해서 살다가 남편과 자식을 저 세상이며 대처로 떠나보내고 당신들끼리 마을회관이라는 거점에서 마을공동체의 일정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농촌의 나이 든 여성들과는 사뭇 다른 인생의 지도를 그리며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그녀들이 ‘독거노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난한 그녀들이 비참하지 않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기본소득제도라는 경제민주주의의 한 방식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되기를 바라게 된다. 기본소득제의 발판이라 할 수 있는 청년 배당이 일부 지역에서 실시중이고, 압축 근대화의 재물이 되어온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제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성별과 계층을 떠나 빠른 시일 내에 온 국민에게 동일하게 기본소득제를 적용하는 게 물론 맞겠지만 재원 마련이 문제라서 굳이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면, 승진 기회는 고사하고 취업할 기회조차 좀체 얻기 힘든, 집 안팎에서 늘 더 많은 일을 하고도 늘 더 가난했던/가난한 여성들에게 우선순위를 둬야 하지 않을까. 많은 1인 가구 여성이 불안한 주거와 생계비 확보 문제로 고투중이다. 가난을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기본소득제는 누구보다 이들에게 절실한 제도일 것이다. 이 제도가 이렇게 차츰차츰 자리 잡아 간다면 1인 가구 그녀들끼리도 서로 보듬으며 연대할 기운을 더 적극적으로 품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성별에 따른 경제적·정치적· 문화적 격차를 좁혀나갈 수 있는 힘을 여성들이 더 잘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우선 파이의 크기부터 키우고 분배는 나중에 생각하자던 지배자들의 허언이나 우리(남성) 몫을 제대로 확보한 후 너희(여성)에게도 나눠 주겠다는 식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야합한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여성에게 기본소득을! 이것은 분배 권력을 민주화하는 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적극적인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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