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취준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by 센터 posted Apr 27,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2년차 취업준비생의 취업 비법

(만 스물다섯, 대학 5학년 2학기를 취업 준비와 함께 보내고 있는 인간)



취업 비결을 설명하는 게 이 글의 목표다. 이 글이 나와 같은 취준생들에게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처럼 절묘한 비법이 되기를 바라며, 이미 취업한 이들에게 훗날 이직이나 재취업에 유용한 꿀팁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 취업도 못한 사람이 취업 비결을 이야기하는 게 어불성설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독재자의 딸이 국민행복을 이야기하고 국정농단의 주역이 법치주의를 당당히 외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무슨 말이든 못할까. 누군가의 자서전 제목처럼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니, 이 글은 몇 번의 탈락을 거듭하며 정제된 취업 비결이다


공자왈 


나는 별 생각 없이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고, 인턴도 했고 동아리 활동도 나름 알차게 했으니 금방 합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취업은 완성된 자기 자신을 기업에 집어넣는 일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이다. 자신을 바꾸지 않고는 취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꿀 것인가? 이 막연한 질문에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다면, IMF 이후 최악의 청년실업난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답을 내리기 힘들 때는 선현에게 지혜를 구해야 한다. 나는 동양의 위대한 지성, 공자에게서 답을 구했다. 이 글에 적힌 취업 비법은 논어학이편(學而篇)에서 착안했다.

학이편 첫 장에 실린 구절은 잘 알려져 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멀리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 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 


세 구절을 취업에 적용하면 각각 어떻게 취업 공부를 할 것인지, 취준생의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기업에게 어떤 자세를 갖출 것인지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學而 - 자본주의 미소도 공부거리!


취준생을 위한 취업학() 교과서는 없다. 교과서가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될 거라고 착각하면 큰코다친다. 취업학은 모든 것에 대한 학문이면서 어떤 것에 대한 학문도 아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아니다. 채용은 인간의 모든 면-, 몸무게, 얼굴, 성별, 종교, 말투, 목소리, 출신 지역, 부모님의 직업, 사상, 외국어 능력, 산업에 대한 이해도, 기업에 대한 충성심,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애정도 등-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이다. 따라서 취업학은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학문이 된다. 인문학의 범주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아니, 철학이나 역사, 문학보다 위대한 인문학인 게 분명하다.


취업을 위한 배움에는 경계가 없다. 면접을 예로 들자면 걸음걸이부터, 인사법, 웃는 방식까지 갈고 닦아야 할 대상이다. 웃는 방식의 경우, 취업을 위해 필요한 건 진심이 담긴 미소다. 여기서 진심에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그것이 당신의 진심과는 다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심과 다른 진심을 담은 미소, 흔히 자본주의 미소라고 하는 표정을 연습하는 데는 남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다. 실제로 필자의 지인은 취업 동아리 단톡방에서 미소셀카를 매일 공유한다. 힘드니까 웃고 살자는 의미에서 보내는 셀카가 아니다. 면접 준비의 일환이다


배운 것을 때때로 익혀야 도움이 된다. 그러면 즐거움도 따라온단다. 많은 취준생들이 배운 것을 익히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스터디. ‘스터디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부의 한 가지 방식을 일컫는 말이지만 공부 그 자체(영어 단어 study)로 불린다.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하등의 쓸모도 없기 때문이다.


스터디에서는 누구와 공부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취업이 절박하지 않은 스터디원을 구했다가는 같이 낭패를 보기 쉽다. 따라서 스터디원에 대한 공개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취업 커뮤니티에 모집 공고를 올리고 지원자에게 간단한 이력과 자기 소개글을 받아 보면 된다. 기업 공개 채용을 위한 스터디를 공개 채용으로 모집한다니 무슨 방귀 뀌는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이 방식에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 본인의 스펙과 유사한 사람을 구할 수 있어서 열등감을 느낄 일이 적으며, 인사 담당자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데다가, 지인들이 한데 뭉쳐 스터디가 술 모임, PC방 모임으로 변질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有朋 - N포까지는 갈 것 없고


‘N포세대N포에는 인간관계도 포함된다지만 취업을 위해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멀리서 친구가 찾아와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관계를 평소처럼 유지하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조금 더 효율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효율화한다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용을 누리겠다는 말이다. 효율화를 위한 첫 번째 팁은 자원방래(自遠方來)’하는 벗은 즐겁게 맞이하되, ‘자원방거(自遠方去)’하지 않는 것이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오는 친구 안 막지만 친구 보러 가지는 말자정도가 되겠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는 절로 찾아와서 밥을 사주기 마련이다. 취업을 아직 못한 나에게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조금은 사치스럽다. 이런 원칙에 따라서 시간과 감정을 절약하자.

두 번째 팁은 감정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어떤 기쁨은 사치가 되지만 슬픔은 전부 불필요하다. 슬픔의 감정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실연부터 사회적 참사 등.자신의 감정이 이런 사건들에 소모되는 것을 줄이자. 슬픈 일들에 대해서는 보지 않고 쓰지도 않으며, 듣지 않고 말하지도 않아야 한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본인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어?”

지겹다 지겨워.”


不慍 - ‘반기업정서를 버려!


취준생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구절. 매번 탈락의 쓴잔을 마시는 우리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구절이다. 하지만 나 같은 소인小人에게 군자의 길은 멀기만 하니, 탈락의 분노를 어디에 둘지 모르는 젊은 취준생은 어찌해야 할까.


내 친구 K의 사례. 그는 굴지의 대기업인 A전자에서 낙방했다. 그는 서류, ·적성, 면접을 통과하고 약 2주간의 실무 평가까지 살아남았는데, 그 회사의 최종 전형은 2주 동안 회사 안에서 보고 생각한 바를 임원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었다. 그는 합격 확률이 50퍼센트를 넘었기에 다른 회사 면접에 나가지 않았던 터였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내 친구는 그렇게 A전자의 안티팬이 됐으며 그가 자랑해 마지않던 그의 A전자 노트북은 중고나라로 떠나버렸다


안타깝지만 이런 식의 반기업정서는 좋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처지를 생각해야 한다. 탈락할 때마다 기업에 원한을 갖는다면 세상살이는 꽤나 불편해질 것이 분명하다. 삼성에서 떨어지고 엘지에서 떨어져서 아이폰 유저가 된다고? 이성을 되찾자. 기업에게 우리는 n명의 구직자 중 한명일 뿐,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기업의 갑질도 그렇게 나쁘게 볼 것은 없다. 기업은 인간이 아니니, 그들이 불의를 저질렀다고 그 기업 전부를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과도하다. 산재를 은폐한 대기업, 알바 임금을 꺾는외식 프랜차이즈, 대리점에 갑질하는 식품업체, 노조를 파괴하는 자동차 회사, ‘욕받이부서를 만들어 비정규직 상담원에게 극한의 고통을 안기는 통신업체까지. 갑질하는 기업은 수없이 많다. 갑질 회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채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다닐만한 기업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블랙리스트가 가당키나 한가


이상으로 반어와 자조의 아무 말 대잔치는 막을 내린다. 그대는 글을 읽으며 몇 차례 실소를 금치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에게 취업 비결 같은 것은 없다. 위에 늘어놓은 아무 말들은 내 회한의 결과물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글을 읽는 취준생들이 취뽀(취업 뽀개기)’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취업의 길은 어두운 터널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걸어가는 것처럼 외롭고 막막하기만 하다. 자기 소개서를 수십 번 써도 진정한 자기 자신은 없는 것 같고, 알바로 번 돈을 토익, 토스 응시료로 쓰고 허무함을 느끼는 그대여.


기업의 가치에 자신을 종속시키지 말자. 노동 시장의 평가는 우리의 전부를 파악하지 못한다. 자소서에 쓸 휴먼 스토리가 없어도, 혹은 그것을 포장할 스토리텔링 기술이 없어도, 좋은 인상과 달변으로 면접관을 구워삶지 못해도, 우리는 가치 있는 인간이다. 실패 앞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도움 되는 일이지만, 자기 자신의 늪에 빠져 소중한 것들을 잊지는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